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역할을 넘어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재구성하는 기능을 한다. 미디어 속 이미지 재현은 이용자가 현실 세계에 대한 관념을 올바르게 형성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는 주류적 관점에서 형성된 의견을 확산시키며 타자를 정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인 장애인은 미디어 역사에 있어 보이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각 미디어 속 장애인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한국 드라마가 장애를 그려 내는 법

  드라마는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드라마는 일상성이 강하고, 생활 속으로 침투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과거 드라마 속 장애인의 이미지는 주로 동정받아 마땅하거나 이야기의 전개에서 비장애인을 당황하게 하는 존재로 부각됐다. 지난 1992년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사회정책학과 및 장애학센터 콜린 반스 장애학 교수는 장애인이 드라마 속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를 총 10가지로 나누었다. 그 종류로는 △불쌍한 사람 △호기심 많은 사람 △악한 사람 △폭력적인 사람 △우스꽝스러운 사람 △슈퍼 장애인 △주인공의 최악의 적 △부담스러운 사람 △성욕이 결여된 사람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진 특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가고 있다. 덕분에 존중받지 못하던 사회적 약자도 서서히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천재적인 두뇌를 동시에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방송돼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로, 서울대 경제학부를 조기 졸업 겸 수석 졸업했다. 우영우는 지적 장애나 자폐증 등 뇌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상인 서번트 증후군이 있어 법조문과 판례, 한번 읽어본 서류 속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기억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또 다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등장인물 문상태는 발달 장애 3급의 고기능 자폐를 갖고 있다. 그는 놀라운 암기력과 타고난 그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타인의 미세한 표정을 관찰하고 감정을 읽는 습관이 있다.

  드라마 속 장애인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장애인의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 생긴 잘못된 설정이나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향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천재 변호사가 현실에서 존재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있다. 또, 주인공 우영우가 동료와 빠르게 친해지고 의뢰인에게 공감하는 부분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성균관대 의대 정신의학과 정유숙 교수는 “자폐를 가진 사람들도 사회적 교류를 배우고 감정적인 연결을 발달시킬 수 있지만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드라마는 허구일 뿐이고, 다큐멘터리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역시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극 중에서 이상 행동이 온 문상태를 향해 “뒷머리가 예민한가 봐. 성감대 그런 건가?”, “아 폭탄 스위치. 만지면 펑 터지고 그런 거지?”라는 대사가 쓰여 비판받았다.

 

  장애인 배역, 장애인 배우가 연기할 순 없나요

  “장애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다양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간 비장애인의 장애인 연기가 ‘열연’으로 포장됐으나, 최근 ‘크리핑 업(cripping up·장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마치 아시아계나 흑인 역할을 각색해 백인이 맡는 것을 ‘화이트 워싱’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해외에서는 영화계가 장애 배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단발적인 시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공한 ‘한눈에 보는 2020 장애인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등록된 장애인은 261만 명으로 드러났다. 한국 전체 인구에서 장애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5.05%에 달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들을 마주하기 어렵다. 장애인 배역은 연기파 비장애인 배우의 ‘도전’이나 극의 신파를 담당하는 소재로 소비됐을 뿐이다. 영화 ‘말아톤’에서 배우 조승우가 자폐증을 가진 장애인을 연기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서구권에서는 장애인 배우의 활약이 활발하다. 지난 3월에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청각 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영화 ‘코다’ 속 청각 장애인인 아버지 역할로 남우 조연상을 받았고, 영화 ‘시라노’에서는 왜소증 장애인 피터 딘클리지가 용맹한 군인, 탁월한 시라노 역을 맡았다. 원작의 비장애인 설정을 장애인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장애인 배우가 배역을 따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린다. 운이 좋게 장애인 배역을 얻어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도 대부분 일회성 출연에 그친다. 사실상 장애인 배우는 아주 작은 단역이나 엑스트라 배역을 얻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화제성과 연기력을 입증해도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역을 따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는 장애인 배역에 비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관행이 있는데, 그 벽이 너무도 두꺼운 것이다. 뇌 병변 2급 장애를 가진 배우 길별은 “잘생긴 외모나 개성 등 배우가 지닌 다양한 특징처럼, 우리가 가진 장애는 아무나 표현할 수 없는 다양성 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비장애인 배우는 해당 배역을 위해 장애를 연구하고 장애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흉내 내 연기하는 것이 끝이지만, 장애인 배우에게 장애는 연기가 아닌 본인의 일생, 그 자체”라고 밝혔다. 길 씨는 지난 2014년 tvN 드라마 ‘갑동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를 연기하며 ‘신스틸러’로 떠오른 바 있다.

