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문 당선작

사랑합니다, 고객님

박창수(문예창작·18)

등장인물
이시우    25세 남, 서비스 센터 신입사원
신민호    30세 남, 서비스 센터 대리
김미경    55세 여, 주부, 시우의 엄마
유하린    25세 여, 시우의 여자친구
나영수    60세 남

배경
현재
서비스 센터, 길거리, 시우의 집 거실, 카페

1장

  서비스 센터. 왼쪽은 바깥이고 오른쪽은 서비스 센터 안쪽이다. 무대 중앙에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 아래쪽에 구멍이 난 가림막이 있다. 조명은 가림막을 기준으로 서비스 센터 안쪽을 비춘다. 의자는 앉은 사람의 옆모습이 보이게 가림막 기준 하나씩 2개 있다. 셔츠 차림의 시우가 안쪽의 의자에 앉아 있다. 셔츠차림의 민호가 전달기를 들고 안쪽에서 나와 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민호    일은 어때?
시우    아, 대리님. 아직 뭘 몰라서 그런지 할만합니다.
민호    할만하긴. 자, 선물.

  민호가 시우에게 전달기를 건넨다.

시우    이게 뭐예요?
민호    (으쓱하며) 한번 꽂아봐.

  시우가 케이스에서 전달기를 꺼내 귀에 꽂는다. 민호가 무엇인가 말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E    연결되었습니다.
시우    저, 안 들리는데요, 대리님.

  이어서 시우 목소리의 기계음이 들린다.

시우E    죄송합니다만, 잘 들리지 않습니다.

  시우가 전달기를 빼고 놀란 눈으로 민호를 본다.

민호  듣기 좋게 전달해주는 전달기야. 다른 사람 말도 전해주고, 네 말도 전달하고.

  시우가 다시 전달기를 끼고 말한다.

시우    회사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시우E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민호가 시우의 귀에서 전달기를 뺀다.

민호    입 모양은 보여 인마.

  시우가 뒷머리를 긁고, 민호가 케이스에 전달기를 넣고 책상에 올려놓는다.

민호    그래서 우리가 가림막도 켜는 거지.

  민호가 책상 아래 단추를 누르면 가림막 너머 조명이 켜지고 다시 누르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시우    아아.
민호    편하다고 막 쓰면 안 돼. 아직 개발단계고 시험 삼아 쓰는 거니까.
시우    네. 감사합니다.

  민호가 기지개를 피며 하품한다.

민호    10분 남았는데 아무도 안 오겠지? 슬슬 정리하고 회식 갈 준비할까?
시우    좋습니다.

  시우, 가방을 정리하던 중 기계음이 들린다.
 
E    17번 고객님.
민호    꼭 이런 얘기 하면 오더라. 준비하고 있을게. 고생해라.
시우    감사합니다.

  민호가 시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시우 민호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쉰다.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가 들리면 시우가 퉁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전히 가림막 반대편은 보이지 않는다.

시우    뭐 때문에 오셨어요?
영수    어, 저기 핸드폰이 안 켜져서.
시우    네 제품 올려주시겠어요?

  고객이 가림막의 구멍으로 스마트폰을 건넨다. 시우가 스마트폰을 받고 외관을 확인하고 선에 연결해서 전원을 켜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스마트폰을 분해하고 살펴보며 말한다.

시우    메인보드가 나갔네요. 교체하시면 수리비 37만 원입니다.
영수    아니, 겉보기에 멀쩡하구먼. 왜 돈을 내?
시우    액정이 멀쩡해도 내부가 다 깨진 거라서 돈 내셔야 해요.
영수    아니 내가 떨어트리질 않았다니까.

  시우가 한숨을 쉬더니 책상 위 전달기를 본다. 시우, 케이스에서 전달기를 꺼내 꽂는다.

영수    아니, 사람이 말을 했으면 들어야 할….
E    연결되었습니다.
영수E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시우    여기 찍힌 자국도 있고 낙하 이력도 있는데 뭘 안 떨어트려요.
시우E    외관상 찍힌 자국이 있고, 제품 검사 결과 낙하 이력이 조회되어서 무상수리가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우가 동작을 멈추고 전달기에 집중하다가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자 고개를 끄덕인다.

