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명은 20년 기준이며 변경과정은 본문 참고.
기업명은 20년 기준이며 변경과정은 본문 참고.

  한 여성 장관이 삼성전자에 장기투자해서 높은 수익률을 얻었다고 한다. 맘카페에서도 주식 열풍인데 대형우량주로 장기투자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크고 우량하니까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수익률도 높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90년 말에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에 투자하면, 2020년에 어떻게 되었을지를 계산해보았다. 90년 말에 시가총액 상위는 한국전력, 포항종합제철, 한일은행, 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 서울은행, 삼성전자, 신한은행, 대우였다. 이 중 한일은행, 상업은행은 구조조정을 거쳐 우리은행이 되었다. 제일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되어 SC제일은행이 되었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에 매각되었다.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매각되었으며,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을 합병하여 하나KEB은행이 되었다. 대우는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건설부문과 무역부문으로 분할되었다. 주 채권자였던 한국산업은행은 건설부문을 금호그룹에 매각하였는데, 금호그룹이 흔들리면서 다시 한국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무역부문은 포스코에 매각되어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되었다. 90년 말 대형우량주였던 10개 기업 중 6개 기업이 97년 한국위기를 겪으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지 않은 기업들은 어떨까? 90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한국전력은 2020년 시가총액 21위로, 포항종합제철은 2위에서 15위, 신한은행은 9위에서 23위로 밀려났다. 시가총액 순위가 올라간 것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90년 말에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에 동일비중으로 투자했더라면 연수익률은 –12.7%이며, 동기간 중 KOSPI 연수익률 4.8%를 상회하는 기업은 삼성전자 20.3%, 포스코 9.0% 뿐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대형우량주보다는 KOSPI에 장기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크고 강한 기업은 망하지 않고 장기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30년 시계로 보면 그렇지 않다. 망하지 않더라도 성장이 약해질 수도 있다. KOSPI는 각 시점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높은 비중으로 투자하므로 망하거나 성장이 약화된 기업의 비중은 자동적으로 줄어든다.

  이 결과는 취업준비생인 대학생들에게 또 다른 교훈도 준다. 90년에 졸업한 대학생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선호했다. 그래서 가장 우수한 대학생들이 90년 말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에 취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취업한 지 7~10년 사이에 회사는 망하고, 자신은 구조조정을 당했다. 이때 구조조정 당한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직장인들에게 이 사건이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힘들기는 했지만,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60대에게도 마찬가지다. 조금 빨리 은퇴했을 뿐이다. 가장 치명적인 세대는 40대 후반, 50대였다. 이들은 은퇴하기에는 충분한 부를 축적하지 못했지만,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에는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망하지 않고, 고성장을 지속할 것 같아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30년 시계로 보면 대기업이 망할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지금이 아니라 30년 뒤에 크고 강해질 기업을 선택해야 한다. 2020년 말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네이버, 현대자동차, 삼성SDI, 카카오, LG생활건강이다. 이 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네이버, 카카오는 9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90년 말에 시가총액 상위 10위 안에 속한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30년 후를 내다보고 주식투자를 하고, 자신을 투자해야 한다.

  30년 후를 내다보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정문 화백은 1965년에 2000년의 세상을 만화로 그렸다. 그 만화에는 TV신문, 전기자동차, 재택 수업, 재택 의료, 달나라 수학여행, 움직이는 도로가 나온다. 만화가가 35년 후의 세상을 이 정도로 정확히 예견할 수 있었으니, 열심히 고민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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