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말해봐!
객관적으로 말해봐!
  • 오충연 교수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0.09.15 10:03
  • 호수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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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학에서 서법은 명제에 대한 화자의 관점과 태도를 담아내는 문법형식을 일컫는다. 서법은 인구어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지만, 국어에 적용하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많다. 국어 서법의 예를 들면, “강아지가 뛰어가더라.”라는 문장에서 ‘강아지가 뛰어가-’까지는 명제가 되고, ‘-더라’는 그것을 회상하는 화자의 관점과 청자에게 전달하는 태도까지 들어 있는 서법이다. 많은 문법학자들은 문장의 기본적인 요소를 명제로 보고, 서법은 그것에 덧붙는 별도의 양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을 생각해보자. “호랑이는 노루를 잡아먹는다.”와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먹더라.”의 두 문장에서 명제 내용은 차이가 없을까? 명제의 구성에는 ‘모든’, ‘어떤’, ‘한’ 등과 같이 집합의 범위를 결정해주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전자가 각각의 대상에 대하여 총칭적(generic)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달리,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먹더라.”에서는 ‘호랑이’나 ‘노루’가 지정적(specific)인 대상이 된다. ‘-더라’가 명제를 실제의 사태로 표시해줌으로써 두 대상은 화자가 목격한 특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어나 목적어의 양화(量化quantity)는 많은 경우에 대화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서법도 이에 중요하게 관여한다. 시제나 서법 등의 문법 요소들이 명제에 관여하는 문제 때문에, 필자는 종종 논리학의 연구자들과 추론 문제에 대한 결론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논리학에서는 전형적인 문장을 형식화된 기제로 바꾸고 이를 토대로 다소 기계적인 추론을 하는 반면에, 언어학에서는 실제 문장으로부터 해석이 가능한 모든 경우를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명제적 내용과 서법이 분리되지 않는 성질은 한국어와 같은 언어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어순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보여서, 성분의 계층적 구조가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성향이 있다. 헤일(Ken Hale)은 이들 언어에 대해서 비형상적 언어(non-configurational language)라 하여 형상적 언어와 구분한 적도 있었다. 대중에게는 이런 구분이 어떤 언어는 ‘과학적’이라거나 어떤 언어는 ‘비과학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비형상적 언어들도 형상성으로부터 마련되는 내적인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이 꾸준히 연구됨으로써 헤일의 구분은 그 의미가 퇴색했다. 또한 이른바 형상적인 언어에서도 명제가 그리 명확하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The man is emotional animal.”과 “The man was handsome.”에서 두 문장의 주어는 같은 관사가 사용되었음에도 각각의 문장에서 발현되는 양화가 다르다.

  한때는 명제적 등가성을 가지는 두 문장은 심층구조가 같다고 설정하고 변형을 통해 표면형이 도출된다는 관점이 팽배했었다. 예를 들어서 “철수는 영희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의 ‘영희를’은 “철수는 영희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에서 내포절의 주어인 ‘영희’가 외포절의 목적어 자리로 이동한 것이라는 식의 설명이다. 설득력이 있지만, 그 자리가 원래 목적어 자리였는지 새로 생겨난 자리인지에 대해 합의를 보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명제란 실제 문장에서 구현되는 의미에 대하여 인지적 등가성을 위해 마련된 메타언어적(metalingual)인 해석의 결과이지, 문장을 생성하는 데 있어서의 기저 원리가 아님을 강조해 왔다. 심리적 실재성의 측면에서는 언어의 기저가 명제와 서법으로 분리되어 형식화되어 있거나 객관과 주관이 구분되는 체계로 보이지는 않는데, 이런 관점은 언어적 내용으로 형식화될 수 없는 언어 기저에 대하여 언어학에서 다루는 형식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 방법상의 심각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학술적 범주 내에서 논리적 과정을 쌓아가는 학술 내용과는 다르게, 범주 자체의 근원을 찾아가는 문제에는 범주 밖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가지 단서는 신경학적 연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어휘설정, 명제구성, 변형 및 표현 등으로 이어지는 이론적이고도 단선적인 문장 생성 과정에 대응하여 뇌의 어휘 영역, 구문 영역, 발화 운동 영역으로 알려진 구역들이 순차적이거나 단선적으로 활성화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언어 영역으로 알려진 구역뿐만 아니라, 일반 감각 및 운동 영역이 병렬적으로 활성화되며 상호 연결에 따른 교차성을 보인다. 브로카 영역은 문장처리뿐만 아니라 음악을 들을 때도 활성화되고, 음악이나 언어는 모든 뇌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어느 인지 과정에서든 항상 활성화되어 조율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상은 언어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상을 감싸고 있는 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빠른 속도로 대뇌 전반은 물론 신체와도 교류한다.

  인식의 단계에서부터 표현에 이르기까지 주체를 배제한 객관은 없다. 그리고 주체의 핵심은 정서와 관점이다. 표면적으로 서법이 표시되지 않는 문장은 서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본값(default)으로 표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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