영수E    무상수리 부탁드립니다. 
시우    저희도 본사에서 부품 받아오는 거예요. 누군 땅 파서 장사해요?
시우E    저희 지점이 본사에서 부품을 공수하기 때문에, 지침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들은 무상수리가 불가능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수E    수리 취소하겠습니다.
시우    (빈정거리며) 네, 네 안녕히 가세요.
시우E    사랑합니다, 고객님.

  시우가 스마트폰을 조립하고 구멍으로 내밀자 영수의 손이 스마트폰을 낚아챈다. 시우가 전달기를 빼서 책상에 내려놓자 불이 모두 켜지고 고객이 신경질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모습 보인다. 서비스 센터 안쪽에서 양복 상의를 입은 민호가 시우에게 다가온다.

민호    고생했다, 하필 퇴근 시간에 저런 진상이 걸리냐.
시우    아닙니다, 대리님.

  민호가 책상에 걸터앉고 시우의 전달기를 시우에게 건네준다.

민호    잘 챙겨. 이거 비싼 거야.
시우    아, 감사합니다.
민호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심해라. 저거 낀 거 안 낀 거 헷갈리다가 큰일 난다.
시우    네. 명심하겠습니다.
민호    회식해야지. 가자.

  민호가 시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오른쪽으로 퇴장한다. 시우가 책상 서랍을 열다가 잠긴 걸 확인하고, 열쇠를 꺼내려다 지퍼가 열리지 않자 전달기를 주머니에 넣고 무대 오른쪽으로 달려간다. 암전

2장

  길거리다.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시우 무대 왼편에서 비틀비틀 걸어온다. 무대 중간쯤 왔을 때,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시우 웃옷의 주머니를 더듬다가 왼쪽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시우    어, 하린아.
하린E    야, 이시우.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해.
시우    그, 저, 상사분들이 찾으셔서….
하린E    지금까지? 지금이 열두 시인데 지금까지 마신다고?
시우    지금은 끝났지.

  하린이 말하는 도중에 시우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전달기를 꺼낸다.

하린E    넌 그게 문제야.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걸….
E    연결되었습니다.
하린E    ...네가 미안하다고 해줬으면 좋겠어.
시우    아, 씨! 나도 힘들다고! 오늘 퇴근 시간까지 진상 상대하다가 회식까지 끌려갔다고!
시우E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피곤해서 그랬어. 미안해.
하린E    (사이) 사랑한다고 말해줘.
시우    (건성으로) 어, 나도.
시우E    사랑합니다….

  시우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전달기를 케이스에 넣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른손에 스마트폰, 왼손에 가방을 들고 무대 오른쪽으로 퇴장한다. 암전.

3장

  시우의 집 거실이다. 무대 왼쪽 바깥은 시우의 방이고 오른쪽 바깥은 현관문이다. 무대 가운데에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 밥과 국이 차려져 있다. 미경이 탁자의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흰 티를 입은 시우가 방에서 목에 수건을 걸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등장한다.

시우    아우, 머리야….
미경    아들 이제 나왔어? 뭐 그렇게 많이 마셨어.
시우    대리라는 사람이 옆에서 그렇게 마셔대니까 안 마실 수가 있어야지.
미경    (목소리를 낮추며) 너, 그렇게 함부로 상사 욕하는 거 아니야.
시우    (의자를 빼서 앉으며) 아유, 뭐 어때. 앞에서만 안 하면 됐지.
미경    어이구. 일은 어때?
시우    (수저를 들어 국을 먹으며) 이상한 사람들 많지. 그래도 뭐, 할만해.
미경    얼른 밥 먹어. 12시가 넘었네.
시우    (캑캑대며) 12시? 나 하린이 만나기로 했는데?

  시우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겉옷을 걸치고 무대로 달려온다. 미경이 시우를 멈추고 시우의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미경    잠깐만! 아휴, 옷이 이게 뭐니.
시우    아, 엄마 빨리. 늦었어.
미경    다 됐다. (시우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사랑해 아들.
시우    아우! 그만해. 내가 애도 아니고 뭘.

시우가 현관문으로 나간다. 시우를 보는 미경. 암전.

4장

  카페다. 탁자에 의자가 양옆으로 있다. 하린의 앞에 커피잔이 있다. 하린이 오른쪽 의자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시우가 카페 왼쪽에서 달려 나와 왼쪽 의자에 앉는다.

시우    (숨을 헐떡이며) 늦었지, 하린아.
하린    어, 왔어?

  하린이 스마트폰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시우를 본다.

시우    어제 화 많이 났지.
하린    음….

