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유일한 북서향 방에서 눈을 떴다. 야트막하게 난 창밖은 아직 새벽, 하늘은 수영장 안에 고여 있는 물처럼 창백했다. 창문은 한 뼘 정도 넓이로 열려 있었고, 그 사이로 한기가 빠른 속도로 쏟아졌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았다. 나는 얼마 전 바꾼 푹신한 이불 속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찬 기운이 느껴졌다. 몇십 년 만에 찾아온 가을의 한파라더니. 가을도 없이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저번 주만 해도 반소매 셔츠를 입었던 것 같은데, 이젠 전기장판이 그리운 날씨였다.
내 방이 유독 추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었다. 이 방에는 일 년 365일 내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정 남형의 집이라도 구석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하필이면 그 구석이 내 방이었다. 나는 느린 속도로 눈을 깜빡였다. 세상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창문과 천장 사이의 좁은 틈에는 전에 살던 사람이 박았다가 뺀 못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커튼 봉을 달기 위해 못을 박았던 것인지, 동일한 간격으로 동그란 균열이 남겨져 있었다. 해도 들지 않는 방에 왜 커튼을 달았던 것일까. 다시 채워질 수도 없는 공백이 유난하게 다가왔다.
카톡. 누군가 보낸 메시지에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주위를 뒤적이며 잠을 청하는 새에 어디론가로 사라진 휴대폰을 찾았다. 오전 6시 3분, 메시지를 보내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다. 야밤과 새벽에 연락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평소라면 무음 모드로 바꾸고 말았겠지만, 오늘만큼은 새삼스레 메신저 앱에 접속하고 싶었다.
노란색 화면이 깜빡이다 사라졌다. 메신저의 초기 화면과 함께 오늘의 생일자가 상단에 떴다. 나는 그곳에서 당신을 발견했다. 무척 오랜만이었다. 다시 마주할 때면 언제나 추억에 잠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순식간에 회상에 접어들고, 가슴이 저릿해져 나는 핸드폰을 배게 아래로 집어넣었다. 도무지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동시에 빛이 사라졌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세게 눈을 감았다. 아득한 곳에서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올라온 동그란 기포가 수면에서 부들거리다 터졌다. 나는 그 소리를 리듬 삼아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
열여덟의 여름, 나는 빠른 속도로 불행해졌다. 이게 내 삶의 고난인지 감각할 수도 없는 가속도였다. 나의 생일이 끼어 있는 여름 방학 전후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낙동강 오리알 같은 사람이 되었다. 다소 뻔하고 지루한 이 말이 나의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제부터 사소한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쓸 틈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어디선가 이 문장은 전형적인 자기소개서의 한 줄이라고 비판받으며 소위 밈으로 사용되고는 했다. 나는 이 문장이 내가 살아온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나의 불행이 일종의 ‘밈’이 되어가는 이 현상에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흔하다는 것이 아닌가. 흔하다는 건 주변 어디서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뻔하다는 말은 내게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슬픔은 늘 고유한데 어째서 이것이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나를 저격한 웃음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집중 사격을 당한 사람처럼 상처받았다.
나의 세계는 십 년이 넘는 시절 내내 깨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 금이 갔다가, 애써 붙여놓은 자리에는 늘 바람이 통했다. 내게 생긴 미세한 균열은 영영 사라질 틈이 없었다. 폭력은 견딘다고 무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게 그런 일들은 자주, 잊을 때면 다시 발생하는 사건 같은 것이었다.
1학기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벼락치기를 즐겨하던 나로서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밀린 잠을 몰아 자고 있었다. 잠에서 깬 것은 거실에서부터 들리는 소음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떴고,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큰 소리에 쉽게 긴장하는 편이었기에.
그날은 왜 유독 참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방 안에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은 맞서는 것도, 말리는 것도 아니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도망치기를 택했다. 나는 불도 켜지 않고 그저 손을 더듬거리며 휴대폰과 지갑만을 챙겼다. 이 와중에도 지갑을 챙길 정신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마냥 우스웠다.
