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냄새 없는 소각장
김채린(문예창작·22)
소각장 한구석에는 호숫가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통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통 주변으로 줄 서 있었다. 직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자신의 몸통만 한 식용유를 콸콸 붓기 시작했다. 식용유는 마치 하나의 마그마처럼 콸콸 쏟아졌다. 수시로 입는 버석한 작업복 대신, 일회용 튀김옷을 입고 돌아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개발된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옷에는 고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비용이 많이 부담돼 소각장에 적용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잔뜩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튀김옷은 최대 24시간까지 입을 수 있고, 일정 시간이 도달되면 눅눅해지는 튀김처럼 잔뜩 숨이 꺼진다. 성인 남성이 2명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통에 기름이 끓기 시작했다. 나는 기름이 끓어오르는 시간 동안 얼굴을 보호해주는 특수 방독면과 손과 발에 단단한 장갑과 양말을 꼈다. 방독면에 의해 전보다 시야가 탁해졌다. 나는 빼곡하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직원들은 조용히 자신의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정적을 윤이 깼다.
“무섭지 않냐? 난 매번 앞에 사람 몇 명이 안전하게 성공해야 마음이 놓인다니까.”
“나도 늘 무서워. 하지만 일회용 작업복이라 훨씬 깨끗하잖아. 혹시 지금 무슨 냄새가 나고 있어?”
내 말에 윤은 킁킁거리다 답했다.
“너는 진짜 병적으로 냄새를 체크하더라. 방독면 안에서 머리 아픈 향수 냄새가 나. 도대체 얼마나 뿌려댄 거야. 아우 머리 아파.”
나도 크게 한번 숨을 내쉬어본다.
윤의 냄새를 유추해보자.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과 어금니 쪽에 박은 금니. 금니를 치과에서 박을 때, 왜 이렇게 비싸냐고 그거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 치과 의사들 다 바가지라며 한 달을 징징거렸었다. 그리고 말할 때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그의 어눌한 발음 소리,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배. 세탁은 했지만, 건조기에 옷을 잘못 돌린 건지 다 늘어지고 줄어들어 작아진 옷. 자신에게 무언가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며 항상 세제를 정량 이상으로 넣어 출근할 때 입고 오는 옷에 세제의 얼룩이 남아있는 사람. 윤에게는 화창한 날에 은은한 비누 냄새가 나지만, 비가 오는 눅눅한 날에는 물비린내 나는 흐릿한 냄새가 날 것 같다. 먹구름 같은 냄새가 날 것 같다.
어느새 커다란 통이 눈앞에 보였다. 윤과 나는 나란히 서서 우리의 차례를 기다렸다. 윤은 내게 계속 말했지만, 방독면 때문에 목소리가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잘 안 들린다고 다시 말하라는 뉘앙스를 취하니까, 윤은 내게 가까이 와 말했다.
“오늘 새로운 사람 온다고”
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타이머가 삐삐 울리더니 기계로 연결된 커다란 뜰채가 통에 들어가 사람들을 건져냈다. 제각기 자신의 체형대로 튀겨진 사람들이 몸을 툭툭 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본인의 튀김옷을 매만지고,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두 분 들어오세요.”
직원의 말에 나는 방독면을 다시 조여 맸다.
“저를 바라보고 차렷 자세로 잠시만 있어 주세요.”
직원의 말에 나는 경직된 상태로 서 있었다. 직원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크림을 꺼내더니 온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몸이 화해지는 것 같았다. 내 온몸에 녹인 박하사탕을 바르는 것 같았다. 잔뜩 늘어난 반팔티와 5부 반바지 사이사이로 화한 크림이 매끄럽게 내 피부에 스며들었다. 방독면을 끼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크림을 바른 몸은 매끈하고, 윤을 보니 마네킹에서 보는 광이 나는 듯했다.
