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석 명절 때였다. 며느리 중의 한 명인 나는 명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활짝 열린 안방의 창문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활짝 웃고 계셨다. 그 표정은 미인이라 할 수 없는 어머니가 아주 예쁘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평소에 엄하시고 비판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사라지고 순수하고 밝은 모습만 보였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세파에 시달려도” 수그러들지 않는 내면의 빛으로 나를 매료시킨 사람이 또 있다. 만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인 동료 교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분은 참으로 겸허하지만 내 잣대로 말하면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를 포함해서 “말 잘하는” 교수들 셋과 그 교수가 함께 학교 뒤 서달산으로 산책을 갔다. 그런데 그곳을 처음 가본 이 교수님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학교 뒤에 이렇게 훌륭한 자연이 있었는지 재직한 지 10년도 훨씬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면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자연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좋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서 좋았고, 내면에 차서 넘칠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제 내게 그 교수님은 더 이상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으나 자세히 보았을 때 자신의 매력을 보여 주는 세 번째 사람은 나의 이웃이다. 지금 3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사는 분이다. 우리는 그저 오며가며 목례 정도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남편이 그녀로부터 꿀로 코팅한 팝콘을 받아 왔다. 그때는 팝콘을 받을 때 남편이 충분히 감사 인사를 했겠지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며칠 전 나갔다 오니 그분이 우리 집 현관 앞에 파프리카 한 묶음을 놓고 가셨다. 이번에는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그 댁을 방문했다. 여름이라 방충망을 하고 현관문은 열려 있었는데 현관문 안쪽에 풍경이 두 개나 달려 있었다. 그 풍경들을 보는 순간, 그분은 내게 노바디(nobody)에서 썸바디(somebody)가 되었다.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어떤가요? 여러분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은은한 매력의 빛을 알아차릴 여유를 가지고 있나요?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