  하린이 다른 곳을 보며 잠시 생각한다.

하린    뭐, 오랜만에 괜찮았어.
시우    응? 진짜?
하린    응. 전화 걸었을 때는 화났었는데, 내가 속상해하는 거 듣고 네가 말 이쁘게 해서 다 풀렸어. 술 취해서 정신없었을 텐데 오랜만에 사랑한다고도 해주고 말이야.

    하린이 미소를 지은 뒤 말한다.

하린    사랑해, 시우야.
시우    (미소 지으며) 나도.

  시우와 하린이 잠시 웃은 뒤, 하린이 갸웃한다.

하린    근데 일하다 와서 그런가, 뭔가 딱딱한 말투였어.
시우    어? 아, 내가 취해서 상사분들 대하는 습관 나와서 그랬나 봐.

  하린이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린    어제 술 많이 마시고 해장도 못 했지. 너 좋아하는 국밥 먹으러 갈까? 
시우    어, 국밥 좋지. 가자.

  시우와 하린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나간다. 암전

5장

  서비스 센터다. 시우가 의자에 앉아 있고 민호 책상에 걸터앉아 있다.

민호    너 표정이 좋아 보인다?
시우    아, 그저께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민호    넌 데이트가 좋냐? 나는 여자친구랑 만나면 맨날 싸우기만 하는데. 서비스 센터 직원이 말투가 뭐 그러냐고.
시우    (조심스럽게) 그러면 통화하실 때만이라도 전달기 쓰는 건 어떠십니까?
민호    (시우를 쳐다보며) 너 설마 쓰고 있냐?
시우    (손사래 치며) 아, 아닙니다. 여자친구분이 말투 얘기하셨다 해서.

  민호가 의심스럽다는 듯 천천히 시선을 거둔다.

민호    서비스 센터 오는 고객이랑 여자친구 대하는 건 다르지. 고객들이 원하는 건 그냥 핸드폰 고치는 거고, 여자친구는 사랑하는 사이잖아. (시우를 보며) 너는 생각만으로 작동하는 전달기 있으면 쓸 것 같냐?
시우    (고민하다가) 완벽하다면 쓸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이에서 말하기 더 어려운 거 있지 않습니까?
민호    그럼 그게 가까운 사이냐? 먼 사이지.
시우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민호    (시우를 보며) 어휴, 나는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다.
E    20번 손님.
민호    어? 몇 시냐?

  민호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민호    야, 6시 넘었으니까 말씀드리고 돌려보내. 마지막 고객이니까 좀만 참고. 나 준비하고 온다.
시우    네, 알겠습니다.
민호    어.

  시우가 신경질적으로 책상 아래 단추를 누르면 가림막 기준 시우 건너편 조명이 꺼진다. 민호가 서비스 센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우가 민호를 눈으로 좇는다. 

시우    지가 뭔데 쓰라고 만들어 놓은 걸 주는 게 좋은 생각이니, 마니. (짜증 내며) 어휴, 꼰대 새끼.

  시우가 전달기를 귀에 꽂으면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린다.

고객E    늦어서 죄송합니다. 필름 교체 부탁드립니다.
시우    영업시간 끝났어요. 가세요.
시우E    영업시간이 끝났습니다. 다음에 방문해주세요.
고객E    교환권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필름 교체 부탁드립니다.
시우    아니 교환권이든 뭐든 영업시간 끝나면 안 된다고요. 그렇게 아까우면 빨리 오시던가.
시우E    고객님의 서비스 품질 향상과 상담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업무시간 외에는 접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객E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시우    네, 네. 내일 오세요. 빨리빨리 좀 오세요.
시우E    사랑합니다, 고객님.

  시우 한숨을 쉬며 전달기를 빼면서 책상에 엎드리고 책상 아래 단추를 누른다. 가림판 건너에도 불이 켜지면 영수 입구 쪽에서 씩씩대며 들어온다.

영수    야, 너 이거 고치는데 40 든다고 했지. 옆 지점 가니까 공짜로 해주던데 무슨 돈이야?
시우    부품이 남아도나 보죠. 거기서 공짜로 수리받았으면 됐지 왜 여기 와서 지랄이에요, 지랄은.

  시우, 고개를 들다가 어이없어하는 영수를 본다. 시우 당황해서 천천히 일어난다. 영수, 시우를 가리킨다.