  장애인 배우 연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저조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장애인 문화예술 실태 및 센터 건립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장애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창작 작품에 대한 발표 기회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문항에서 “그저 그렇다”로 답변한 사람은 전체의 33.0%였다. 특히 연극 장르에서는 “매우 부족함”으로 답변한 사람이 45.2%로 가장 높았다.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김은경 이사는 “장애인 배우의 출연료가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길별 배우는 18년 차 배우인데 신인급과 비슷한 출연료를 받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배우 출연을 활성화하려면 인식뿐만 아니라 예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전망한다. 예컨대 청각 장애 배우가 출연하게 되는 경우 수어 통역사 같은 추가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제작사가 이런 비용 지출에도 부담을 덜 수 있게 정부에서 제작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장애인문화예술판 좌동엽 대표는 “중증 장애인들이 의상을 갈아입을 때 한 명, 두 명이 아니라 스탭들 몇 명씩이 투입돼야 한다”고 전했다.

 

  유튜브에 쏟아지는 ‘사회 실험’이라는 기만

  유튜브 속에서 장애인은 한정적인 역할로 나타나며 사회적 편견을 바탕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장애인의 수동적이고 약자적인 측면을 강조한 영상은 다른 영상에 비해 높은 조회 수를 보인다. ‘갑자기 의식을 잃은 장애인,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한국인 인성]’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은 지난 17일(금) 기준 조회 수 1,582만 회를 기록했다. 해당 영상은 한국인의 반응을 실험해 본다는 명목하에 횡단보도에서 장애인이 넘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관찰했다. 해당 영상에는 약 8,300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그중 ‘야 저건 그냥 지나가면 죄책감 씹오진다고...’라는 댓글은 약 4,800명의 공감을 받으며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중앙대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A 씨는 “사실상 한국인의 범주를 비장애인으로 국한하고 장애인을 타자화하면서 민족적 유대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장애인을 통해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유발하는 재현 방식이 유튜브 이용자를 유인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인다”고 밝혔다.

  뇌 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힌 유튜버 B 씨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실험 영상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B 씨는 ‘여태까지 영상을 안 올렸던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며 과거 한 유명 유튜브 채널이 제안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실험’ 영상의 섭외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B 씨는 “많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실험이 ‘감동 카메라’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소비돼 왔는지에 관해서 몹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며 섭외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관공서들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제작 및 공유하고 있다. 해당 채널들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 주제를 설정하고 영상을 제작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토크 쇼 △퀴즈 쇼 △상황극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했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장애인이 일상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영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장애인과 관련된 관공서 채널 중 구독자가 500명이 넘는 채널은 극소수이며, 조회 수 또한 개인 유튜버가 제작한 장애인 영상에 비해 매우 저조한 모습을 보인다. A 씨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정확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관공서 영상이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유튜버의 영상보다 적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차별·편견 조장하는 보도는 그만,  언론이 인식 개선 앞장서야

  언론은 사회 문제를 조명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언론을 통해 대중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더불어 언론은 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볼 힘을 부여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론은 사회적 약자에도 관심이 많다. 언론에서는 그중 장애인을 어떻게 비추고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테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해 실시한 언론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장애인 기사 보도량은 1,415건으로 지난 2019년 1,485건 대비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언론의 역할’로 49.1%가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응답했고, 그중 혐오 표현의 58.2%가 장애인 대상이라고 응답했다.

  언론사에서 정치인의 정신 질환자 비하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인용하는 경우가 그 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등이 발표한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은 ‘정신 질환에 빗대어 심각성을 묘사하는 표현’ 등을 자제하고, ‘기사 제목에 정신 질환 관련 언급을 최소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에서 당시 윤석열 대선 예비 후보가 “집이 없어 주택 청약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해 비판받은 것을 해명하면서 “주택 청약 통장을 모르면 거의 치매 환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에 부산일보는 ‘주택 청약 통장 뭔지 모르면 거의 치매 환자’라는 기사를 발행했고, YTN 역시 ‘주택 청약 통장 모르면 거의 치매 환자’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해 논란이 일었다. 기사 본문에서도 해당 발언을 옮기기만 했을 뿐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은 없었다.

  또한 정신 질환을 비하적 의미로 사용하거나 특정 집단 공격을 위해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경제의 ‘샤워하는데 시아버지가 욕실 문 벌컥, 치매 vs 주작 논란’ 기사는 자신이 샤워 중인 욕실에 시아버지가 자꾸 문을 열고 들어와 고통스럽다는 내용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다루며, “시아버지가 치매 증상일 수도 있다”라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그대로 인용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정부 기구 남아프리카정신건강연맹은 지난 2016년 발표한 ‘정신 건강에 대한 책임 있는 보도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에서 “어떤 행동이 충격적이거나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걸 정신 장애나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성적 모욕감을 준 사람을 ‘치매 환자’로 예단하는 주장은 단순히 사실관계 확인 부족을 넘어 정신 질환자·정신 장애인을 모욕하는 것이며,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성균관대 백선기 언론정보대학원장은 한국방송학회 논문에서 ‘장애인 등과 같이 우리 사회의 중심부에 위치하지 못하고 주변부에 위치한 자들에 대한 인식은 우리 사회 언론들의 보도 경향과 깊은 연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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