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대생 살인사건’이라고 알려진 교제 살인 및 교제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폭력은 물리적 피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다. 더욱이 가장 믿고 안전해야 할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살인은 피해자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안전이별’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갈수록 잔혹해지는 범죄, 막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교제 살인과 교제 폭력에 대해 알아보자.

  이별 통보했지만, 결국 죽음으로 
  지난 6일(월) 서초구의 한 건물에서 남성 최 씨가 이별을 통보한 자신의 연인 A 씨를 향해 흉기를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 씨는 범행 2시간 전 경기도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후 피해자를 범행 장소로 불러내 살해했다. 최 씨는 범행 직후 옥상 난간에 서 있다가 투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출됐다. 숨진 피해자 A 씨가 옥상에 약을 두고 왔다는 최 씨의 진술에 경찰이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최 씨가 연인인 A 씨를 살해한 뒤 투신하려던 것으로 보고 최 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지난 3월 화성시에선 20대 남성 김레아 씨가 자신을 찾아온 여자친구 B 씨와 그의 모친에게 흉기를 휘둘러 B 씨가 사망하고 모친은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었다. 피해자들은 김 씨와의 연인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함께 김 씨를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평소 여자친구와 다툴 때 폭행을 자주 했으며 이별을 통보할 시 “너도 죽고 나도 죽겠다” 등의 집착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5일(금) 수원지방검찰청은 구속 심사에 앞서 △범행의 잔인성과 중대성 △인적·물적 증거의 충분한 확보 △교제 폭력 범죄 예방 효과 등을 고려해 김 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김 씨는 법원에 신상정보 공개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검찰이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은 지난 1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이 시행된 이후 첫 사례다.

  지난달 1일(월) 거제에서 20대 남성 김 씨가 자신의 전 여자친구 C 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C 씨가 전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씨는  C 씨의 집에 무단침입해 C 씨의 머리와 얼굴 등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졸랐다. C 씨는 폭행으로 전치 6주의 진단을 받고 거제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지난달 10일(수) 사망했다. 이에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지난달 11일(목) 김 씨를 긴급 체포했지만, 검찰이 가해자에 대한 체포를 불승인하며 약 8시간 만에 풀려났다. 또 김 씨가 풀려난 이튿날 12일(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망원인이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1차 부검 소견을 밝혔다. 피해자의 사망이 김 씨의 폭행과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에 김 씨는 구속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족 측은 김 씨가 평소 폭행과 스토킹이 있었다며 김 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에서 “김 씨의 폭행과 사망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수사하겠다”고 전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피해자의 조직 검사 등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하면서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C 씨와 교제하는 동안 C 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와 C 씨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약 3년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사이로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는 결별 상태였다. 지난 2022년부터 C 씨의 사망 시까지 경찰에 접수된 데이트 폭력 관련 신고는 12건으로 집계됐다. 그 중 김 씨의 폭행으로 C 씨에게 스마트워치가 지급된 사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신고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 종결됐다.

  교제 살인은 교제 폭력에서부터
  교제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성적 △신체적 폭력을 말한다. 데이트 관계란 좁게는 데이트나 연애를 목적으로 만나고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 관계를 뜻한다. 넓게는 △맞선 △소개팅 △채팅 등을 통해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나는 관계까지 포괄한다. 또한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인 ‘썸 타는 관계’까지도 데이트 관계에 포함된다.

