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의 흥행, 다시 주목되는 ‘학교 폭력’
  지난해 12월 30일(금)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면서 지난 2021년 확산한 ‘학폭 미투’에 이어 학교 폭력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더 글로리는 과거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훗날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를 펼치는 서사를 다루는 드라마다. 지난해 12월 공개 이후 서사에 호평이 이어졌고 지난 1월 초 넷플릭스 시청 시간 부문에서 전 세계 순위 3위, 비영어권 순위 1위에 집계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더 글로리를 본 시청자들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이 당한 학교 폭력 사례에 대해 회고하는 글을 게시함에 따라 학교 폭력 심각성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달 25일(토) 아들의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나 국가수사본부장직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학교 폭력 문제는 정치권까지 옮겨가 ‘정순신 아들 방지법’이 추진되는 등 주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속 폭력 장면, 알고 보니 실화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묘사된 일부 폭력 장면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밝혀졌다. 더 글로리 서사 중 폭력 가해자들이 고데기 온도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주인공에게 고데기로 해를 입히는 장면이 그렇다. 해당 고데기 폭력 장면은 실제로 지난 2006년 충청북도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청주 고데기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청주 고데기 사건은 20일 동안 중학교 동급생이 △야구방망이 △고데기 △옷핀으로 폭력을 가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도망가지 않게 팔을 잡은 채 고데기로 폭행을 가했고 야구방망이와 옷핀으로도 해를 입혔다. 이외에도 상처가 아물 때쯤 피해자 상처에 다시 해를 입히는 등 학교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낸 바 있다. 피해자는 해당 폭행으로 인해 전치 6주가량의 입원 치료가 필요한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언론에 보도된 주요 학교 폭력 사례를 보면 학교 폭력의 현실은 드라마 묘사 장면보다 더욱 가혹하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 최우성 장학사는 “학교 폭력 장면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의구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현실에 있는 부분을 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학교 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밝혔다. 

  쉬는 시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언어폭력으로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에 의하면 학교 폭력은 주로 쉬는 시간에 교실 안에서 같은 반 친구에 의해 언어폭력으로 나타난다. 해당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의 피해 장소는 △교실 안(26.6%) △복도 및 계단(16.1%) △운동장 및 강당(9.2%) 등 순으로 이어졌다. 학교 폭력 유형별 피해는 △언어폭력(41.8%) △신체 폭력(14.6%) △집단 따돌림(13.3%) △사이버 폭력(9.6%) 등 순으로 집계됐다. 학교 폭력 가해자 유형은 △같은 반 학생(45.8%) △같은 학년 학생(29.7%) △다른 학년 학생(8.4%) △다른 학교 학생(5.6%) 등 순으로 분석됐다. 학교 폭력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29.7%) △하교 이후(17.4%) △점심시간 14.4% △하교 시간(12.6%)으로 파악됐다. 피해 미신고율은 9.2%이며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30.4%) △스스로 해결하려고(21.1%) △소용없을 거 같아서(17.3%) 등 순으로 파악됐다.

  학교 폭력 유형별 가해에서도 △언어폭력(46.2%) △신체 폭력(18.9%) △집단 따돌림(9.4%)△사이버 폭력(7.7%) 등 순으로 학교 폭력 유형별 피해와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 가해 이유로는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34.5%) △상대방이 먼저 괴롭혀서(22.1%) △오해와 갈등으로(12.2%) △화풀이 또는 스트레스 때문에(9.4%) 순으로 집계됐다.

