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AI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왜 철학을 해야 하는가? ’

  이 글에서는 철학자 가다머의 시각으로 근본학으로서의 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가다머에 따르면 인간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규명될 수 없는 역사 속에 던져진 언어적 존재이며, 존재는 언어를 통해 계시될 수 있다. 언어의 이해가 곧 인간 존재의 이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해석학은 과학기술에 매몰된 현대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철학을 공부하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비판점을 줄 수 있다. 하나 예시를 들어보자면 한 남자가 시골에 내려갔더니 아들이 호박죽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어머니가 그 남자에게 지붕 위의 호박을 따오라고 했다. 호박을 따기 위해서는 지붕 위에 올라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 예시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는 방법이 과학이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이고,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호박 자체의 존재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수많은 기술을 새롭게 개발해 내고, 인간의 DNA와 세포 분석을 통해 존재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지붕 위에 올라가기 위해 수만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고 만들어 봤자 닭 쫓던 개 지붕 위의 호박이 없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존재 자체가 성립이 될 때만 유용성을 띨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호박으로 만들어진 호박죽, 그에 따른 호박 자체의 의미가 아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DNA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다시 말하지만 괄호치고 가치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 기계적 부품이 아니기에 언어를 통해 일어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상호작용은 결코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인간 이해는 과학의 객관성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철학을 하는가? 철학은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되는 근본학으로 그 어떤 학문보다 깊이 있게 인간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못할 인간을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철학을 하고, 해 나가야 한다. 상대방의 언어 이해를 통해 나의 이해가 일면적이고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철학은 시작한다. 인식론적, 과학적 방법론을 넘어서 언어와 해석학적 보편성으로 의사소통의 진리로 나아간다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철학이 근본학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 내는지 보여줌으로써 철학의 입지를 견고히 하는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견고함은 과학 기술의 시대 속에 살며 하는 인문학적, 철학적 작업들이 절대 탁상공론이 아니며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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