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중학생 시절, 나의 심성은 바르지 못했다. 학교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기고만장했고 모난 성격 탓에 툭하면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았다. 운동장에서 친구와 싸움을 벌이다 크게 불리해지자 선생님들의 비호를 받기 위해 교무실로 도망갔던 수치스러운 기억도 있다. 우수한 성적을 구가하던 나는 3학년에 올라가며 치렀던 반장선거에서 떨어지며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엔 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반장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유를 살펴보니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유독 유머가 뛰어나고 사교성이 높아 항상 인기 좋았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나를 낙선시켜야 한다며 친구들을 설득시켰다 한다.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득실대는 진정한 리더인 그가 부러웠다. 그때부터 그를 유심히 관찰하였고 그의 품행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의 유머 방식과 상대를 존중하는 말주변을 잠자리에 들기 전 연습하기도 했다. 매사에 낙천적인 그의 자세를 조금씩 배워가는 대신 필자의 성적은 크게 떨어져 이후 한 번도 예전의 순위로 돌아가지 못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의 심성은 시간이 갈수록 바로 잡혔고 이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는 나는 아직도 그를 내 인생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결혼한 이후에는 아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항상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중요시하던 나에게 처음엔 그녀가 ‘바보’처럼 보였다.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맨날 남들 앞에서 손해를 보는 듯했다.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도 않으면서도 남이 행여나 손해를 볼까 노심초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다. 허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최후의 승자는 그녀였다. 남들을 위해 손해를 본 것이 나중에 오히려 이익으로 돌아오는 기이한 모습을 관찰하고는 이제는 그녀를 열심히 배웠다. 그러던 어느 해 내가 다니던 자산운용회사의 형편이 어려워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성과급이 전년도의 반밖에 되지 못하는 사정에 이르렀다. 본부장이었던 나는 내게 지급되리라 미리 약속되었던 성과급을 헐어 부서원들의 부족분을 조금씩 보충해 주었다. 맹세컨대 무엇을 바라고 한 일이 결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음 해는 내 직장생활 최고의 해가 되었다. 부서원 모두 혼신의 힘으로 성과를 크게 높였고 그 성과로 인해 나는 생각지도 못한 깜짝 승진을 하게 되었다.

  오래전 ‘우주해적 코브라’라는 만화에 빠져든 적이 있다. 스타워즈 못지않게 광활한 우주가 배경이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보지도 듣지도 못한 강력한 무기들이 등장하여 주인공 코브라를 괴롭혔다. 급기야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최종병기가 등장하는데 그 무기의 비밀은 바로 상대방의 무기와 마주치면 그 무기의 힘을 곧바로 카피하여 자신의 힘에 보태는 것이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스승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들은 나의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까마득한 후배일 수도 있다. 이런 주위의 스승들을 잘 관찰하고 그들의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우주 최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