“이 크림은 선생님이 입고 있는 옷에 겉옷 하나 걸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크림이 기름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할 테니까요. 저기 기름 안에 3분 동안 있으시면, 저희가 건져드릴 거예요. 그동안 저 안에서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절대로 방독면은 벗지 마시고요. ”
직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멀리서는 보일 수 없었던 통 안에 노란 기름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앞사람들의 자취를 보여주는 것처럼 튀김가루들이 둥둥 떠 있었다. 거품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기름 안에 들어가기 전이 제일 긴장되었다. 직원은 커다란 뜰채로 남아있는 튀김가루를 건지고 말했다.
“들어가세요.”
직원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기름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3분 동안 헤엄쳐 본다. 내가 지나다니고 걸어 다니는 세상에 비교하면 아주 비좁은 통인데. 왜일까. 그때만큼은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아도, 편안했다. 살 것 같았다. 크림을 발랐던 차갑고 화하던 몸이 기름을 만나자 적정 온도를 만난 것처럼 따듯하고 안락했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머릿속에 시간 앞에서 고이 접어놓았던 생각들을 펼쳐보았다.
*
지극히 평범했던 근무 날. 그러나 묘하게 기분이 질겅질겅 씹은 풍선껌처럼 마음이 찐득하고 오묘하게 일렁이던 그 날을 떠올렸다. 기계실에 사이렌처럼 따갑게 울리던 전화 한 통이 오던 날이었다.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제가요. 제 쓰레기봉투를 찾고 싶어요. 제가 거기에 넣어서는 안 될 거를 넣었거든요. 그래서요.”
남자는 울먹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크레인으로 쓰레기를 소각로에 옮기는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고 말했다.
“선생님 저희는 일주일에 최대 300톤의 쓰레기를 소각합니다. 선생님 쓰레기봉투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때, 기계실 문을 열고 윤과 다른 소각장 직원들이 뛰어왔다.
“소각장 안에서 악취가 나. 이거 무슨 냄새야?”
나는 심각하게 우겨진 윤의 표정과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수화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나는 수화기의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거기에 들어가면 안 될 게 있어요. 제가 제가 제가요….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랬거든요. 제가 진짜 멀쩡하거든요.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냥 가끔 욱하는 게 있는데 그게 있잖아요. 저기요. 저기요! 제 말 듣고 있어요? 나 그 봉투 찾아야 해요.”
나는 멍하니 소각로에 옮겨지는 수많은 쓰레기봉투를 바라보았다. 그게 사람의 사체라고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웅웅거리는 크레인 소리가 기계실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말했다.
“냄새가 난다고 말해주지. 나는 모르잖아.”
*
기름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서 그랬나. 순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크림을 바른 몸에서 하얀 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보글보글 마찰이 생기더니 튀김옷이 생겼다.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윤도 부풀어 올라 점점 떠올랐다. 적당하게 따듯했던 몸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3분이 다 됐나.
그때, 통을 뒤흔든 것인지 순간 노란 기름 안이 일렁였다. 나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던 윤이 저 멀리 떨어졌다. 파도를 타는 것 같이 온몸이 짜릿했다.
부풀어 오르는 시간. 온몸이 부풀어도, 내 마음만은 부풀지 않는 시간. 얼굴에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답답하지 않고 따듯하고 편안했다. 커다란 투명한 튀김 막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순간 차가운 세상이 눈을 다시 뜨게 했다.
“이제 몸을 잠시 털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에 나와 윤은 몸을 털었다. 투명한 튀김이 되지 못한 찌꺼기들이 내 몸에 물 흐르듯 떨어졌다. 나는 튀김옷을 만져보았다. 투명한 고무 튜브를 끼운 것 같았다. 윤은 제자리에서 봉봉 뛰더니 내게 말했다.
“새로운 직원 기계실에 와있대. 기계실에 가서 네가 알려주면 된다.”
나는 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았어.”
