산다는 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인정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지상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변화시키는 탓이겠지요. 그렇기에 인간은 늘 떠나간 상대에 대한 애도라는 과제를 숙명처럼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정용준의 「미스터 심플」(2021)은 평범한 남녀의 소소한 만남을 통해 애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한때 오케스트라의 호른 연주자였던 남자는 아내가 자기를 떠나가는 아픔을, 교정 교열과 번역의 전문가인 여자는 남편이 자살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둘 다 그 상실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는 아내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지내야” 하고, 여자는 남편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지내”야만 합니다.
  둘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온라인을 통해 직거래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대목에서 인류 최초의 물물교환은, 생활상의 필요가 아닌 미지의 타인을 만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얘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여자가 클래식 기타를 남자에게 구매하면서, 다음에는 남자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여자에게 구매하면서 둘은 만남을 이어갑니다.
  여자와 남자는 떠나간 대상을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해, 우울의 그늘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자는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자기 학대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네요. 남자 역시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남은 것은 쓸모없는 악기들뿐”이라며,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는 자신이 쓴 자서전의 마지막에 “내 이름은 슬픔입니다.”라고 써놓았을 정도입니다.
  떠난 대상을 진정으로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객관화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나’와 한데 엉겨 있는 대상을 ‘나’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나 아직도 남자에게는 떠나간 아내가, 여자에게는 자살한 남편이 거대한 물음표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들의 머리는 “왜 떠났나?” 혹은 “왜 죽었나?”라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떠난 대상과의 심리적 이별은 아직도 요원하기에, 둘의 집에는 “버릴 수도 버리지 않을 수도 없어 그대로” 둔 떠난 이들의 물건이 “어수선한 채로, 뒤엉킨 채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삶의 가장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 둘의 만남은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기타와 스피커를 사고 파는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은 것은 단지 슬픔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미미하게까지 보이는 거래와 만남을 통해, 둘은 각자의 슬픔을 비춰볼 수 있는 서로의 거울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절실함으로 거래가 끝난 이후에도 대화를 이어가고, 나중에는 슬픔뿐만 아니라 둘이 가진 가장 좋은 것까지도 나누게 됩니다. 호르니스트였던 남자는 여자를 위해 눈 내리는 깊은 밤 <대니 보이>를 연주해 주고, 이 순간 여자는 커다란 위안을 얻습니다. 여자도 답례로 자신이 지닌 가장 좋은 것을 남자에게 선물합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된 남자에게 글쓰기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인데요, 그것은 바로 퇴고의 원칙과 관련됩니다. 첫째로 완성한 이 글이 엉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둘째로 이걸 다시 쓰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 마지막으로 실제로 다시 쓰는 것, 그것이 바로 퇴고의 비법입니다. 아마도 그 퇴고의 비법은, 남자에게 ‘과감하게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라’는 신탁으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여자는 남자의 집을 나와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눈길 위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여자는 그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맞춰 봅니다. 물론 그 발자국에 여자의 발이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타인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맞추어보는 그 사소한 몸짓에서부터 슬픔의 극복은 시작된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은 남자의 기타를 받기 위해, 두 달 만에 여자가 외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순간은 과거와 내면으로만 향하던 삶이 드디어 현재와 타인을 향하게 되는 출발이었던 것입니다. 그 작은 외출은 분명 눈 위에 찍힌 발자국 위에 자기 발을 맞춰보는 정도로 사소한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발자국에 여자의 발이 꼭 들어맞을 일도 없겠지만, 그 외출은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애도가 상대의 취약성에 대한 고려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가 나눈 것은 그 흔한 기타와 스피커가 아니라 슬픔으로 채워진 미약한 존재들의 진심 아니었을까요. 혹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괴로워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눈 내리는 깊은 밤, 눈길 위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발자국에 가만히 자기의 발을 맞춰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소함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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