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베르헤르 감독
영화 <로봇 드림>은 무성 영화 형식의 2D 애니메이션이다. 정교함을 넘어 실사화와 구분이 힘들어진 컴퓨터 그래픽스의 진보 가운데, 영화 <로봇 드림>은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본질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3D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관객들 앞에 등장한 납작한 깡통 로봇과 촌스럽게 생긴 강아지, 그리고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속 적막은 처음에는 당혹스러움으로 영화의 말미에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로 다가온다. 단순한 선과 비언어적 표현들이 만나 수많은 감정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의 본질에 집중하며 표현하고 있다.
1980년대 뉴욕. 1인 가구인 ‘도그’는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고 광고 속 로봇을 주문한다. 부품을 맞춰 완성한 순간부터 로봇과 도그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혼자였던 도그의 시간이 로봇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며 도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 그러나 해변가 유원지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중 로봇은 몸이 마비된다. 도그가 로봇을 옮겨오고자 고민하는 사이 해수욕장은 폐장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고독한 시간이 반복된다. 동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 사실 영화 <로봇 드림>은 지극히 감정적인, 관계 속 변화를 다루고 있다. 도그와 로봇은 다른 공간에 남겨져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 번의 재회를 하지만, 이는 곧 환상의 무의식이자 한 편의 꿈일 뿐, 현실에서 그들은 혼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도그와 로봇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토록 바라던 재회의 순간이 왔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로봇의 모습에서 그리움이 변질된 것이 아닌 그저 흐르는 시간 속, 새로운 만남이 새로운 일상을 선물해 줬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관계의 실패라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일 뿐, 또 다른 만남이 주는 해피엔딩 또한 인생의 연속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를 2D 애니메이션이라는 경이로운 발상으로 연출한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위로는 그렇기에 백 마디 대사보다 따듯한 위로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