방에서 튀어나와 소란의 방향을 쳐다보지도 않고 신발을 신자, 뒤통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신발끈을 묶는 손이 다급해졌다. 홀연히 집을 떠나는 내 뒤통수로 중년 남성의 고함이 들러붙었으나 나는 끝까지 모른 척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 나왔지만 언제부턴가 턱 끝에는 옅은 울음이 고여 있었다. 혹시나 쫓아올까 봐, 그리고 내 팔을 낚아챌까 봐, 기어코 목덜미를 잡히고 말까 봐, 나는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다리는 자꾸만 후들거렸다. 나는 난간을 세게 잡았다. 손에서는 땀이 났다. 난간을 잡은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무사히 아파트 1층 현관에 도착하고 나서는 정처 없이 걸었다.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나는 새벽 동안 작은 도시 안을 헤맸다.
그 이후로부터, 나는 생존자였으며 이 가정의 목격자, 그리고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새벽의 소음을 견디지 못한 이웃의 신고로 나는 열여덟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조서라는 것을 써보았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라. 나는 떨리고 있는 손을 반대 손으로 잡아 토닥거렸다. 육하원칙에 맞춰서 쓰시면 됩니다. 형광색 경찰 조끼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얼음같이 단단하고 차가운 철제 책상 앞에 앉아서 내 앞에 펼쳐진 백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모나미 볼펜을 하염없이 딸깍거리기만 했다. 여섯 시간 만에 돌아온 집은 엉망이었고, 그곳에는 상처받은 사람들과 망가진 집만이 남아 있었다.
약 두 시간 만에 결국 내가 완성한 조서는 오하원칙에 기인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까지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에 대한 해답은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학교에 가야 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 위해서였다. 남들의 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나는 그 언제보다도 학교에 열심히 다녔다. 그 무렵의 학교는 막 여름 방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여름의 가운데로 돌진하고 있었다. 나를 뺀 모든 학생은 방학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었다.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나의 절친과 방학 특강을 등록했다는 또 다른 절친 사이에서도 나는 그렇구나,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일축했다. 내게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느껴졌지만, 그것으로 전부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붕 떠 있는 여름 방학 직전의 분위기에서 나 홀로 심해였다. 함께 있음에도 격리된 기분을 느끼며, 어떠한 농담에도 쉽게 웃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싸늘한 학교의 복도에 가만히 서서도 나는 땀을 흘렸다. 어디에 가도 식은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손에도 자꾸만 땀이 차 한 시간에 두세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내 사정을 알지 못하는 애들은 내게 드디어 결벽증이 생겼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삐질삐질 미소를 지었다.
*
육을 처음 만난 것은 개수대 앞이었다.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도 운동장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개수대가 남녀 화장실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개수대 앞에는 여느 학교에나 있을 커다란 전신 거울이 하나 있었다. 육은 거울을 보며 제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하복에는 접힌 선이 남아 있었다. 옆 반에 전학 왔다는 애인가 보다, 생각하며 나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거울에 비친 그 애를 몰래 봤다. 상고로 올려 친 뒷머리가 유독 둥글어 보였다. 한 번쯤은 결 반대 방향으로 그 뒷머리를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반질거릴 정도로 새까만 머리와 피부색이 대비돼서 왠지 더욱 창백해 보였다.
그때 육이 특별해 보인 건 뜨거운 여름 햇살 때문이었다. 학교의 복도는 언제나 서늘했기 때문에 줄곧 창문을 열어두고는 했고, 타이밍 좋게 육이 웃을 때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그 애 얼굴 위로 쏟아졌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는 장마였던 것 같은데. 내 생일 무렵이 되면 늘 장마나 홍수, 태풍이 오고는 했기에 나는 이 계절에 아주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 비가 멎으면서 해가 스며들었다. 옹골차게 이 여름을 머금은 해는 눈부셨다.
