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숨겨진 욕망 읽기
영화 속에 숨겨진 욕망 읽기
  • 정인관 교수 (정보사회학과)
  • 승인 2020.10.15 13:53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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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총 2억 2,668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19년 대한민국의 인구가 약 5,200만 명이었으므로 일 인당 평균 약 4.4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이다. 같은 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총 다섯 편이었다. 2003년 말에 개봉했던 <실미도>가 국내 개봉 영화 중 최초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후 2019년까지 총 27편의 영화가 천만 고지에 올랐다. 물론 오늘날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극장뿐이 아니다. 집에 앉아서, 이동하는 전철에서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영화를 보는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평론집 <분석과 해석>에 실려 있는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글에서 이야기를 크게 세속적 이야기와 환상적 이야기의 두 종류로 나눠 설명한다. 세속적 이야기는 상투적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축적되어 일반화되면 속담이나 지혜로 정리된다. 환상적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별난 이야기로 수수께끼로 정형화된다. “일상적 이야기의 이편은 현실이며, 환상적 이야기의 저편은 꿈이다. [...] 이야기는 현실과 꿈 사이에 있다. 현실과 꿈 사이에 있는 이야기를 정제하여 줄글로 옮겨 놓은 것이 소설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영화들은 익숙한(그래서 종종 따분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그 일상을 미세하게나마 흔드는 사건들로 나아간다. 또 다른 영화들은 특이하고 그래서 비일상적인 지점에서 시작하지만 독특한 사건들은 그 안에서 점차 일상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흔히 ‘일상의 미학’을 강조하며 정말 반복되는 일상에만 매몰되는 영화는 관객들을 졸음으로 인도하며, 반대로 비일상성만을 강조하는 영화들은 이해 불가의 평가를 받으며 괴작으로 등극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화들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두 지점 사이를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앞에 인용한 글에서 김현은은 소설이 작가, 주인공, 그리고 독자의 욕망이 들끓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계를 변모시키려 하며,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으로 혹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세계를 변형하려 한다. 독자 역시 자신의 욕망을 지닌 존재로 때로는 소설과 그 인물들을 부인하고, 때로는 그것에 빠져 모방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영화 시청은 이러한 다양한 욕망들이 맞물리는 시간이며, 공간이 된다. 왜 어떤 영화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왜 같은 영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가? 우리가 “도대체 이따위 영화를 왜 만들었지?”라고 물을 때 그것은 영화를 만든 사람의 욕망에 대한 도전이며 그와 반대 지점에 놓여있는 내 욕망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된다.

  인간이 사회 속에 배태된 존재임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욕망 역시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본다면 영화는 같은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욕망이 맞물리는 공간이 된다. 이때 ‘입장’이란 세대 별로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포괄하는 개인의 삶을 기반으로 형성된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지점‘들’을 의미한다. 2013년에 <변호인>을 보며 감동했던 사람들과 2014년에 <국제시장>을 보며 눈물지은 사람들은 그 교집합만큼 각자의 여집합도 컸다. 어떤 영화를 ‘신파’나 ‘최루성’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그 영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여준다. 자신이 공감하고 싶은 것과 공감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의지의 반영이기도 한 이러한 행위는 결국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자주 사회정치적인 논란의 장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김경욱이 2016년 펴낸 평론집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는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2010년대 한국 영화를 둘러싼 담론의 지형도를 펼쳐놓는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놓여있는 듯 보이는 <국제시장>과 <변호인>은 둘 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나란히 놓인다. 이 질문은 2010년을 전후해 한국 사회를 관통했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이 충돌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곧 다가올 2021년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또 천만 고지를 넘을 수 있을까? 코로나로 흉흉한 시절에 재난 영화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북한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첨예한 시점에서 남북화합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은 내년에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영화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경우 졸작이건 걸작이건 모든 사람들로부터 굉장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마이켈 우드, <영화 속의 미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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