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문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의 하나는 돌봄 노동입니다. 돌봄은 재생산 노동으로서, 사람들의 삶을 지속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활동 전체를 가리키는데요. 여기에는 육아는 물론이고, 요리, 청소, 세탁 같이 매일 하는 일과와 환자,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돌봄 노동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무상 혹은 저임금으로 저평가되곤 합니다. 돌봄이 젠더적으로 여성의 의무처럼 여겨진다는 점에서 그 문제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여성에게 다른 사람의 안녕을 책임지게 하고 여성이 재정적, 물질적으
사랑이란 보편적인 사건인 동시에 개인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통된 경험이라는 차원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체험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주란의 「겨울 정원」(『문학동네』, 2025년 봄호)은 청소일을 하는 노년 여성을 통하여, 사랑의 두 가지 얼굴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기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60살의 여성이 있습니다. 오피스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혜숙은 수십 년을 혼자 살아왔으며, 현재는 소설 쓰는 딸 미래와 함께 지내는데요. 이 작품의 상당 부분은 혜숙의 일상을
작가 황정은은 사회적 어둠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작가입니다. 특히 사소한 기미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문체는 독자와 평론가의 주목을 받아왔는데요. 출세작인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에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소외를 표현하기 위해 형상화한 ‘그림자’는 한국문학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성취입니다. 이번에 이야기해보려는 「문제 없는, 하루」(『창작과비평』, 2025년 봄호)는 ‘악’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더욱 깊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이끕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매인 영인과 인범입
김혜진의 「빈티지 엽서」(『Axt』, 2024년 11·12월)의 그녀는, 평범함이 유일한 개성일 정도로 평범한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15년째 자전거 대리점을 꾸려가며, 최근에는 중국산 고춧가루를 팔지 말지를 고민합니다. 일하느라 여행은 엄두도 못 내는 그녀가, 당뇨 초기 진단을 받고 헬스장에 다니면서 모든 일은 시작됩니다. 그녀는 헬스장에서 파란 바지의 남자를 만나는데요. 남자로부터 스쾃 자세를 조언받고, 러닝화를 추천받으며 조금씩 친해집니다. 남자는 해외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실제로 사용된 엽서)’를 취미로 수집해왔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라는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론이 어찌나 난해한지, 라캉이 죽었을 때 한 신문에는 “자크 라캉을 이해하던 유일한 지구인이 이 세상을 떠났다.”라는 부고 기사까지 실렸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갑자기 자크 라캉이 생각난 이유는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릿터』, 2025년 4·5월)를 읽다가 자크 라캉의 상상계(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 개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에는 한 살 차이가 나는 사라와 사
김살로메의 「뜻밖의 카프카」(『뜻밖의 카프카』, 아시아, 2025)는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가정주부 로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입니다. 마흔이 코앞인 로사는 이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홍삼 엑기스, 위장약 카베진”을 “삼종 세트 치유제”로 삼아 일상의 고단함을 버텨 나가는데요. 촉이 좋은 분들은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로사는 일상의 소외와 고독에 힘겨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어쩌면 당연한) 것은, 그러한 소외와 고독을 낳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로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첫 번째 존재는 바로 “원칙에 충실
김경욱의 단편소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현대문학』, 2025년 1월)는 한 인간의 성숙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작가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가소설(Künstlerroman)입니다. 이 작품에서 인간으로 성숙하는 과정과 한 명의 작가로서 탄생하는 과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네 명의 누나들 사이에서 “내동댕이쳤다 움켜쥐고 움켜쥐었다 내동댕이치는 주먹” 속의 “공깃돌”처럼 성장합니다. 그것은 스스로에 의해 “속눈썹 위에 올려진 성냥개비 같은 인생”으로 규정되는데요. “내면까지 누나들의 세계와
최은미의 「김춘영」(『창작과비평』, 2025년 여름호)은 김춘영이라는 한 여성을 통해, 개인의 진실이 발화되는 방식에 대하여 탐문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연구자 박정윤은 김춘영을 방문하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때의 ‘사건’이란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발생한 소위 ‘사북사건’을 의미하는데요. 이 ‘사건’은 탄광 노동자들의 대규모 항쟁으로서, 한때 사북읍 시가지가 노동자들에 의해 4일간 점거되기도 했습니다. 노조 지부장의 가족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등 격렬한 상황이 이어졌으며, 이후 계엄사령부에 의해
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자음과모음』, 2025년 봄호)는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덤 속에 파묻어 둔 진실과의 필연적인 조우를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김지연은 젊은 세대의 잔잔한 일상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일가를 이룬 작가인데요. 점차 작품 세계가 사회적 배경과 존재의 비의를 향해 넓어지며 동시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무덤을 보살피다」는 존재에 감춰진 진실의 심연과 그것이 거느린 역사적 어둠에까지 작가적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문제작입니다. 이 작품에서 오랫동안 감춰진 진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
전춘화의 「웰컴 투 빌라」(『문학 인, 2025년 여름호)는 한국 사회에서 중국동포와 한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장벽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장벽의 첫 번째 원인은 계급적 정체성이며, 이는 ‘빌라/아파트’의 대비를 통해 드러납니다. 애령의 집뿐 아니라 그녀가 속한 세계는 온통 ‘빌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애령과 림이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투룸 빌라 5층에 전세로 살고 있으며, 양 선생님 부부는 교회 용도로 낡은 빌라 3층을 월세로 사용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스무 명 남짓의 북쪽 동포들과 열 명 남 짓의 중국동포 성도들 역시