영수    너, 너 뭐라 그랬어.
시우    저, 그게….

  영수가 천천히 탁자 쪽으로 다가오고 시우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뒷걸음질 친다. 민호가 안쪽에서 걸어 나오다가 영수를 보고 빠르게 다가온다.

민호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영수    아니, 이 양반이 다짜고짜 쌍욕을 하잖아. 손님한테 지랄이 뭐야, 지랄이!

  민호, 시우를 살짝 본 다음 영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민호    손님,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수    내가 똑똑히 들었다니까? 참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민호가 시우를 노려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민호    들어가 있어.

  시우가 고개를 숙이고 안쪽으로 걸어간다. 암전.

6장

  불이 켜지면 서비스 센터다. 민호 서비스 센터 안쪽으로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서 있다. 시우 고개를 숙이며 쭈뼛쭈뼛 밖으로 나온다. 시우가 보이자 민호 시우를 노려본다. 시우 민호 앞으로 와서 선다.

민호    야, 너는 그 짧은 시간을 못 버텨서 사고를 치냐? 어?
시우    죄송합니다.
민호    전달기 낀다고 안 들린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한테 쌍욕을 해? 그건 그냥 고소감이야, 인마! 회사 잘리고 싶어?

  민호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기고 밖으로 손짓한다.

민호    야. 꼴 보기 싫으니까 빨리 나가.
시우    죄송합니다.

  시우, 고개를 숙인 채로 입구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민호 시우를 쳐다본다. 암전.

7장

  길거리다. 시우가 왼쪽에서 등장한다. 중앙에 왔을 때 벨 소리가 울리고 시우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받는다.

시우    여보세요.
하린E    끝나자마자 전화한다며. 왜 전화 안 해. 
시우    아, 일이 있어서. 미안.
하린E    무슨 일이야. 오늘 힘든 일 있었어?

  시우가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 한숨을 쉰다.
    
시우    하린아. 우리 다음에 전화하자.
하린E    아니, 설명을 해줘야 알지. 무슨 일인지만 말해줘.
시우    생각하기 싫어서 그래. 다음에 말해줄게.
하린E    그럼 사랑한다고만 해줘.

  시우가 주머니에서 전달기를 꺼내 망설이다가 귀에 꽂는다.

E    연결되었습니다.
시우    끊을게.
시우E    사랑합니다, 고객님.

  시우가 전달기를 귀에서 빼고 주머니에 넣는다.

하린E    야, 이시우! 야!

  시우가 스마트폰을 눌러 전원을 끄고 한숨을 쉬며 오른쪽으로 퇴장한다.

8장

  시우의 집이다. 가운데 탁자에 밥이 차려져 있다. 미경과 시우가 반대편에 앉아 있다. 시우가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고 있고, 앉은 의자에 양복 상의가 걸쳐져 있다. 시우와 미경이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시우    얘가 톡을 왜 이렇게 많이 했지?
미경    (시우를 보며) 사랑하는 아들, 밥 먹어야지?
시우    (건성으로) 어, 알았어. 알아서 먹을게.

  시우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채로 천천히 밥을 먹는다. 

미경    시우야, 서비스 센터에서 필름도 바꿔주니?
시우    왜. 엄마 필름 이상해?
미경    아니, 그냥. 바꿀 때 된 것 같아서.
시우    멀쩡하면 그냥 쓰면 되지. 엄마 같은 사람 때문에 내가 일이 많아지는 거야. 
미경    그래도 바꾸면 새 폰 같잖아.
시우    아, 그럼 나 주던가. 바꿔오게. 
미경    에이, 됐어. 그냥 쓸게.
시우    그리고 바꿀 거면 저기 다른 데로 가. 쪽팔려.

  시우가 양복 상의를 입고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한다. 미경이 눈으로 시우를 쫓다가 말한다.

미경    아들.

  시우가 뒤돌아서 미경을 본다.

시우    왜.
미경    사랑해.
시우    어.

  시우가 다시 몸을 돌려 나간다. 암전.

9장

  서비스 센터다. 책상 위에는 전달기가 있다. 조명은 가림막 기준 서비스 센터 안쪽을 비춘다. 시우가 초조하게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울리다 끊기고 하린의 딱딱한 목소리 들린다.

하린E    여보세요.
시우    (나긋나긋하게) 어, 하린아. 일어났어?
하린E    어. 너 때문에.

  시우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말한다.

