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츠 마모루 외상.         자료: 한국일보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츠 마모루 외상.     자료: 한국일보

  1945년 9월 2일.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일요일 일본 도쿄 만의 미주리호 함상에서는 일본의 항복 의식이 있었다. 항복문서에는 외무상이었던 시게미츠 마모루가 전권을 부여받아 서명을 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정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시게미츠 마모루는 만주사변 당시 주중 공사였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때 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다. 이후 도쿄재판에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4년 7개월의 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그 후 1955년에는 외무상으로 일본의 국제연합 가입을 이루어냈다.

  시게미츠 마모루가 출소한 후 일본은 연합국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여 1952년 정식 국가로 독립하였다. 일본의 독립은 중국의 공산화, 한국의 6.25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래 미국은 아시아의 반공 기지로 중국을 낙점하였으나 중국이 공산화되자 급히 일본으로 방어선을 내렸다. 일본이 독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의 미군정은 지속되었다. 미군의 70% 이상이 오키나와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 본토에 갈 때는 여권이 필요할 정도였으며, 오키나와는 1972년 미국의 닉슨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방문한 이후인 5월이 돼서야 일본에 반환됐다.

  1952년 일본의 독립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패전국이므로 늦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긴 하였지만, 국가는 유지되고 있었다. 중화민국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 일본의 꼭두각시 정권이 있었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있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서로 대립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대일 공동 항전을 위해 제2차 국공합작을 맺었다. 서로 간 대립을 멈추고 일본의 침략을 막자는 목적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국공 간의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46년 7월 국민당과 공산 당군은 430만:120만이었던 것이, 1949년 전쟁이 끝날 당시에는 149만:400만으로 역전되었다. 결국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이동을 하고, 중국 대륙은 공산당이 차지하였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일본의 침략은 ‘대동아공영권’을 근거로 한반도와 중국을 넘어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을 중심으로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식민지를 해방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서양 열강의 식민지였던 동남아 국가들에 환상을 심어주고 결국은 자신들이 서양을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동남아 침략은 1940년 베트남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이 항복하자 베트남에서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호찌민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명목만 유지하던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 다이도이를 인정하였다. 호찌민은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포츠담회담에서 베트남 내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중국군과 영국군이 16도선을 경계로 진주하기로 하면서 독립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또 프랑스도 식민 지배를 다시 하고자 하였다. 프랑스가 호찌민 군대와의 싸움에서 밀리자 미국은 프랑스를 지원하고, 이후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면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이 파리협정에 따라 남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북베트남군은 사이공을 점령하고 1976년 통일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5년 8월 15일을 가장 반긴 것은 한국민이었다. 35년 간의 기나긴 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군과 미군의 진주에 따른 38선은 남북을 분단하였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9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50년에는 남북 간에 내전을 치르기까지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왜곡된 동아시아 정세는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의 상처는 온갖 곳에 남아있고, 일본은 전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세계적인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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