  또한, 학교 폭력 피해 응답률은 1.7%로 최근 3년 피해 응답률인 △2019년: 1.6% △2020년: 0.9% △2021년 1.1%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전환됐던 학교 수업이 지난해부터 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증가한 결과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대면 수업으로 인한 신체 폭력이 다시 증가하는 등 학교 폭력 양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폭력은 결국 ‘관계 회복’으로 풀어야
  이렇게 가혹한 학교 폭력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교육 당국이 대대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법)이 제정되면서다. 이후 △학교 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학교 폭력 전담 기구 구성 △학교 폭력 예방 교육 강화 △피해 학생 보호 강화 등이 이행되면서 학교 폭력 빈도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현행 제도상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해당 관할의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에 회부된다. 심의위원회에서 해당 폭력 사건을 조사한 후 심의를 통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에게 각각 보호 조치와 징계 조치를 결정한다. 심의위원회는 징계 조치 이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사이에 분쟁이 지속될 때 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심의위원회는 지난 2020년에 폐지된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대신해 설치된 학교 폭력 심의 기구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심의위원회가 열리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돼 피해 학생 보호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경기도교육청 박정행 학생생활교육과장은 “교육지원청 관할 지역의 모든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지다 보니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학교 폭력 심의 개최가 지연된다는 것은 피해 학생 보호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의 결과에 대한 불복 문제가 잇따른 경우도 지적했다. 박 학생생활교육과장은 “심의위원회의 조치 결정이 사법적 판결에 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변호사 선임을 통한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대책이 처벌보다 관계 회복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벌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안산대 이성대 교수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명확히 하고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지만, 처벌을 위한 책임이 아닌 회복을 위한 책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장학사도 “학생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갈등 조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처벌조차 어른들에 의해서
  학교 폭력 처벌은 수단에 불과하지만, 일부 가해 학생 부모가 가해 처벌을 경감하거나 취소하기 위해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교폭력법과 교육부 매뉴얼에 따라 정상적인 처리를 했음에도 학교 폭력 처리 과정에 불만을 품는다”며 “가해 처분을 경감하거나 취소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학교장, 학교폭력 책임교사, 담임교사 등을 대상으로 민사, 형사 소송을 거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달 25일(토) 국가수사본부장직을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인 A씨가 지난 2017년 1년 동안 동급생 B씨에게 학교 폭력을 벌였지만, 정 변호사 측에서 총 7차례의 불복 절차를 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A 씨는 피해자 B 씨에게 인격 비하의 내용을 담은 언어폭력과 공개적인 장소에서 B 씨를 모욕하는 언행을 지속했다. 이에 B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B씨는 A씨를 해당 학교의 학폭위에 신고했고 학폭위는 A씨에게 강제 전학 등을 포함한 조치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A씨 측은 해당 조치에 불복해 강원도 학생징계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어 조정위는 전학 조치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려 다시 학폭위가 개회됐다. 학폭위는 전학 조치를 제외한 조치를 A씨에게 전달했다. 이후 B씨 측에서 강원도 학폭위에 재심을 신청해 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에서 A씨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았고 회의 끝에 전학 처분을 추가한다는 재심 결정을 내렸다.

  정 변호사 측은 강원도 학폭위의 재심 결정에 불복해 전학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과 소송 기간 징계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 정지도 신청했다. 결국 집행 정지는 1심과 2심에서 기각당했고 행정 소송은 3심인 대법원까지 갔지만 기각당했다. 그러나 1년간 행정 소송이 이어지면서 지난 2019년이 돼서야 A씨의 전학 조치가 이뤄졌다. 전학 간 A씨는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반면, B씨는 A씨와 같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 후유증 때문에 학업을 잘 이어가지 못했으며 극단적 선택을 다시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법적 분쟁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할 수 없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률사무소 사월 노윤호 대표 변호사는 “불복 절차의 경우 몇 개월에서 3년까지 소요가 돼 징계를 무력화한다”며 “사실상 전학이 정지되다 보니 피해 학생은 남은 학교생활을 가해 학생과 같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선율 박상수 변호사도 “시간을 끌면서 3심까지 가면 3년은 흐른다”며 “가해자는 학교 폭력 기록 없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순신 아들 방지법, 과연 해법일까.
  정치권에서는 정 변호사의 학교 폭력 조치 불복 사건으로 대입 정시에 이른바 ‘정순신 아들 방지법’ 법안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법안에는 정시 전형에 학교 폭력 여부 등 인성 평가가 반영되고 고위공직자 임명 시 자녀의 학교 폭력 전력도 조회하는 내용이 담길 계획이다. 이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교권복지본부장은 “피해 학생은 괴로움을 겪는데, 가해 학생이 제재받지 않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지만, 그런 것을 제재하고 제약하는 것은 헌법과 형법에 충돌하는 지점으로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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