시우    미안해, 하린아.
하린E    왜 전화했어?
시우    당연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지.
하린E    목소리 듣고 싶다는 애가 어제 전화를 그딴 식으로 해?

  시우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전달기를 꺼내고 귀에 가져간다.

시우    무슨 소리야. 하린아. 그딴 식이라니.
하린E    너 어제 센터에서 쓰는 자동응답기 썼지?
시우    (뜨끔하며) 아, 아니야, 하린아.

  시우가 전달기를 다시 케이스에 넣는다.

하린E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어제 사랑합니다, 고객님 한 건 뭐야?
시우    그건 내가 미안해서 장난 한번 쳐 본 거야.

  침묵이 길어지자, 시우가 한숨을 쉬고 말한다.

시우    미안해.
하린E    사랑해 한 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기계를 쓰니? 그것도 서비스 센터에서 쓰는 걸 그대로 가져와서?
시우    그래도 내가 해줬잖아. 저번에 카페에서.
하린E    딸랑 그거 한번 한 거?

사이

하린E    시우야, 나 네 여자친구야. 네가 말했든 기계가 말했든 나도 못 듣는 사랑한다는 말을 서비스 센터에서는 맨날 하는 거잖아. 그게 말이 돼?
시우    미안해.

  민호가 서류를 들고 서비스 센터 안쪽에서 나오면 시우가 민호를 힐끗 보고 목소리를 낮추며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감싸며 말한다.

시우    이따가 전화할게.

  시우가 일어나 민호에게 90도로 인사한다.

시우    안녕하십니까, 대리님.
민호    어. 야. 이거.

  민호가 시우에게 서류를 건네면 시우가 받아 읽는다.

민호    민원 넣는 거는 막아서 본사까지는 안 갈 거고. 이거는 지점장님 경고.
시우    죄송합니다.
민호    알면 잘해 인마. 오늘 나 센터에 전기 고칠 거 있다고 해서 바쁘다. 사고 치지 말고.
시우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민호가 안쪽으로 들어간다. 시우 민호가 가는 걸 바라보다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서류를 읽는다. 그러다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 머리를 턴다. 기계음 들린다.

E    1번 고객님.
시우    1번 고객님.

  시우가 한참 기다려도 고객이 오지 않자 전달기를 꺼내 귀에 꽂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E    전원이 부족합니다.
시우    (혼잣말로) 얼마나 됐다고 배터리가 다 돼. (짜증 내며) 1번 고객님!
시우E    1번 고객님,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의자 끄는 소리 들린다.

미경E    미안합니다. 제가 서비스 센터는 처음이라서 늦었습니다.
시우    빨리빨리 좀 오세요. 네?
시우E    다른 고객님들의 편의를 위해 차례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미경E    죄송합니다.
시우    (머쓱 해하며) 뭔 일로 오셨어요.
시우E    감사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미경E    필름 교체 부탁드립니다. 괜찮으세요?
시우    주세요.
시우E    제품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미경이 스마트폰을 넘겨주고, 시우가 스마트폰을 받고 책상 서랍에서 핀셋을 꺼낸다.

시우    멀쩡한데 뭘 바꾸려고 그래요. 일만 많아지게.
시우E    업무 효율을 위해 서비스 센터는 이용 목적에 맞게 방문 부탁드립니다.

  시우가 스마트폰의 필름을 벗기고 새 필름의 포장을 뜯는다.

미경E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지점 이용하겠습니다.
시우    아니, 뭐 그럴 것까지는.
시우E    언제나 편하게 상담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우가 스마트폰에 필름을 붙이고 전원을 켠다.

시우    다 붙였어요. 켜 볼게요.
시우E    제품 확인을 위해 전원을 켜겠습니다.
미경E    괜찮습니다. 그냥 주세요.

  미경의 손이 스마트폰을 가져간다. 무대에 조명이 꺼진다. 사람들 웅성댄다.

E    전원이 꺼졌습니다.

  조명이 무대 전체에 다시 켜진다. 시우와 미경,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미경    사랑해, 아들.
시우    엄마.

  조명이 가림막을 기준으로 서비스 센터 안쪽에만 비춘다. 시우 계속 멍하니 미경 쪽을 본다. 무대 안쪽에서 민호가 급하게 나온다.

민호    야, 가림막 제대로 되냐?

  시우 말없이 귀의 전달기를 빼서 힘없이 팔을 떨어트리면 전달기가 바닥에 떨어진다. 암전.