  교제 폭력은 단순 성적,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감시하거나 통제하려는 행위도 포함된다. 교제 폭력의 경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위협에 지속해서 노출되기 쉽고, 신고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교제 폭력은 데이트 폭력이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교제’에 비해 ‘데이트’라는 단어가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해 가볍게 느껴질 수 있어 최근에는 교제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교제 폭력이나 교제 살인은 대체로 두 사람만이 아는 익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 교제 살인의 경우 가해자가 해당 살인 이전에 폭력 혹은 위협을 행사했거나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교제 살인은 교제 폭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교제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 폭력 신고 건수는 7만 7,150건으로 지난 2020년 4만 9,225건 대비 약 57% 증가했다. 2024년 3월까지 신고된 교제 폭력 건수는 1만 9,098건으로 해당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신고 건수는 8만 건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3월 검찰청은 “교제 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해 재범률이 높고 폭력의 정도도 중하다”며 “2022년 검거 인원이 2014년과 비교해 92.4%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 3,939명으로 지난 2020년 8,951명 대비 55.7% 증가했다. 범죄 유형으로는 △폭행·상해: 9,448명(67.8%) △체포·감금·협박: 1,258명(9%) △성폭력: 453명(3.2%) 순이다.

  여성 상담 기관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관계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138명으로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311명이다. 2.7일당 1명의 여성이 아는 남성에게 살해된 것이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할 시 매일 1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협박을 받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살인미수를 포함했을 때, 지난 15년간 데이트 관계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 수는 3,058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교제 살인 원인에 대해 “피해자가 자신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가해자의 잘못된 통념과 가해자의 행태를 용인하는 사회 구조적 성차별”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성명서를 통해 “최근 보도된 강남 교제 살인, 거제 교제 살인 사건은 특수한 개인, 악마화된 개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이 아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성 폭력 사건 중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교제 폭력 가해자 특성은?
  교제 폭력 가해자의 심리적 특성은 △경계선 성격장애 △낮은 자존감 △어릴적 불안 애착 형성 △부모 간 폭력 행동 목격 경험 △낮은 정서조절능력 수준 등이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정서와 정체성의 △불안정성 △충동성 △자해 행동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신 병리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핵심증상에는 정서조절의 어려움이 있다.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교제 폭력
  지난 2018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교제 폭력 피해자 중 절반이 폭력 경험 상대와 결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8년 1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교제 폭력 피해를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60세 이하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88.5%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교제 폭력의 피해자 중 46.4%는 폭력 상대방과 결혼했고 그 중 17.4%는 가정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2018년 발표된 ‘가정폭력 노출경험과 파트너 통제가 데이트 폭력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폭력을 모방할 가능성이 크며 이런 현상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밝혀졌다. 해당 사실을 통해 교제 폭력과 가정폭력은 대물림 현상이라고 분석된다.

  한국의 교제 폭력 인식은 
  지난 2023년 발표된 한국리서치의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6%가 우리사회의 젠더폭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심각하다고 답한 양측의 응답자는 여성 82%, 남성 69%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어 직·간접적으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해 본 적 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24%가 ‘있다’고 답했다. 데이트 폭력 신고율과 실제 피해율 간 차이에 대해 질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실제 피해율이 신고율 보다 높을 것이라고 답했다. 신고율 대비 높은 피해율의 이유에 대해 물어봤을 땐 29%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답했으며 26%가 ‘2차 가해가 두려워서’를 꼽았다.

  교제 폭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교제 폭력 즉,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ntimate Partne Violence)’에 대한 법·제도적 대응은 사각지대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친밀 관계 폭력을 규율하는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의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사실혼을 포함한 배우자나 친족 등 가정구성원의 폭력이 규율 대상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 등의 스토킹 행위가 있었는지를 따져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한다. 따라서 가정폭력에 속하지 않거나 스토킹 피해 입증이 어려운 교제 폭력의 경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위 사례 중 거제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그 예시다. 피해자는 지난 2023년 6월부터 사건 당일인 지난달 1일까지 모두 8차례의 폭행 피해가 있었다며 112에 신고했다. 약 1년간 지속적인 폭력이 발생했으나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에 규정된 피해 예방조치는 없었다.

  교제 폭력과 관련된 법안은 그동안 꾸준히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진 못했다.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권인순, 박광온 위원은 ‘가정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가정폭력방지법 적용 범위를 교제 폭력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도 지난해 7월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국회 회기가 종료됨에 따라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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