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배울 때였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수강생들에게 강사가 제일 먼저 가르쳐준 언어는 시쯔레이시마스. 실례합니다. 강의 도중 문제가 있을 때 사용하라는 것이다. 놀라웠다.

  독일에서 유학한 선배의 얘기다. 오랜 유학생활을 통해 동아시아 3국 사람들의 차이를 느꼈단다. 조촐한 파티장이다. 일본 유학생. 날씨가 조스무니다, 옷 색깔이 느무 이쁘무니다. 쓸데없이 사소한 말을 낯선 사람과 잘도 나눈다. 중국 유학생. 술 한 잔을 들고 구석진 곳에 자리하여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음흉하다.

  한국 유학생은 어떨까. 들어오자마자 왜 이리 먹을 것이 없어, 투덜투덜한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헤겔의 절대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관념적인 질문을 툭툭 던진단다. 낯을 가리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과 찐한 정을 나누려고 한다.

  물론 찐한 정을 급히 나누다보면 그 다정함의 과함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 호의를 거절하기 힘들고 상응하는 보답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다고 삐진다. 은혜와 원한의 감정에 얽힌다. 정리하자면 일본인은 겉치레, 중국인은 음흉, 한국인은 관념적이면서 찐한 정.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한국이 도덕지향적이고 리(理)를 중시한다고 논리를 전개한다.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한국은 주자학의 영향을 받아서 리(理)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란다. 리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성향이 주자학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왜 리를 선호하게 되었을까? 한국은 하나의 철학적 문제의 대상이다.

  한국인이 리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한반도 상황과 관련된다. 반도의 특성상 심각한 위기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균열과 와해, 분열의 공포가 <질서=리(理)>를 추구하게 된다. 치명적인 상처로 인한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접착제가 집단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질서=리(理)>이다.

<질서=리>는 한국인의 특성인 <다정=관념>과 유사하다. 정으로 얽혀 관념에 집착하는 집단주의이다. 문제점은 은혜와 원한의 관계에 빠져 정으로 똘똘 뭉칠 때이다. 폐쇄성과 배타성이다. 관념은 폐쇄와 배타를 위한 도구적 논리일 뿐이다.

  이는 강한 민족주의, 사적 이익집단의 견고함을 만들 수 있다. 슬픈 일은 다정의 질서와 관념의 논리에 대한 갈망이 균열과 분열의 공포가 만들어낸 역사적 결과라는 점이다. 더 슬픈 일은 이런 폐쇄성과 배타성이 조선을 망하게 한 원인이라는 점이다. 조선이 망한지 100여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할까.

  다른 방식으로 전도되었다. 외부를 향한 폐쇄성과 배타성은 내부의 문제로 드러났다. 세대, 계급, 신분, 도덕, 이념의 문제로 벽이 쌓아지고 있다. 다정은 병이 되었고 관념은 도구가 되었다. 결과는 후손이 피곤하다는 점. 그렇더라도 후손들이 공포에 떨며 주식에만 투자하지 말고 손을 들고 시쯔레이시마스를 외치고 문제를 제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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