10장

  길거리다. 시우가 왼쪽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시우가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잠시 망설이다가 시우가 전화를 건다. 통화음이 들리고, 시우가 끊으려는 찰나 하린이 받는다.

하린E    웬일이야? 퇴근하고 전화를 다 하고.
시우    하린아.
하린E    왜.
시우    미안해.
하린E    응?
시우    저번에 통화할 때 자동응답기 비슷한 거 쓴 것도 맞고, 집중 못 했던 것도 맞아. 미안해.

사이

하린E    너 설마 지금도 쓰고 있어?
시우    아니야! 절대 아니야.
하린E    그럼 됐어. 너 근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시우    그냥, 뭐.

사이

시우    하린아.
하린E    응?
시우    지금 뭐 해?
하린E    그냥. 저녁 먹고 쉬고 있지. 왜?
시우    (머뭇거리며) 지금 만날 수 있어?
하린E    지금? 웬일이야. 이시우가 먼저 만나자고 다 하고.
시우    너무 갑작스럽지. 안 나와도 돼.
하린E    시우가 불러줬는데 그럴 수는 없지. 나갈게.
시우    어, 하린아.
하린E    응?
시우    (머뭇거리며) 사랑해.
하린E    (웃으며) 나도 사랑해. 이따 봐.
시우    (미소 지으며) 응.

  통화 종료음. 시우 스마트폰을 꼭 쥐고 빠른 걸음으로 오른쪽으로 나간다. 암전.

11장

  카페다. 시우와 하린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하린이 전달기를 살펴보고 있다.

하린    우와. 이게 그 기계야?
시우    응. 원래 진상 고객들 오면 사원 보호 차원에서 가림막이랑 같이 쓰라고 주는 거야.

  하린이 전달기를 귀에 끼운다.

E    연결되었습니다.
하린    이시우 바보.
하린E    다시 말씀해드릴까요?

  하린이 전달기를 빼고 묻는다.

하린    내가 무슨 말 했게?
시우    입 모양은 다 보여.
하린    아, 그러네.

  시우가 하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린이 웃으며 전달기를 케이스에 넣은 후 시우에게 돌려주면 시우가 받아서 주머니에 넣는다.

하린    되게 신기하다. 이거에 익숙해지면 진짜 힘들 것 같아.
시우    그렇지?
하린    그래도 너무 심했잖아, 이시우. 대놓고 욕을 그렇게 하면 어떡해.

  시우가 멋쩍게 머리를 긁고, 하린이 웃으며 말한다.

시우    하린아.
하린    응?
시우    나 대리님하고 엄마한테 뭐라고 해야 할까.
하린    그냥 얼굴 보고 나오는 말 그대로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시우    막상 얼굴 보면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면 바보같이 보일까 봐….
하린    너 오늘 나 만날 때처럼 하면 되지. 너 지금도 충분히 바보 같아.

  하린과 시우, 마주 보며 씩 웃는다. 암전.

12장

  시우의 집이다. 미경이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시우, 밖에서 들어온다. 미경이 시우를 보고 일어난다.

미경    아이고, 우리 아들 왔어?

  시우가 미경을 보다가 멈춘다.

미경    오늘 엄마 가지 말 걸 그랬지? 일하는 아들 모습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어. 미안해.

사이

시우    엄마.
미경    응?

  시우, 미경을 안는다.

시우    사랑해요.

  미경,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시우를 같이 안은 채 등을 두들겨 준다.

미경    그래그래. 엄마도 많이 사랑해.

  시우가 어색하게 포옹을 푼다. 부끄러움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시우에게 미경이 걱정스레 묻는다. 

미경    엄마 가고 나서 무슨 일 있었어?
시우    일은 무슨. 엄마한테 사랑한다고도 못하나.

  시우, 여전히 미경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방으로 들어간다. 미경, 잠깐 웃은 뒤 시우를 따라 같이 방으로 들어간다.

미경    그럼 앞으로 매일 사랑한다고 해주는 거지?
시우    아우, 알았으니까 들어오지 마!

암전.

13장

  서비스 센터다. 시우가 자기 자리에 앉아 책상을 정리하고 나서 주머니에서 전달기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민호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손에 서류를 들고 서비스 센터 안쪽에서 걸어 나온다. 시우 민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90도로 일어난다.

