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토) 본지는 본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주최하는 ‘제25회 박물관 문화 아카데미’에 동행했다. 이번 ‘제25회 박물관 문화 아카데미’에서는 ‘삽교천의 작은 물줄기, 버그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당진시의 여러 장소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제25회를 맞이한 박물관 문화 아카데미(이하 박물관 아카데미)는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역사 답사 프로그램이다.

  당진에 가다

  충청남도 당진시는 인구 16만 7천여 명의 도시로 충청남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당진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충남 아산시와 삽교천 있고, 서쪽에는 충남 서산시가 있다. 삽교천은 충남 홍성부터 아산만까지 흐르는 하천으로 버그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쪽에는 충남 예산군이 있고, 북쪽에는 아산만 그리고 아산만 너머는 경기도 평택이 있다. 당진은 화력 발전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예로부터 ‘버그내 순례길’ 등 한국 천주교 역사의 현장이 담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잔잔한 역사가 담긴 면천읍성 

  첫 답사지로 면천읍성을 방문했다. 면천읍성은 지난 1439년 당진 면천에 축조된 성이다. 면천읍성을 축조하게 된 배경에는 왜구의 침략이 있다.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지난 1350년부터 1392년까지 한반도는 왜구 침략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태종까지 조선 조정의 왜구 침략 대응은 주로 산성에서 이뤄지는 소극적 방어였다. 이후 조선 조정은 지난 1415년에 이르러서 바닷가에 인접한 지역에 읍성을 짓기 시작했고, 면천읍성은 지난 1439년에 완성됐다.

본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주찬혁 교육연구조교가 참가자들에게 면천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면천읍성의 남문과 성곽 일부가 복원됐다. 남문은 옹성이 둘러싸고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쌓은 시설이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이러한 옹성은 성문 보호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면천읍성의 남문에는 원기루(遠寄樓)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면천읍성의 남문이다. 옹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면천읍성 안에는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 △군자지(君子池)·군자정(君子亭) △면천 은행나무가 있다.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는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운동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은 지난 1919년 3월 10일에 3·10 학생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면천 공립 보통학교 4학년 학생이었던 △원용은 △박창신 △이종은이 3·10 학생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전교생 90여 명을 데리고 면천의 시내를 돌아다니며 만세 운동을 벌였다. 만세 운동 도중 일제 헌병과 교사들에게 만류되기도 했다. 만세 운동이 끝나고서 만세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일제 헌병에게 고문당하고 취조받았다. 이러한 3·10 학생독립만세운동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학생 만세 운동이기 때문에 역사적 의의가 크다.

참가자들이 군자정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옆에는 군자지와 군자정이 있다. 군자지는 고려 후기 공민왕 시절 지군사(군의 으뜸 벼슬) 곽충룡이 읍성 내에 만든 연못이다. 군자정은 지난 1803년 면천군수 유한재가 피폐해진 군자지를 보수하면서 조성한 정자다. 현재 있는 군자정은 지난 1994년 당시 당진군에서 6모정을 다시 8모정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1100년이 넘은 면천 은행나무이다.

  면천 은행나무도 근처에 있다. 두 그루의 면천 은행나무의 나이는 대략 1100년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6년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나무다.

당진의 포구’를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

  면천 은행나무의 나이와 관련해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에 대한 관련한 설화가 있다. 복지겸은 자신의 고향인 면천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복지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고쳐 달라며 날마다 기도했고, 이에 산신령이 영랑의 꿈에 나타난다. 산신령은 영랑에게 아버지가 병이 낫게 하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는 것이었다. 그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바로 면천 은행나무다. 설화가 나타난 시기가 고려 초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면천 은행나무의 나이가 1100년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날 본 면천 은행나무는 매우 우람했다. 면천 은행나무의 높이는 각각 20미터, 19미터, 둘레는 모두 6미터 정도로 1100년 역사에 걸맞은 기상을 볼 수 있다. 매년 면천 주민들은 목신제를 올린다고 한다. 목신제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큰 나무에 헝겊과 종이를 오려서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폐교 건물에서 미술관으로, 아미미술관

  두 번째 답사지로 아미미술관에 갔다. 아미미술관은 지난 1993년 폐교된 유동초등학교 건물을 박기호 작가와 구현숙 설치 미술가가 개조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날 아미미술관에는 ‘예술가들의 당진 포구, 두 번째 이야기’와 ‘나의 정원...모두의 정원’, ‘영혼의 꽃밭 설치전’이 전시돼 있었다. 

