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면적의 약 35%를 태운 울진-삼척 산불이 초대형으로 번진 배경에는 ‘겨울 가뭄’이 있었다(본지 1287호 ‘울진-삼척 산불, ‘겨울 가뭄’이 대형산불로 키워’ 기사 참조). 이후 지난 8월 8일(월)에서 9일(화) 이틀간 수도권 중심으로 내린 폭우(이하 수도권 폭우)의 원인은 ‘정체 전선에 의한 비구름대’다. 큰 피해를 초래한 울진-삼척 산불과 수도권 폭우는 ‘기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해서 본지는 지난 1253호 지면을 통해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수도권 폭우에서 보듯 지금 기후 변화는 날이 갈수록 심화한 모습을 보인다. 전보다 심화한 기후 변화는 우리에게 더욱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수도권 폭우와 기후 변화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기후 변화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역대 최악이었던 수도권 폭우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수도권 폭우는 지난 8월 8일(월)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준 일강수량 381.5mm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일강수량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1907년 서울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15년 만의 서울 최대 일강수량이다. 갑자기 폭우가 국지적으로 많이 내린 탓에 △교통 마비 △침수 △감전사 등 다양한 피해가 잇따른 바 있다(본지 1294호 ‘관측 이래 최악의 폭우, 숭실도 덮쳤다’ 기사 참조).
  기상청은 이번 수도권 폭우의 원인으로 정체 전선에 의해 비구름대가 형성된 것을 지목했다. 기상청 우진규 예보분석관은 “공기 흐름을 막는 블로킹 현상 탓에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위치한 고기압이 북서쪽의 찬 공기를 남쪽으로 흘려보냈다”며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뜨거운 수증기가 한국 동쪽에 자리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됐고, 이에 따라 정체 전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폭우, 그 배경은 ‘기후 변화’ 
  정체 전선은 한반도에 주로 6월 말부터 7월 상순까지 장마로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 기상 정보 제공 업체 ‘케이웨더’ 반기성 예보센터장은 “장마는 통상적으로 6월 말부터 7월 상순까지 정체 전선이 형성돼 비가 오는 것을 의미하지만 매우 이례적으로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장마 전선과 비슷한 정체 전선이 형성돼 폭우가 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에 발생한 폭우도 동북아시아 전역에 기록적인 장마를 발생시킨 바 있다. 해당 폭우의 원인에도 블로킹 현상에 의해 형성된 정체 전선이 지목됐다(본지 1253호 ‘열 받은 지구의 경고,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상 기후’ 기사 참조).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수도권 폭우의 배경에 기후 변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기후변화학회 권원태 고문은 이번 폭우의 원인에 관해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이 결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 고문은 “바닷물이 뜨거워지면 증발량이 많아져 수증기가 늘어나게 된다”며 “서태평양에서 이런 수증기가 많이 밀려 들어와 이번 폭우의 규모를 키웠다”고 덧붙였다.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 이순선 연구위원도 “이번 폭우는 복합적이지만 기후 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은 기후 변화의 단면
  전문가들은 이번 수도권 폭우에서 극단적으로 국지적인 강수 현상이 도드라졌다고 분석한다. 보통 시간당 강수량이 30mm 이상이면 폭우라는 표현을 쓰고, 시간당 강수량이 50mm 이상이면 쏟아진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지난 8월 8일(월) 오후 8시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준, 시간당 강수량이 141.5mm를 기록하면서 쏟아진다는 표현조차 무색하게 됐다. 이에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는 서울시 동작구의 사례처럼 국지적으로 강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기후 변화로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현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기후 변화의 한 단면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일고 있다. 극단적 기상 현상에 관해 이 연구위원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되면 앞으로도 ‘물 폭탄’과 같은 극한 기후 현상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이번 폭우와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가뭄 △폭염 △폭우 △홍수 △산불 등 극단적 날씨로 인한 각종 재난이 이어져 피해가 잇따른다.

  ‘최악의 가뭄’까지 겹친  ‘역대 최고로 더운’ 유럽
  유럽의 경우 지난 7월부터 이어지는 이례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다. 영국 기상청과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월 19일(화) 기준, 런던과 파리 모두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을 기록했다. 포르투갈의 경우 지난 7월 14일(목) 기준, 최고 기온이 섭씨 47도에 달했다. 이러한 폭염이 지속되는 탓에 각종 피해가 잇따랐다. 영국 런던에서는 철로와 고압 전기선이 훼손돼 철도 운행이 중단됐고 많은 학교가 휴학에 돌입했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다양한 산불 발생으로 피해를 겪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최악의 가뭄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유럽가뭄관측소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45%가 가뭄 주의보 상태이고 13%는 가뭄 경보 상태이다. 이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마리아 가브리엘 집행위원은 “폭염과 강수량 부족이 유럽 연합 지역의 수위를 낮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뭄으로 인해 독일 라인강 수위가 낮아지자 최악의 가뭄이 도래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헝거스톤(Hunger stone)’이 발견됐다. 또한 독일 라인강은 유럽의 주요 물류망으로 사용되는데, 수위가 낮아짐에 따라 선박을 통한 운송량이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유럽의 물류 마비가 우려된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탈리아 북부를 관통하는 포강의 수위가 2m가량 낮아지며 각종 농산물 생산에 타격을 입는 등 유럽 전역에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가뭄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연합연구센터 안드레아 토레티 연구원은 “최악의 가뭄으로 평가됐던 지난 2018년의 가뭄보다 올해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며 “앞으로 3개월간 건조한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럽 폭염의 원인은 서유럽 전반적으로 형성돼 있는 열돔의 고기압 때문에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공기가 계속 유입되는 것에 있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이 ‘기후 변화’에 있다고 지목했다. 영국 기상청 스티븐 벨처 최고과학책임자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변화가 이러한 극단적 기온을 만들었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극단적 폭염이 3년에 한 번씩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극단적 날씨 
  파키스탄의 경우, 지난 6월부터 계속 폭우가 내린 탓에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셰리 라흐만 장관은 “파키스탄 국토 3분의 1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며 “물을 퍼낼 수 있는 마른 땅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라흐만 장관은 “파키스탄은 극한 기상 현상의 최전선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폭우 피해로 파키스탄은 1,0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100만 채 이상의 피해 가옥이 발생했다.