시우    안녕하십니까, 대리님!
민호    왜 하필 오늘따라 왜 활기차고 난리야.
시우    네?
민호    이거 봐봐.

  민호가 시우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민호    어제 정전 건 관련된 건데, 네가 봐 드렸던 그 손님한테 본사에서 설문조사 링크 보낸다고 하더라. 내가 어떻게든 내 이름으로 돌리려고 했는데 기록이 남아서 안 된다네. 어떡하냐, 너 저번 건에 이거까지 인사평가 들어가면 큰일 날 텐데.
시우    괜찮습니다, 대리님!

  민호가 시우를 멍하니 쳐다보며 말한다.

민호    뭐야. 너 왜 그래, 이시우?

  시우가 미소를 지으며 전달기를 민호에게 건넨다.

민호    어어? 
시우    이젠 저한테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민호    너 퇴사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나 신고하려 그러지?

  시우는 말없이 미소 짓고, 기계음이 들린다.

E    1번 손님.
민호    야, 시우야 생각 잘해라 응?

  민호가 시우 쪽을 쳐다보며 센터 안쪽으로 들어가고, 시우는 책상에 정자세로 앉는다. 의자 끄는 소리 들린다.

시우    사랑합니다, 고객님.

암전. 끝.

  |드라마 부문 심사평

  2023학년도 숭실문화상의 드라마 부문에는 다섯 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이 중 세 편의 작품이 당선 후보로 올랐다. 김민지(문예창작전공)의 <후라이드 닭 다리>는 아버지가 오랜 병고 끝에 많은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에 가족 구성원이 갈등하고 분열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간병인이던 연하의 남자와 사귀는 문제를 두고, 직장 다니는 큰딸과 고3 막내아들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지지하고, 아버지와 가장 친밀했던 둘째 딸은 어머니의 연애에 배신감을 느끼며 갈등한다. 각각의 이해관계가 명확해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나 결말에 이르러 그로테스크한 톤으로 스타일을 전환하는데, 이 부분의 설득력이 약해 아쉬웠다.

  김서연(문예창작전공)의 <문제를 알려줘>와 박창수(문예창작전공)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점에서 돋보였다. <문제를 알려줘>는 성적을 위해 어떤 방법이든 개의치 않는 세진과 떳떳하지 못한 심부름으로 돈을 버는 승주가 시험 문제를 거래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이들의 일탈 뒤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가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겉으로 드러난 사건에 초점을 두기보다 자신들에게서 발견한 아버지들의 싫은 점들을 극복하는 두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에 있다. 고등학교 때에 두 주인공의 성적 차이가 무척 컸음에도 몇 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장소가 같은 대학이라는 것은 인물들의 드러나지 않은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부당한 일도 주저하지 않은 아버지에게 세진이 반항했으리라는 것과 승주가 부당한 돈벌이 보다 공부에 열중하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에 머문다는 점은 다소 지루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서비스센터의 직원들의 감정 노동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말이 오가든 서로의 감정에 상처 주지 않으면서 듣기 좋게 변환해 주는 ‘전달기’가 있다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였다. 그러나 전달기 사용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비교적 단순하고 결말이 쉽게 예측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서비스 센터에 근무하는 시우는 엄마나 여자친구가 자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랑해”라는 말에 인색하다. 직장에서 영혼 없이 매번 반복하는 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오래전 기업 광고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흔해 빠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그로 인해 진심을 담아 나누어야 할 “사랑해”라는 말이 더 이상 가슴을 뜨겁게 달구지 못하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랑한다는 말의 본래 그대로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 해법을 독자 스스로 찾도록 성찰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당선작으로, 내면의 성장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 〈문제를 알려줘〉를 가작으로 선정한다.

백로라 교수(문예창작전공)
박연숙 교수(베어드교양대학)
 

  |드라마 당선 수상소감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사랑이라는 말이 가까운 사람과의 마음 표현보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된 사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상황들을 주인공과 연결 짓는 매개체로 사용자의 진심을 포장하는 기기인 ‘전달기’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쓰면서도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전달기’의 도움을 얼마나 받고 있나’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살면서 많은 복을 받은 만큼 감사해야 할 분이 많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친척분들과 외조부모님,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묵묵하게 믿어준 가족들, 숭실대학교에서의 처음을 함께 보낸 수학과 교수님들과 학우분들, 많이 부족한 저를 받아주신 문예창작학부 교수님들과 학우분들, 그리고 제게 인연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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