아미미술관 외부 모습이다. 옛 학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미미술관에 입장하자마자 좌측에 ‘예술가들의 당진 포구, 두 번째 이야기’가 전시돼 있었다. ‘예술가들의 당진 포구, 두 번째 이야기’는 당진의 포구를 주제로 한 아미미술관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 전시회다. 레지던시는 일정 기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미미술관에 따르면 당진 포구는 과거 60여 개가 있었고, 당진의 문화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줬다. 그러나 각종 △간척 사업 진행 △해안가에 대규모 산업 단지 조성 △방조제 건설로 인해 현재는 포구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이에 아미미술관은 당진에서 사라져 가는 역사 문화를 △발굴 △조명 △재탄생하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레지던시를 진행하고 있다. 주제는 ‘당진의 포구’다. 올해도 5명의 작가가 두 달 동안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회화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우측에는 ‘나의 정원...모두의 정원’, ‘영혼의 꽃밭 설치전’이 전시 중이었다. ‘나의 정원...모두의 정원’에서 붉은빛이 옅게 도는 나무 형태의 조형물이 전시돼 있었다. 이 조형물이 빛에 반사되며 실내에 붉은빛이 은은하게 돌아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만들어졌다. ‘나의 정원...모두의 정원’ 옆에는 ‘영혼의 꽃밭 설치전’이 있었다. ‘영혼의 꽃밭 설치전’에는 천장에 원형 종이를 이어 붙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돼 있었다. 조형물 사이에 비치는 빛과 조형물의 조화가 실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미미술관 바깥에는 각종 조형물과 드넓은 운동장이 있다. 붉은색으로 아름답게 번진 단풍과 조형물의 조화가 예술이다. 운동장을 거닐다 보면 가을의 날씨를 산뜻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조선 천주교 눈물의 역사, 신리성지

  마지막 답사지로 신리성지에 갔다. 신리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제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거처이자 당시 조선 최대의 교우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우촌은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였다. 신리는 한국에서 천주교 교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지역으로 천주교 서양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 역할을 한 지역이다. 또한 신리는 지난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와 손자선을 비롯해 신부와 신자 5명이 순교한 유적지다.

신리성지 모습이다. 순교자 경당과 성 다블뤼 기념관이 보인다.

  프랑스 출신의 다블뤼 주교는 지난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충남 논산에 있는 강경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충남 내포 지역의 조력자인 손자선의 집에서 지냈는데, 손자선의 집이 신리에 있었다. 다블뤼 주교는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조선어 번역 작업을 했고, 훗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103위 성인은 당시 조선 조정이 천주교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순교한 103명의 순교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순교자 중 다블뤼 주교를 기리는 경당이다.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순교자 중 다블뤼 주교를 기리는 경당이다.
다블뤼 주교의 거처이자 순교자 손자선의 생가이다.

  신리성지에는 △성 다블뤼 주교관 △기념 성당 △대형 부조상(평면에 높낮이를 만들어 표현하는 조각상) △야외 성당 △성 다블뤼 기념관(순교미술관) △순교자 경당(소성당) 등이 있다. 성 다블뤼 주교관은 과거 다블뤼 주교가 머물던 조력자 손자선의 집이다. 기념 성당은 순교자인 다블뤼 안토니오와 손자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기념 성당 외벽에 있는 대형 부조상은 순교자들의 부활을 주제로 만들었다고 한다.

성 다블뤼 기념관 지하에 있는 순교미술관이다.

  성 다블뤼 기념관 지하에 가면 순교미술관이 있는데, 오천 원권과 오만 원권의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그림을 그린 이종상 화백의 작품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순교미술관에는 이종상 화백이 그린 순교 기록화 13점과 신리성지 순교 성인 5인의 영정 그림이 있으며,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교회 서적을 전시하고 있다. 성 다블뤼 기념관의 지상 4층에 가면 전망대가 있어 신리성지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순교자 경당은 신리성지에서 순교한 순교자 5인의 얼굴과 함께 이들이 남긴 어구가 있다. 내부에는 기도할 수 있게 의자가 있으며, 온전히 신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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