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은 그의 <꽃>이라는 시에서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 적이 있다. 모든 존재는 그만의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고, 그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받을 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꽃은 활짝 피었을 때 그 선연한 빛깔로 우리의 눈길을 끌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존재를 한껏 발산함으로써 자신에게 알맞은 단 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무명(無名)의 어둠’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탄생하게 된다.


필자는 시를 읽고 가르치는 선생이라, 사람들에게서 그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빛깔에 매료되고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향기에 흠뻑 취하여 그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픈 사람이다. 그런데 캠퍼스의 세태는 어떤가? 특히 요즘 학생들의 외모 가꾸기는 예전에 비할 수도 없이 부쩍 극성스럽다. 남학생들조차도 스쳐 지나다 보면 향수 냄새에 얼굴을 돌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열심히 운동한 남학생들의 땀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고, 밤새 리포트를 완성한 여학생들의 수척해진 생얼굴도 보고 싶다. 인위적인 빛깔과 향기로 외모 가꾸기를 할수록, 자신의 내면에서 뿜어내는 빛깔과 향기에는 그만큼 소홀하지나 않을는지 염려를 하면 나만의 기우일까?


이미 저마다의 이름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빛깔과 향기는 무엇으로 느낄 수 있을까? 사람들의 표정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 사람의 빛깔과 향기는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고,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보다 내밀한 마음의 빛깔과 향기를 감지할 수도 있게 된다. 더욱이 어떤 사람의 글을 접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그의 인격적인 빛깔과 향기를 흠뻑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하여 남다른 빛깔과 향기를 뿜어냄으로써 자기를 실현하고 인생을 완성해가는 존재이다. 자신의 일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소진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멀리서도 그의 빛깔을 뚜렷이 볼 수 있고, 그가 뿜어대는 향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랜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전공분야를 힘써 닦는 시절은, 앞으로 평생 동안 자신이 해 나갈 일의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생 전체를 통해 어떤 꽃을 피울 것이며, 어떻게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뿜을지 이름 없이 고뇌하고 모색하고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는 아직도 ‘무명(無名)’의 시절을 사는 것이다. 대중사회의 유행을 쫓아 가꾼 외모의 빛깔과 향기로만 자신의 이름이 타인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저어스러워해야 할 때라는 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껍데기만 남기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남기고 죽는다.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놓은 나의 빛깔과 향기는 바래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옮겨붙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매순간 스스로를 되돌아 볼 일이고, 행여 내 이름이 추한 모습과 악취를 풍기지나 않을는지 염려해볼 일이다. 나는 죽고 사라지더라도 후세를 사는 사람들에게 ‘꽃’이 되어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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