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려 3년 만에 <소설론> 수업을 온전히 강의실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며, 저는 소설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해 한참을 더듬거리다가 첫 번째 시간을 마쳤습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세상의 감춰진 진실을 알게 해주고, 참다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해주며, 그것을 통해 미적인 감동을 준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Littor』, 2021.8/9)는 잔잔한 음색으로 우리 시대 소설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몫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초파리 돌보기」는 소설가인 지유와 엄마인 원영이 뜻하지 않게 힘을 모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소설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원영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시대의 어머니입니다. 구 남매의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나 열 살이 넘도록 학교도 가지 못했고, 어린 나이부터 가발 공장 노동자, 외판원, 마트 캐셔,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조립 부업, 텔레마케터로 끊임없이 일을 해왔습니다. 힘겨운 삶을 살아오면서 원영은 사소한 걱정에도 잠을 설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그런 원영에게도 늘그막에 잠시 행운이 찾아옵니다. 대학 안의 생명과학연구원에서 초파리 기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은 보수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원영이 평생 갖고 싶어 했던 자기의 책상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원영은 지금 온몸이 쇠약해지고 탈모증상도 심해져서 초파리 기르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습니다. 평소 이 사회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진 소설가 지유는, ‘엄마 원영의 질환이 실험동과 초파리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지유는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원영에게 실험동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나 원영은 평생 처음으로 좋은 보수를 받으며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받았던 연구동에서의 일 때문에, 자신이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결국 소설가인 지유는 원영의 병이 초파리와 실험동 때문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자신이 원영에 대한 소설을 쓰려 한다며 실험동에서 겪은 안 좋은 일들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이어갑니다. 그러나 평소 지유에게 자기 이야기를 소설에 써보라고 늘 말해 왔던 원영이지만, 지유의 뜻과는 달리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 곳”인 초파리 실험동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영은 “굳이 따지자면 해를 끼친 쪽은 초파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연구동에서의 아르바이트가 원영이 처음 경험한 인간다운 일이었다면, 초파리 역시 원영에게는 특별한 애정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애정은 수명이 고작 2주 내외인 초파리의 희미한 존재감이 자신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도 되지 못한 초파리는 그 미미한 존재감으로 이 세상에 온갖 이로운 일을 하는 생명체입니다.
 
  한편 원영은 소설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척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유에게 들려줍니다. 그것은 평생 가난했기에, 그리고 여자였기에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그 이야기는 “텔레마케팅 사무실에서 헤드셋 너머로 종일 욕설을 듣는 여자 이야기. 평생 자기 책상을 가져보지 못해서 아프기 시작한 여자 이야기.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아 늘 위무력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서 30년 동안 국수를 먹은 여자 이야기. 체할 때마다 그러게 왜 국수를 먹느냐고 다그치던 딸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요일 저녁이면 와, 국수다, 라며 손뼉을 치던 딸 이야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원영은 지유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원영은 지유에게 “원영이가 깨끗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는 결말을 써줘.”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는군요. 평생 “가까운 누군가가 죽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통보받거나, 혼자 고독하게 방에서 쓰러지던 인물”만을 그려온 지유가 들어주기에는 어려운 부탁입니다. 평소 지유는 소설에서 해피엔드를 쓰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지유는 이 사회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부각시켜서,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 부정의 힘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은 원영이 마침내 지유가 완성한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그 소설에서 원영은 초파리 실험에서 발견한 로열젤리의 효능을 믿고, 로열젤리를 복용하여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원영이 그토록 원했던 대로,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입니다. 지유에게는 너무나도 시시한 이 마지막 문장에는 원영의 오래고 간절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소설은 분명 이 사회의 어둠을 세상에 알리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삶을 고민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는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어둠 속의 반딧불같이 미미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군요. 다음 <소설론> 시간에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찬 눈망울 앞에서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힘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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