윤은 내게 인사를 하고 갔다. 하얀 튀김옷을 입은 직원들이 돌아다니니 몇 년간 일했던 이 공간이 무색하게도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소각장 입구에 있는 고정 스프레이를 온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튀김옷의 유지시간이 길어지려면 뿌려야 한다는 직원들의 말을 떠올라서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건 기계실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내 습관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쉰다. 바람에 내 숨을 잠시 맡겨본다. 다시 숨을 내쉬어본다. 그 어떤 냄새도 내게 들어오지 않았다. 커다란 스튜디오처럼 생긴 소각장 내부에는 각 아파트 세대 간의 쓰레기를 모아놓은 화물차들이 연이어 진열장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맨 구석에는 커다란 선풍기 하나가 탈탈거리며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간 소각장에서 있었던 시간을 말이다. 숨을 내쉬고 뱉었다. 늘 숨을 쉬고 살아가는 데 답답했다. 차가운 바람에 숨을 맡기어도 가슴속에 답답함만 쌓여갈 뿐이었다. 나는 언젠가 화를 내며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주민들이 막 세워진 소각장 앞에서 시위하던 때를 떠올렸다. 새로 들어온 소각로 인근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건강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우리를 쳐다보던 그 비릿한 눈빛들. 경멸과 혐오의 눈빛, 그런 새빨간 눈빛들. 사계절 내내 발에 땀내며 뛰어가고 일했던 그 나날들, 하드보드지에 엉성하게 적혀있던 시위 문구들을 전부 기억한다. 우리에게 이름 모를 욕을 하던 그들의 표정들까지 전부 다 생생하게 그려졌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무언가 가슴 한쪽이 불편했다. 그럴 때면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초록색 페인트 질을 한 계단을 올라갔다. 뿌연 창 너머로 탑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 보였다. 크레인이 웅웅 거리며 움직이다 이내 수많은 쓰레기 사이로 파묻혔다. 이내 다시 웅웅 거리며 한 움큼 잡아 올리기 시작했다. 크레인에 잡혀 있는 쓰레기들은 뒤쪽에 있는 소각로에 버려졌다. 오직 온도만 알 수 있는 소각로에 버려져 커다란 쓰레기의 모습을 감춘다.
나는 ‘24시간 운영’이라는 지지직거리는 빨간색 전광판을 바라보다 기계실 문을 열었다. 기계실에는 하품을 하며 커다란 모니터를 보며 기계를 까딱까딱 만지고 있는 지훈이가 보였다. 지훈이는 나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은호 왔어?”
지훈이의 온몸에는 투명한 막이 있었다. 나는 그 막을 살짝 만져보았다. 늘 만져도 이상한 촉감이었다. 푸딩같이 부드러웠다. 다만 금방이라도 힘을 주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지훈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말했다.
“아 여기는 새로 오신 분. 인사해요, 여기 소각장의 최고봉이셔.”
나는 지훈이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색 바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의 반질거리는 손이 내 시야에 담겼다. 반구형의 눈썹 문신, 오똑하게 서 있는 코, 왁스로 멀끔하게 올린 머리. 그에게는 진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박우지라고 합니다.”
반질거리는 그의 손을 보고, 사과 향이 듬뿍 나는 핸드크림을 발랐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지가 내게 악수를 건넸다.
“나이는 33살입니다.”
나는 우지가 건넨 손을 잡았다. 우지는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싱긋 웃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훈이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내게 가겠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내 앞에서 걸어가는 지훈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점점 작아지더니 꺼져갔다. 나는 문득 누그러진 튀김옷이 지훈이의 몸의 일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지는 나와 손을 떼고 자신의 상의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우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우지는 그런 나를 보고 마지못해 웃으며 말했다.
“아 제가 미끄러운 걸 안 좋아해서요.”
나는 그런 우지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버려진 것들을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 깔끔한 척하기는. 순간 마음이 뜨겁게 부풀기 시작했다. 더러운 기름 속에서 마음이 붕붕 튀어 올랐다. 그 마음은 잠시 심호흡하자 무색하게도 걸러져 나왔다.
“따라오시죠.”