강보라의 「바우어의 정원」(『Axt』, 2024년 11/12월호)은 주요 인물인 은화, 무재, 정림 등이 모두 배우들인 일종의 예술가 소설입니다. 일반 적으로 예술가 소설은 예술의 본질이라든가 예술의 시대적 역할을 탐구하고는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순탄치 않은 역사를 살아온 한국문학에서 예술가 소설은 주로 예술가가 지닌 이상과 예술가가 살아가는 불우한 현실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랬던 상황에서 「바우어의 정원」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눈 내리는 풍경과 거룩한 분위기의 캐럴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세련되고 깊이 있게 형
그 어떤 인간도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존재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최근 발표된 김지수의 「저기 한 점 꽃잎이」(『명자꽃이 피었다』, 푸른사상, 2025)는 누수(漏 水)의 이미지를 통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존재의 법칙을 실감나게 형상화하기도 했는데요. 냉장고의 누수 현상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냉장고만 낡고 고장나 누수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늙고 병들어 누수를 일으키다가 결국에는 작동을 멈춘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보여줍니다. 제16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자음과모음』, 2004년 봄호)는 인간 의 ‘부족한(little) 자부심(pride)’을 둘러싼 여러 가지 난제를 환기시키는 소설입니다. 서장원은 살짝만 그러쥐어도 부서질 듯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데 능숙한데 요. 등단 직후에 발표한 「해피 투게더」(2020)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타인의 불행이나 결핍을 통해서 간신히 지탱할 수 있는 인간의 여린 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얘기해 보려는 「리틀 프라이드」도 “트랜스 남성”인 토미를 등장시켜, 바스라지기 쉬운 마음의 취약
우리가 온전한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1889-1976)에 의하면, 사람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본래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세에 따름으로써, 인간은 안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인데요. 대세를 거스르는 일의 어려움은 하이데거 스스로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바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고까지 일컬어지던 하이데거는, 당시 독일의 대세였던 히틀러에 협력함으로 써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성
서고운의 「여름이 없는 나라」 (『문학들』, 2024년 여름호)는 문학의 정치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오랫동안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논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였습니다. 첫 번째는 공산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문학관으로서, 문학을 ‘혁명의 나사못’으로 여기는 입장입니다. 두 번째는 폐쇄적이고 자율적인 작품을 비판하고 현실에의 참여를 중요시한 사르트르의 입장을 들 수 있습니다. 최근에 철학자 자크랑시에르(1940-)는 ‘문학은 문학으로서 정치를 행한다’는 새로운 명제를 제시했는데요. ‘감성적인 것의 분할’이 정치의 본질이라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문학이 지녔던 영향력의 상당 부분은 다른 매체들, 일테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른 매체가 따라올 수 없는 문학만의 강점도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는 거의 무한대의 자유로 심연과도 같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물의 내면 심리에 대한 묘사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도 존재할 정도니까요. 오늘 이야기하려는 권여선의 「헛꽃」(『문학동네』, 2024년 가을 호)은 환갑을 앞둔 혜영의 심리를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입니다.
해이수처럼 다양한 공간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작가도 드물 겁니다. 호주를 배경으로 한 등단작 「캥거루가 있는 사막」(2000)에서 부터 미얀마를 배경으로 한 최근 작 『탑의 시간』(2020)에 이르기까지, 해이수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곳이 아닌 저 먼 곳을 배경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수평의 끝이라 할 수 있는 몽골의 모래바 람과 수직의 끝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눈보라까지 헤매며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를 찾아 헤 매온 소설가가 바로 해이수인 것 입니다. 그런 그가 「구보의 아들」(『문학인』, 2025년 봄호)에서는
커다란 새장 속의 새는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고 느낄까요? 아마 도 그 새는 커다란 새장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해 보려는 최민우의 「구아나」(『Axt』, 2024년 9월·10월호)는 도윤과 해영이라는 젊은 비혼 커플이 새장에 부딪치는 순간과 그 이후의 반응을 담담하지만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최민우는 상황이나 인물의 생생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보여 주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요. 불법 유통판매업 현장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가 일품인 등단작 「[반:]」 (2012)의 감동은 오랜 시간
정용준의 「바다를 보는 법」(『현대문학』, 2023년 5월)은 ‘어른을 위한 동화’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만연한 사회여서일까요? 정용준이 전달하는 이 따뜻한 서정성과 교훈성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소설이 야무지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용준은 약소자들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드러내며 작가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최근에는 우리 일상의 타자들을 향한 섬세한 윤리적 감성을 드러내는데 나름의 일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거리에 헤드기어를 쓰고 나타난
사르트르는 문학(소설)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구혁명 안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 (주관성)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언명은 근대의 가장 유력한 소 설관으로서 소설은 한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윤리적이며 지적인 난제를 온몸으로 짊 어지는 수난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영향력과 존재의의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러한 근대 소설의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한국의 최근 소설가로 김강만한 이는 드뭅니다. 그의 소설은 늘 공동체의 올바른 존재 양태에 대한 탐색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에 대한 비판 정신으로 가득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