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원고 법정 진술 기자회견’에서 응우옌 티탄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뉴스1

  지난달 7일(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베트남 전쟁 중에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 하는 첫 판결이다. 그러나 군·정부는 지난 9일(목) 항소장을 제출하며 판결에 불복했다.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법부의 첫 판단
  지난달 7일(화) 베트남 전쟁 시기에 벌어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지난 2020년 4월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재판부가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했던 한국 군인, 베트남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과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응우옌 티탄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응우옌 티탄 씨가 8살이었던 지난 1968년 2월 12일(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이 마을을 공격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응우옌 티탄 씨는 5명의 가족을 잃고 자신 역시 복부에 총을 맞아 1년간 입원했다. 응우옌 티탄 씨는 “그날 한국군이 느닷없이 들어와 사람을 줄 세워 놓고 총을 쐈다”며 “74명이 죽은 현장에서 나는 배에 총을 맞고 창자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로 기어 다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당시 베트남군을 섬멸하는 작전 과정에서 해병 제2여단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원고의 집에 들어가 총격을 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명백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재판부는 응우옌 티탄 씨 측이 청구한 손해 배상 청구액 3천만 100원과 지연 손해금 일부를 인정했다.

  재판의 주요 쟁점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으로는 △사실 관계 △소멸 시효 문제 △한·월 군사 실무 약정서가 대두됐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사실 관계에 대해 정부는 한국군으로 위장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군인(이하 NLF)의 소행이거나 게릴라전에 의한 정당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목격자와 참전 군인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정부의 주장을 기각했다. 정부는 52년이 지나 소멸 시효에 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아직 소멸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학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양국의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재판부는 당시 응우옌 티탄 씨가 자신의 권리를 제때 행사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지난 1965년 9월 5일(일)에 체결된 ‘한·월 군사 실무 약정서’ 제19조에 따라 정부는 베트남인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사 당국 사이 실무 약정은 기관 간 합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고 국가배상법을 적용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봤다.

  외면하는 군·정부
  지난 9일(목) 군·정부는 항소장을 제출하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판결에 불복했다. 국방부는 1심 법원 판결에 대해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군 당국의 반발에 시민 단체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시민 단체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사무처장은 “판결 결과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항소하며 억지 주장을 이어가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항소 결정에 베트남 정부는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베트남 외교부 팜 투 항 부대변인은 지난 9일(목)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한국 법원의 판결과 한국 정부의 대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과거를 제쳐 두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옹호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판결로 이어지기까지 어려웠던 여정
  한편,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응우옌 티탄 씨 측이 관련 정보 취득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3월 26일(금) 대법원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관련 조사 자료를 응우옌 티탄 씨 측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는 국정원이 거부한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공개 청구’와 관련 있다.

지난해 8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원고 법정 진술 기자회견’에서 응우옌 티탄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뉴스1
지난해 8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원고 법정 진술 기자회견’에서 응우옌 티탄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뉴스1

  지난 2017년 8월 응우옌 티탄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가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공개 청구를 진행했지만, 국정원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와 ‘조사 대상자의 사생활 침해 우려’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 임 변호사와 국정원은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이어가 항소와 상고를 반복했다.

  결국 대법원은 해당 조사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을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 불속행 기각은 원심 판결에 법 위반 등 사유가 없다고 판단될 때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개인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으로도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사료이므로 공개할 가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원으로부터 공개된 정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학살 사건으로 국정원의 조사를 받은 세 사람의 이름과 거주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에 국정원은 “이미 정보 공개 소송 판결을 통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관련자 3명을 조사한 기록을 응우옌 티탄 쪽 소송 대리인에게 제공했다”며 “추가적 사항은 공공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송부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베트남 전쟁은 지난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북베트남 정부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NLF △남베트남 정부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미국과 기타 동맹국 간 벌인 전쟁이다.

  한국군 참전은 지난 1964년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의 파병 요청으로 이뤄졌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목과 베트남 전선은 한국 전선과 직결돼 있다는 국가 안보의 차원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이에 1964년 9월 한국 정부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하는 비전투 요원 파견을 시작으로, 이후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누적 30만 명이 넘는 전투 병력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그 과정에서 1만 6,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재에도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베트남 전쟁 이면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증언은 지난 1999년 이후 계속해서 제기됐다. 지난 1966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故 응우옌 떤 런 씨는 지난 2015년 경북대에서 열린 ‘아시아 평화의 밤, 전쟁 피해자의 증언’에서 “새벽 4시, 마을을 향한 폭격이 시작됐을 때 바로 방공호에 가족과 숨었지만, 한국군에게 들켜 논으로 끌려 나왔다”며 “논에는 이미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마을 주민 여러 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응우옌 떤 런 씨는 “한국군은 우리를 모여 앉게 한 뒤 우리에게 일제히 총을 쐈다”며 “몸에 수류탄 파편도 튀었지만 죽지 않았기에 가족을 찾아다녔다”고 증언했다. 권 사무처장은 “피해자가 공통으로 원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라며 “우리가 그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8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응우옌 티탄 씨가 한국군의 학살 사건을 증언하는 모습이다. 출처: 뉴스1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가 기억하리라’
  현지 피해 유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 피해자는 9,000명가량에 이른다. 베트남 현지에 위령탑이 세워진 대표적인 사건에는 △퐁니·퐁넛 학살 △하미 학살 △빈안 학살 등이 있다. 퐁니·퐁넛 학살은 지난 1968년 2월 12일(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해병대 청룡부대에 의해 주민 74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하미 학살 역시 청룡부대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지난 1966년 2월 22일(화) 꽝남성 하미 마을의 주민 135명이 희생당했다. 빈안 학살은 지난 1966년 1월에서 2월 동안 떠이빈 15개 마을에서 맹호부대에 의해 1,004명의 주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지난 1966년 12월 5일 해병대 소속 청룡부대가 민간인 36명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총살했다고 전해지는 ‘빈호아 마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들어서 있다. 한국군 증오비에는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가 기억하리라’는 문구와 ‘한국군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국군 증오비에 따르면 희생자는 모두 430명이다. 이 중 268명이 여성이다. 어린아이는 182명이며 50세 이상 80세 이하의 노인은 109명이다. 또한, 희생자 중 7명은 임신한 여성이었다. 이 중 2명은 성폭행까지 당했다.

  모호한 태도의 양국 정부
  해당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여 년이 지난 후 한국과 베트남 정부 모두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수교를 맺은 지난 1992년 베트남 정부는 승전국의 입장에서 굳이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한국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당대 대통령들의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언급이 이뤄졌지만, 유감 표명 수준으로 조절돼 왔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안’과 ‘위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음의 빚’,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감’이라는 단어를 쓰며 베트남 전쟁에 대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사과는 없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및 한국과 경제적인 협력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베트남 정부의 뜻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권 사무처장은 “대통령의 사과는 베트남 전쟁 과거사 문제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개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판단된다”며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어떤 움직임도 없고 이와 관련된 진상 규명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첫발, ‘특별법’ 발의
  지난달 23일(목)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 외 25명이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작전으로 숨지거나 다친 민간인과 그 배우자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민간 위원 7명으로 구성된 피해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강 의원은 “한국은 일본 정부에 수십 년간 공식적인 사과와 응당한 책임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베트남에는 가해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철저히 피해자 중심주의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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