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 정찬일 저
『삼순이』 정찬일 저

  이 책은 해방 이전부터 ‘삼순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어온 한국 여성 노동자의 궤적을 좇는다. 여기서 칭하는 ‘삼순이’는 식민지 시기를 전후로 노동 시장에 대거 진출했던 여성 ‘식모’와 ‘버스 안내양’, 그리고 ‘여공’을 뜻한다. 정치외교학자인 저자 정찬일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소 멀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들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당대 신문 기사나 잡지, 르포 또는 문학 작품 등의 다양한 사료들을 통해 흥미롭게 재구성해낸다. 이 책에 담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기억들은 마치 본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삼순이는 몇십년 전에 청춘이었던 지금 우리의 어머니 또는 언니, 누이였다”(정찬일, 『삼순이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책과함께, 2019, p.13.)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본문은 ‘식모’와 ‘버스 안내양’, 그리고 ‘여공’의 이야기가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주로 한국의 1960~80년대 ‘삼순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개발의 그늘 아래 고군분투해온 이들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는 크게 주목받지 못해왔다. 저자는 우리에게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삼순이’의 역사를 소환하며 이들을 외면하지 말자고 요청한다. ‘삼순이’와 같은 이들 여성 노동자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의 현재,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올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 속에 서술된 당시 ‘삼순이’들의 집단 투쟁 및 노동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은 주류적 담론에서 소외되어온 한국 여성 노동자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기서 소개한 책 『삼순이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은 ‘삼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여성 노동자들의 치열했던 삶의 양상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들 ‘삼순이’는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지극히 평범한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당시 ‘삼순이’들이 추구했던 ‘인간다움’이라는 소박한 희망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노동 계층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기억들은 지금 현재의 나, 곧 우리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본인은 책의 내용 중 에필로그 형태로 수록된 실제 ‘삼순이’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었다. 이들 여성 노동자 대부분은 자신의 과거 노동 경험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잊지 않고 증언한다. 한 예로 성남과 을지로 노선을 오가는 버스 차장으로 근무했던 아무개 여성은 당시 자신이 겪었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바로 타인의 비하와 멸시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녀의 인터뷰 내용에 담긴 한 여성 노동자의 고단한 기억과 경험들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독자인 나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누군가를 (무)의식적으로 혐오할 수밖에 없는가? 이 책은 당대 여성 노동자의 과거 삶과 기억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나’, ‘우리’에게 필요한 다양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삼순이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은 누군가의 어머니와 언니, 또는 누이의 기억을 증언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굳이 ‘여성사’라는 거창한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 책은 ‘삼순이’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들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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