  중국의 경우 중남부 지역에서 △폭염 △가뭄 △폭우로 인한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3,785만 명이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봤다. 지난 8월 30일(화) 중국 재난 당국에 따르면 경제적 손실도 한화 기준 6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 응급관리부 저우쉐원 부부장은 “지난 7월 이후 남부 지역에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양쯔강 유역에서 가뭄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인도의 경우 지난 5월, 이른 폭염으로 밀 생산에 타격을 받은 바 있다(본지 1291호 ‘가속화되는 식량 위기, 우리나라 식량안보 중요성 제기돼’ 기사 참조). 인도 기상청은 해당 폭염에 관해 “지구 온난화에 따른 봄철 강수량 부족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외 미국 및 호주 등지에서 폭우와 폭염이 발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나고 있다.

  ‘재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후변화
  또한, 기후 변화로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재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재난 불평등은 사회적·경제적 취약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폭우 △폭염 △가뭄 등 기후 변화에 의한 재난으로부터 더욱 피해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 불평등에 관해 일본 리츠메이칸대 경제학부 이강국 교수는 “기후 변화는 더 많은 재난으로 이어지는데,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며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이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분명 더 취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수도권 폭우에서도 재난 불평등 사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지난 8월 9일(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익사하는 참변이 발생했다. 폭우가 발생한 사고 당시, 집 안에 물이 가득 차고 집 외부에도 물이 차올라 출입문이 열리지 않은 것이 참변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에 발달장애인 인권 단체 ‘피플퍼스트’ 문혁 활동가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나 가족 중에 주거 취약 계층이 많다”며 “이들은 재난에 빠르게 대응하거나 예방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에서도 동일한 참변이 발생했다. 참변 당시 반지하 집에 갑자기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거주자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피해자는 기초수급생활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재난 불평등’ 
  재난 불평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마다도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이는 탄소 배출의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교수는 “지난 2019년 기준, 북미는 1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이 약 21t인 반면에 남아시아는 2.6t,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1.6t에 불과했다”며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탄소 배출의 분배는 세계적으로 불평등하다”고 설명했다.
  국토 3분의 1을 잠기게 한 파키스탄 폭우 또한 국가 간 재난 불평등의 현주소라는 지적이 있다. 유니세프 압둘라 파딜 파키스탄 대변인은 “부유한 나라들이 만들어 온 기후가 파키스탄과 같은 곳에 위기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안보’에 굴복하는 탄소 중립 정책 
  한편, 기후 변화 대응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각국의 탄소 중립 정책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너지를 수월하게 수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 안보가 급부상하게 된 배경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에 있다. 기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 속에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로 접어들면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이 급등했다(본지 1287호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를 흔들다’ 기사 참조). 이런 연유로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생겨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몽펠리에대 경제학과 마티아스 레몽 교수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몇 주 만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해 기후 문제를 덮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에너지 수급을 이유로 화석 연료 사용을 늘린 대표적인 국가이다. 중국은 기존에 친환경 정책을 강화해 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에너지 수급이 어렵게 되자 지난해부터 석탄 사용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탄소 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판국이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가적인 석유 시추를 중단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자 석유와 가스 시추를 다시 허용했다.
  탄소 중립에 적극적이었던 유럽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공급 충격을 직격으로 받게 되자, 화석 연료 사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일의 경우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 25%에서 침공 후 37%로 12%p 증가했다. 또한, 독일 정부는 오는 2030년에 폐쇄 예정이던 석탄 발전소 운영 연장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럽의 에너지 행보에 관해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김병권 전 소장은 “단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 비용 유지라는 긴급 사안 때문에 기후 위기 대처가 뒤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석탄을 통한 전기 생산량이 전년 대비 9% 증가했고 올해는 2% 더 증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유승훈 교수는 “지금 전 세계가 환경 에너지보다 에너지 수급 상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친환경 에너지로는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워 조절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동 대응’이냐 ‘집단 자살’이냐 
  기후 변화는 전 세계적인 공동 대응을 통해 그나마 가시적인 억제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자 공동체로서 기후 변화 대응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환경·기후장관회의가 개최됐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공동 합의문을 작성하지 못하고 폐막했다.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COP 26’ 합의와 화석 연료 사용 제한을 두고 각국의 의견이 분분해 공동 합의문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엔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7월 18일(목) 독일에서 열린 페터스베르크 기후 회담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다자 공동체로서 대응을 못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공동 대응이냐 집단 자살이냐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말대로 인류가 공동 대응으로 갈지, 집단 자살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지금 당장 기후 위기의 현실을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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