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했다면...”

  가정법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심정을 나타낼 때 쓴다. 그렇기에 사실을 서술하는 형태인 직설법에 대응한다.

  일상에서 말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여러 상황에서 현재 발생한 결과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다. 좋은 결과를 예찬할 때 쓰기도 하지만, 잘못된 결과를 원망할 때 쓰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여기서 좋음과 잘못됨은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만약 미리 공부했다면 더 좋은 성적이 나왔을 텐데”, “만약 내가 더 똑똑하다면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좋은 성적’과 ‘실수’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거나, 실수했을 때 원인을 과거에서 뒤지는 것이다. 보통 그 원인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과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미리 공부하지 않은 것이고 만족할 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Fact(사실)인가? 아닐 확률이 높다. 정확히는 명명백백한 사실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애당초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런 생각만으로는 바뀌는 것이 없다. 자기 확신이 약해지거나 우울의 심연에 빠질 수는 있겠다.

  결국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 이미 발생한 일은 사실에 가깝다.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 또한, 이미 발생한 일의 원인을 단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얽히고설킨 여러 요인이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를 하나하나 다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역사든 돌아볼 때 의의가 생긴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완벽은 허상이기에 완벽한 과거는 존재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가 있다면 들여다보며 얻어갈 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가정법을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을 부정하는 것과 달리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대로 의미가 있다. 그 당시에만 쌓을 수 있던 경험치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삶이 올바르게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연승해야 한다. 질지언정 중도 포기하면 안 된다. 패전에서도 경험치는 챙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건강할 수는 없겠지만 우상향 과정인 것은 인지하자. 온몸을 긍정으로 무장하고 즐기면서 싸워 보자. 역사에 가정법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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