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생, 아흔 두 살이신 우리 할머니는 7년 전 루이소체 치매를 진단받으셨다. 그리고 5년 전부터 우리 가족과 함께 사시게 되셨다.

  우리 할머니는 40년 넘게 교직에 계셨다. 참 슬기롭고 올곧으신 분이셨다. 그렇게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병증과 노환으로 사라졌다. 평생 입에 나쁜 말 한 번 담으신 적 없던 할머니가, 내가 할머니 지갑을 훔쳤다며 나에게 욕을 하셨다. 새벽 세 시에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며 나가야 한다고 지팡이로 내 방문을 때리셨다. 12월 한파에 꼭 반팔을 입으셔야 한다고 역정을 내신다. 그렇게 5년 동안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같이 걷는 방법을 조금씩 배웠다.

  “넘어지실 거 같은데, 손을 잡아 드려야지.”

  “어르신인데 그렇게 확 일으키면 다치실 것 같은데.”

  “힘들어 보이시는데 쉬시라고 하세요. 여기 휠체어도 있잖아요.”

  ‘계단 올라가실 때 옆에서 손을 잡으면 뒤로 넘어지시는 걸 못봤어? 뒤에서 받쳐드리는 게 안전해요.’, ‘다리에 힘이 아예 없으셔서 천천히 일으키면 뒤로 넘어지시더라구요.’ ‘조금이라도 걸으셔야 밤에 발이 덜 부으셔서 주무실 수 있어요.’ 처음 몇 달은 설명했지만 이제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는다.

  아무 책임도, 감당할 무게도 없는 타인이 건네는 충고는 거슬림을 넘어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몇 년 째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 온 시간 동안 쌓였을 무수한 감정의 골과 크고 작은 상처들을 타인은 보지 못한다. 결국 타인이 볼 때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노력하고 견딘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다.

  생각해서 한 말이라도, 걱정해서 하는 말 이라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배려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님 말고 식의 충고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보호자들을 난도질하는 것과도 같다. 치매 증상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만 있을까. 역정, 망상, 말도 안 되는 고집. 신체적인 수발. 이 모든 것들을 몇 년 째 기약 없이 감당해내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은 그 순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족을 재단한다. 당신이 뭘 아느냐고, 할머니에게 화를 낸 순간의 자괴감을 이해하냐고, 그렇게 온화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의 절망감을 느껴 본 적 있냐고. 생각해 본 적은 있냐고. 하고 싶은 말을 씹어 삼킨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속으로 부탁하면서.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배려인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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