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목) 유럽연합(이하 EU)이 자라, H&M과 같은 글로벌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 규제 예고를 통해 사실상 오는 2030년까지 패스트패션을 종식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오는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 일정 비율 이상 사용 의무화 △일정 수준 이상의 내구성 △재고품 대량 폐기 금지 규정을 제안하는 등의 규제를 예고하고 나섰다. 또한 EU 집행위원회는 패션 대기업들이 미판매 제품의 매립 양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싱크에비셔스 위원은 “이런 정보 공개가 그 기업의 평판을 매우 효과적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며 “미판매 의류 폐기량 정보가 공개될 경우 소비자 선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간 환경 대책에 있어 선도적인 위치였던 EU가 일회용품처럼 사용되는 패스트패션 의류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다른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매 시즌 출시되는 신상품과 급변하는 패션 트렌드 

  패스트패션이란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하는 의류를 말한다. 패스트패션으로 불리는 제조·유통을 일괄하는 ‘SPA브랜드’의 대표적 기업인 △H&M △자라 △유니클로 등은 매 시즌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한다. 자라의 경우, 본사에서 각 매장의 매출 및 소비자 정보를 컴퓨터로 실시간 수집‧분석하여 일주일 단위로 판매율을 분석하여 신상품의 공급 시간과 수량을 관리한다. 그리고 신상품이 매장으로 공급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생산지와 유통지역을 연계하여 운영한다. 예를 들어, 매장에서 수요가 발생한 상품은 비축한 소재를 사용하여 공장에서 신속하게 생산하여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H&M 또한 최신 트렌드를 약 2주일 만에 생산해 상품화하고 있다. 동명대 경영정보학과 신미향 교수는 “H&M은 패션 시장의 트렌드 정보를 즉각 수렴한 후 20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하루에 5~6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한다”며 “평균 7~8일 만에 제품을 완성해서 세계의 각 매장에 주 2회씩 신제품을 공급해 연간 12,000여 개의 스타일을 개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패션업계 시장 규모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패션업계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기준 43조 2,000억 원에 달했으며 이중 SPA브랜드 시장은 약 5조 원으로 전체 패션 시장의 12%에 달했다. 한국섬유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SPA브랜드 시장 규모는 지난 2010년 1조 2,000억 원에서 지난 2018년 5조 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수도권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이러한 장점을 증명해준다. 소비자들이 SPA브랜드를 사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저렴한 가격’이 84.8%의 응답을 차지했으며 ‘다양한 상품 종류’가 49.5%로 그 뒤를 이었다.

  누구나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량의 △에너지 △용수 △화학약품 △살충제 등의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수질오염 △폐기물 △해양 미세 플라스틱의 발생으로 환경문제가 생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친환경‧리사이클 섬유패션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섬유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10% △해양 미세 플라스틱 배출량의 20~35% △살충제 사용량의 10~25%를 차지하는 등 환경오염 물질을 대량 발생시킨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생활폐기물 성상별 발생량’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류 폐기물 일 발생량은 지난 2018년 기준 193.3톤으로 나타났다.
  또한 패션산업은 물 사용량이 많은 산업으로 전 세계 물소비의 20%를 차지한다. 예를 들면 한 벌의 면 셔츠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약 2,700리터의 물은 한 사람이 2.5년 동안 마시는 양과 같다. 또한 면 셔츠의 주재료인 면화를 재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살충제는 전 세계 사용량의 24%, 농약은 전 세계 사용량의 11%를 차지한다. 이는 토양과 수질 오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밖에도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선택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의류는 잘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킨다.
  합성섬유 의류를 세탁할 때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 역시 심각한 실정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해양에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35%는 옷에서 발생하며, 미세 플라스틱이 하천‧바다로 흘러가는 양은 연간 100만 톤에 이른다고 밝혔다.
  버려진 옷들은 소각·매립되거나 중고의류 매장 및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지만 재활용 비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경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의류 생산에 사용된 총 섬유 투입량인 9,200만 톤 중 87%는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13%만이 재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섬유 재활용의 약 12%는 △단열재 △청소포 △충전재 △저급 부직포 등과 같은 가치가 낮은 제품으로 활용됐으며, 1%만이 의류 생산에 재활용됐다. 폐의류도 전체의 각각 57% 및 25%가 매립 및 소각되는 반면, 10% 및 8%는 재활용 및 중고의류로 재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류 폐기물의 많은 비중이 소각 및 매립 처리되면서 소각 비용뿐만 아니라 매립에 따른 토양 오염과 소각에 의한 대기오염 등 2차 오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패스트패션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8월 영국 BBC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그레타 툰베리는 트위터에 “패션 업계는 기후와 생태계 위기를 크게 조장하고 있다”며 “만약 패스트패션 업계의 의류를 산다면 계속해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도록 기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패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향후 패션 소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표한 ‘지구 환경을 위한 지속가능한 패션의 착한소비 확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중산층 인구는 지난 2015년 30억 명에서 오는 2030년에는 54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인구의 증가로 늘어난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따라 옷과 잡화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현재 추세대로 소비가 계속되면 오는 2050년까지 필요한 천연자원이 지난 2000년에 비해 3배나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12월 21일(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에 중고 옷이 쌓여있다.
지난해 12월 21일(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에 중고 옷이 쌓여있다.