기계실 안에는 빨간색 글씨로 오늘 들어온 쓰레기양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톤짜리 쓰레기 더미. 쓰레기 더미의 바닥을 보기까지 한참 걸리는 시간. 나는 컴퓨터 그래픽 기계처럼 쓰레기 더미를 옮기는 크레인의 반복되는 무기력함을 바라보았다. 나는 기계실 안으로 크게 보이는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직장에서 소각장에서 일했으면 돌아가는 체계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빨간색 버튼 보이죠. 이거랑 요 기어를 같이 움직이면 크레인이 작동됩니다. ”
내 말에도 우지는 자꾸만 오른쪽 주머니에 무언가 커다란 걸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크레인을 작동시킬 때 제일 중요한 건 쓰레기를 얼마나 담냐예요. 너무 많이 집으면 소각로의 적정 온도보다 올라가 오염에 주범이 되는 쓰레기들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쓰레기를 너무 적게 남으면 적정 온도보다 낮아서 아파트 주민들의 돈이 더 붙을 수 있죠. 그니까 적당하게.”
내 말에 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선배님 하는 거 한 번만 보고 바로 해보겠습니다.”
우지의 말에도 난 여전히 그의 주머니에 시선이 갔다.
나는 기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굴리면서 조금씩 중앙부에 있는 쓰레기 쪽으로 움직였다. 갈고리 모양처럼, 얇은 사람의 손가락처럼 생긴 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쓰레기 쪽으로 움직여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이내 크레인이 웅웅 거리다, 바다에 그물망을 펼치는 것처럼 손아귀를 펼쳤다. 지지직거리며 움켜쥐는 크레인. 여전히 우지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주머니. 나는 숨을 들이마시었다.
‘혹시 이 사람 이상한 사람인가.’
자꾸만 무언가를 매만지는 것이 주머니에 칼이 있나 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이 사람에게는 향수 냄새가 아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는 식은땀을 주르르 흘렀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다는 것에 무력함을 느낄 때, 공포를 느끼는 이 순간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느끼는 듯했다.
크레인이 쓰레기를 움켜쥐었다. 눈앞의 수치가 뜬다. 얼마만의 무게를 들어 올렸는지. 나는 우지를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에다 말했다.
“저렇게 초록색 글씨로 뜨면 소각로에 넣어도 된다는 표시예요.”
나는 소각로 쪽으로 크레인을 움직였다. 기어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렸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선배님.”
우지의 말에 나는 너무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똘똘한 눈으로 웃고 있는 우지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제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우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우지는 휴대폰을 꺼냈다. 순간 긴장했던 모든 것들이 수축되는 것 같았다. 순간 씁쓸하고도 강렬한 냄새가 날 것 같았던 우지에게서 상상만 했던 진한 향수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퉁퉁하게 불어있던 튀김옷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그때, 전화 한 통이 사이렌처럼 기계실에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노인의 처절한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어르신 저희는 일주일에 최대 300톤의 쓰레기를 소각합니다. 어르신 쓰레기봉투를 찾을 수가 없어요.“
오늘 이곳에서 나는 모든 냄새를 모두 확인했다. 이상한 사체의 냄새는 없었다. 윤에게도, 지훈이에게도 계속 냄새를 물어봤다. 노인은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추다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거기에 내가 모아둔 돈이 있혀…. 그 내가 나중에 죽으면 남겨두려고 했던 돈. 누가 훔쳐갈까 봐 내가 재활용 봉투 사이에 끼워놨는데 내 아가 재활용하면서 뭐 잘못 들어갔는지 들어갔나 봐.”
나는 다시 입을 뗐다.
“저희가 일일이 다 확인할 수가 없어서요, 재활용 봉투도 다 똑같이 생겼고요,”
내 무미건조한 말에 우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에도 진전없는 대화가 계속됐다.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르신, 저희가 못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각장 한번 방문하실래요? 그러면 왜 저희가 이렇게 말하는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내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나는 커다란 창 너머로 쉼 없이 움직이는 크레인을 바라보았다.
꽃무늬 상의와 늘어진 배 바지, 그리고 회색 양말에 보라색 슬리퍼를 신고 노인이 급하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 쪽으로 걸어가 기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쓰레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입니다. 어르신, 저희가 매일 소각하는 곳입니다.”