  환경 영향 줄이려 달라지는 패션 기업들

  이에 SPA 브랜드들은 사회‧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환경 부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친환경‧리사이클 섬유를 사용한 리사이클 패션의류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리사이클 섬유란 버려지는 △폐섬유 소재 △폐의류 △폐섬유 제품 △폐그물 등 섬유 폐기물 및 폐페트병 등 비 섬유성 폐기물을 수거해 물리‧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제조된 섬유 소재다. 리사이클 섬유로는 △폴리에스터 섬유 △나일론 섬유 △셀룰로오스 섬유 등이 있으며, 의류와 침구 제품 등에 사용될 수 있다.
  실제 H&M과 자라와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물론 아디다스, 나이키와 같은 패션기업들이 사회·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환경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리사이클 섬유를 적용한 의류를 제작하고 있다. H&M은 지난 2019년 4월에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섬유를 사용한 패션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오는 2030년까지 모든 패션 제품에 친환경‧리사이클 섬유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또한 자라는 오는 2025년까지 전 패션 제품에 지속가능성이 높은 △면화 △린넨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섬유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아디다스도 오는 2024년까지 모든 패션 제품에 사용되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 버진 폴리에스터 섬유 사용을 중단하고 친환경‧리사이클 섬유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폐플라스틱 재활용 섬유로 만든 신상을 출시하는 등 친환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ESG 경영의 모범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지난 1993년 의류업계 최초로 버려진 폐플라스틱 병을 활용해 리사이클 폴리스에스터 플리스를 출시하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매년 매출의 1%를 ‘환경세’라는 이름으로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등의 친환경 행보를 이어갔다(본지 1272호 ‘우후죽순 평가 기준에 ESG 경영 기업은 대략난감’ 기사 참조). 파타고니아는 지난해 100% 리사이클 소재로 만든 ‘파일 플리스(Pile Fleece)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는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리사이클 나일론 등 버려진 쓰레기로부터 재탄생한 재활용 소재를 100% 사용하고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생산돼 환경과 사람을 우선시하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파타고니아 마케팅 담당자는 “지구 건강을 되살리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로 가기 위한 단계”라며 “이를 계기로 많은 기업과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더 나은 농업 방식을 고민하고 함께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리사이클 섬유산업 확산되지만 국내 기술 수준은 낮아 

  반면 국내 리사이클 섬유산업은 기술 수준이 낮고 기업역량도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섬유산업 기술 수준은 일본보다 4~5년 정도 뒤처져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폐섬유와 중저급 페트병을 재활용해 △비닐하우스 보온 덮개 △건설용 저급 부직포 △청소 용포 등을 생산하는 업체의 대부분은 △연구개발력 미흡 △설비 노후화 △인력 고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낮고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폐섬유·폐의류의 △수거 △선별 △파쇄 △압축 등 리사이클 섬유산업의 생산·판매를 일컫는 리사이클 섬유 후방산업 생태계 구축 미진은 리사이클 섬유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료로 사용되는 고품질 원료는 국내 고품질 폐페트병 수거 부족 등으로 일본, 대만 등지에서 수입에 의존한다. 리사이클 섬유의 원료로 사용되는 폐섬유 및 폐의류를 △수거 △선별 △파쇄 △압축하는 국내 업체들은 무허가·무등록 업체가 많고 규모도 영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 소재산업실 박훈 연구위원은 “앞으로 국내 리사이클 섬유산업이 세계시장 개척 등을 통해 성장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리사이클 섬유 연구개발 및 생산 기반 확충은 물론 후방산업의 생태계 구축을 통해 리사이클 섬유산업과 후방산업과의 선순환 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돈벌이가 된 환경, EU 규제 나서 

  기업이 환경보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나, 위장 친환경주의를 의미하는 ‘그린워싱’ 논란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의류 업계들은 모피나 가죽 등 동물성 원피 대신에 버섯이나 파인애플 같은 바이오 원료를 활용하는가 하면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옷과 가방을 만드는 등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버섯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였고, H&M은 헌 옷을 가져오면 보상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러나 폐플라스틱 옷 역시 일반 폴리에스터를 사용한 옷과 마찬가지로 세탁 시 미세 플라스틱을 방출한다. 인조가죽을 만들 때도 폴리에스터가 사용된다. 친환경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계속 제품을 만들어 소비를 조장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의류 폐기물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노력도 드물다. 제품을 생산할 때 어떤 섬유를 사용했는지, 해당 의류 소비가 어떤 환경오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염정훈 캠페이너는 “재활용 기술 등 의류 업계의 친환경 정책은 근본적으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내구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 가능한 옷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캐나다 친환경 마케팅 기업 ‘테라초이스’는 그린워싱의 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유형으로는 △작은 속성에 기초해 ‘환경친화적’이라고 라벨링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환경적이라고 주장 △무관한 내용들을 연결해 왜곡 △허위 라벨 부착 △너무 광범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용어 사용 등이 있다. 한편 많은 국가 및 단체들이 해당 유형으로 그린워싱을 판별하고 있지만, 제품 제조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린워싱이 아닌 마케팅 분야에서까지 기업의 그린워싱 의도를 따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지난달 30일(토) EU는 그린워싱으로 소비자를 오도하는 패스트패션 산업을 단속하겠다고 예고했다. EU는 제품이 지속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내구성과 재사용 가능한 의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고 판매되지 않은 직물 폐기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U는 ‘친환경 의류’라는 말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예컨대 특정 브랜드의 어떤 제품보다 어느 정도 비율의 재활용 섬유를 사용했는지, 어떤 친환경 소재 비율이 얼마만큼 함유돼 있다 등 자세한 설명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약 설명이 충실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허위 주장이 적발되면 해당 기업은 소송까지 당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은 모든 의류 라벨에 해당 제품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며 재활용 및 수리가 용이한지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기재해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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