내 말에 노인은 나를 보는 채 만 체하고 급하게 계단을 걸어갔다. 그러다 기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수십 톤의 쓰레기를 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지는 그런 노인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 부축하며 소각장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거울 속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눈썹까지 덥수룩하게 덮은 더벅머리와 길게 찢어진 눈매, 커다랗고 오똑한 코, 부풀어 오른 빨간 입술. 나는 차가운 물을 받아 목 뒤까지 세수를 했다. 차가운 냉수를 온 얼굴로 받아들이니 조금은 정신이 차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코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콧볼을 올려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하고, 왼쪽으로 밀기도, 오른쪽으로 밀어보기도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려보기도, 반대 방향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코는 조금 빨개질 뿐 그대로였다.
나는 이제 다 눅눅해져 버린 튀김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손에 물을 조금 적시고 왼쪽 팔 부분을 뜯고, 오른쪽 팔 부분을 뜯었다. 눅눅해진 튀김옷들이 화장실 바닥 타일에 스며들 것 같았다. 허물을 벗는다. 나를 가려주던 막을 벗는다. 다 벗고 다니 거울 앞에는 멍한 내 모습이 보인다. 나는 뜯은 튀김옷들을 손으로 한가운데에 모아 다른 이들이 벗어 넣어둔 쓰레기통에 버렸다. 각자의 체형대로 각각 부풀어 올랐던 튀김옷들 사이에 내 옷을 던져놓았다.
내가 화장실에 나오자 우지가 그 앞에 서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작업복을 벗고 사복을 입은 우지의 모습은 천진난만해 보였다.
“잘 모셔다드렸고요, 일 끝나면 항상 사우나 가신다면서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우지를 오해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나를 보며 웃는 우지를 보고 말했다.
“우지 씨는 왜 작업복을 입어요? 냄새도 많이 나잖아요.”
내 말에 우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저는 그냥 이게 편해요. 냄새도 여기에 있으면 그다지 안 나지 않나요? 밖에 나가면 조금 그런 거지.”
우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요.”
나는 우지와 함께 사우나 쪽으로 걸어갔다.
라커룸에 들어갔을 때, 조금은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힐끗 내 맞은편에서 라커룸에 옷을 집어넣고 있는 우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고 있었다. 나는 우지의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노래를 부르며 상의와 하의를 벗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리문을 열자 열기가 얼굴을 확 끼얹었다. 오늘 있었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우지는 바가지를 언제 가져왔는지 냉탕에서 물을 퍼 자신의 온몸에 부었다.
“어허허…. 으하 좋다.”
천진난만한 우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내가 웃자 우지는 바가지에서 물을 퍼 들이부었다.
“어후, 뭐해요. 어후 차가워.”
찬물이 몸에 끼얹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모습을 보고 활짝 웃는 우지는 내게 말했다.
“선배, 세신 하실래요?”
우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지와 나는 나란히 세신사를 기다렸다. 세신 부위를 상세하게 적은 코팅된 가격표가 목욕탕 의자에 놓여 있었다. 네모나게 각진 거울들이 나란히 있고 색바랜 하얀색 목욕탕 의자와 샤워기들이 걸려 있었다. 순순한 알몸으로 오늘 처음 보는 사람과 누워있자니 기분이 요상했다. 조용하고도 느긋한 정적이 흘렀다. 분홍색 시계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늦저녁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분홍색 원색 커튼 뒤로 세신사 2명의 조곤조곤한 대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우지는 입을 뗐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나한테 쓰레기 냄새가 난데요. 선배, 나한테 그런 냄새나요?”
나는 그런 우지의 말에 뜨거운 무언가가 몸 안에 파고드는 것 같았다. 진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던 우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문득 사람의 외모를 보고 냄새를 생각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입을 뗐다.
“아뇨, 우지 씨한테 그런 냄새 안 나요.”
내 말에 우지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가끔 기계적으로 일하다 보면 제 자신이 초라해지더라고요. 일하다가 너무 바쁜 날에 화장실 가려고 잠깐 건물을 나왔는데 밖은 진짜 평화롭더라고요. 초라함은 그런 것 같아요. 갑자기 확 들어오는 생각 같은 거라고 해야할까요. 버티고 버텼는데,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하니까 기분이 지하 끝까지 내려가는 거 있죠.”
우지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적이 흘렀다. 나는 말했다.
“우지 씨한테 초라함은 갑자기 확 들어오는 생각이라면 저는 매순간이 그런 것 같아요. 우지 씨. 나는 냄새를 못 맡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향긋한 인생을 살죠. 그러다 아버지가 딸의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던 비극적인 사건도 알지 못했죠. 시신만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텐데.”
“그간 힘드셨겠네요. 트라우마가 남았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병적으로 냄새를 체크하고는 하죠.”
내 말에 우지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우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우지가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가 트라우마를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나는 우지를 보며 웃었다.
“저도 제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세신사가 들어왔다. 세신을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미지근하고 축축한 때밀이 수건이 사정없이 내 온몸을 밀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 타월에 쌓여 있던 오늘의 피로가 밀렸다. 새 살이 돋듯이 올라왔던 튀김을 머금고 있는 때들이 쉽사리 벗겨지기 시작했다. 버석버석한 모래를 몸에서 무겁게 털어냈다. 세신사의 어깨 쪽에 뜬 부항이 커다란 멍처럼 보였다. 머리를 감싼 꽃무늬 타월이 눈앞에서 멀어지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시계에서는 물이 여전히 뚝뚝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세신사의 땀이 물 흐르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용한 목욕탕 안에 타월 미는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를 무겁게 감싸던 옷들은 이미 흐물흐물해 녹고 없다. 기름 안에서 그날을 떠올렸다. 묵혀있던 것들을 한꺼번에 모두 비워낸다. 그래야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을 쪽 뺀 맨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순순한 내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만 반짝이고 있었다.
|소설 부문 심사평
올해 50회를 맞이한 다형문학상 소설 부문에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다. 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과와 학년의 학생들이 참여해 숭실 문학 축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응모작의 개성과 장점이 뚜렷하면서도, 동시대 청년들의 생활과 미래, 연애사 등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동시대 청년들의 문제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했다. 비단 작품의 편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작품의 소재와 주제, 완성도가 고루 높아 여느 해보다 심사의 시간이 길고 의미 있었다.
최종까지 논의 했던 작품은 세 편이었다. 「조용히 해줄래요」는 등장인물 모두에 대한 섬세하고 신중한 서술 태도 및 문장이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나름 반전이 있는 서사임에도 이러한 섬세함과 신중함이 소설을 다소 나른 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가작인 「백 투 더 홈」은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구심점으로 삼아 전개되는 서사 흐름이 흥미로웠고,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태도 및 이야기를 종횡무진 이끌어가는 힘도 좋았다. 유령 주인공. 세포 조력자 등이 유의미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소설 설정의 특성상 개연성 측면의 모호한 점이 없지 않았다. 또한 한국소설의 최근 경향성(유령서사, 모녀서사)과 관련된 기시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수상작인 「냄새 없는 소각장」은 설정도 문장도 구성도 개성적인 동시에 안정적이었다. 가상의 소각장 작업 현장을 그린 미니멀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냄새 없는 소각장이라는 설정이나 인물관계 등에 맞는 규모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소설 안에 잠시 언급되고 있지만 님비 현상, 인류의 쓰레기 방출과 그것의 은폐. 혹은 무해함(타자 없음)에 대한 강박 등 오늘날 세계의 문제를 다양하게 환기하는 설정이 좋았던 한편, 그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위해 과감히 알레고리를 표방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 편의 소설 안에서 무리 없이 한 세계가 완결되어 있었고, 냄새를 추방한 세계의 서늘한 유머가 유감없이 전해지니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수상자와 응모자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50회를 맞이한 다형문학상과 숭실문화상을 위해 애써주시는 숭대시보와 학교에도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학생의 참여와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김태용 교수(문예창작전공)
김미정 교수(문예창작전공)
|소설 당선 수상소감
“글 쓰는 게 좋다면 끝까지 해보자”
제가 막연한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기쯤 문예창작전공 교수님들이 수업 시간에 해주셨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 덕분에 작년보다 더 쓰고, 꿈꾸고, 사유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소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내 소설 속 인물의 진심이 읽는 이에게 닿는 것’ 저는 이 순간을 위해 여전히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소설 읽어주시고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 주신 태용 교수님과 미정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더딜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