그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자꾸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육은 눈에 잘 띄는 아이였다. 유난히 새것 티가 많이 나는 하복은 늘 단추를 풀어 입었고, 환하게 웃는 소리가 늘 잘 들려왔다. 나는 항상 기대하는 사람처럼 육이 내 시선 속에 들어오길 기다렸고, 마침내 그 애가 보일 때면 안도했다. 집에서는 늘상 불안한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다가 학교에서 육을 볼 때면 웃음이 나왔다.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 같아 웃음이 나면 왼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육을 다시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필연이 이어준 인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는 어느 주말이었고,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매년 필요한 최소한의 봉사 시간이 존재했다. 도저히 주말에 집을 비울 기분이 아니었음에도, 내게 중요한 것은 너무나 많았다. 무사히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의 한복판에서 나 홀로 혼란에 빠진 것 같았고, 두 달 전에 신청한 봉사활동은 꾸역꾸역 가야만 했다.
시청 광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만 진행되는 축제에 잔뜩 몰린 인파를 보자 또 우울함이 밀려왔다.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지 생글생글 웃으며 들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미울 지경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타인을 불편하게 여기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자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딱 하루인데 비가 오겠네, 중얼거리며 우스운 스태프용 조끼를 입고 봉사자 체크 리스트를 확인했다. 하얀 것이 눈앞에 아른거려 고개를 들자, 육이 스태프용 조끼를 입고 명찰을 차고 있었다.
어.
그 한마디로 나는 우리의 관계에 변함이 생길 것이라고 직감했다. 육은 작은 소리에도 긴밀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육을 마주하니 목덜미에 열감이 느껴졌다. 저희 같은 학교 다니는 것 같아요. 고개를 살짝 젖히고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육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육은 반갑다는 듯 활짝 웃었다. 나는 그때 육의 보조개가 참 예쁘게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변명하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덧붙였다. 제 친구랑……. 같은 반이에요……. 육은 한 번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혼자 일방적으로 그 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조금 민망하게 느껴졌다.
짧은 시간 안에 같은 학교, 옆 반이라는 정보와 서로의 번호까지 주고받은 후 우리는 흩어졌다. 각각 부스 담당, 순찰 담당으로 나뉘어 축제 내내 육을 볼 일이 없었다. 나는 괜히 주변을 힐끔거리며 육이 내 시야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번번이 고개를 들 때마다 보이는 건 인파뿐이었고, 나는 자꾸만 실망했다. 막 오후가 시작되었을 때, 꾸물대던 하늘에서는 드디어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인파는 빠르게 사라졌다. 세상이 뿌옇게 보일 정도의 폭우에 나는 천막 안에서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천막이 기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우비를 뒤집어쓴 육이 들어왔다. 육의 앞머리는 물에 젖어 있었다. 육은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우비를 내게 건네고, 천막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무겁게 천막을 짓누르던 고인 물이 폭포처럼 가속도를 받아 떨어졌다. 기울던 천막은 빠르게 똑바로 섰다.
나는 우비를 꿰어 입고 저 앞으로 빠르게 앞서나가는 육을 쫓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들판 전체적으로 들어찬 모든 천막에 들어가 물을 빼는 작업을 반복해서 했다. 비는 끊임없이 내렸고, 물은 자꾸만 고여서 그 일을 몇 십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이윽고 팔이 떨릴 정도로 힘이 빠졌고, 혼자서도 충분히 해내던 일을 두 사람이 함께해야 했다.
비가 멎자 그제야 육과 나는 앉을 수 있었다. 한차례의 폭우로 충분했는지, 하늘은 눈부시게 선명해졌다. 나는 빗물이 고인 의자에 늘어져 앉아 새파란 하늘을 쳐다봤다. 팔이 욱신거렸다. 빠졌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들판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사소한 것에 눈을 찡그리는 버릇은 그 남자를 닮은 게 분명하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어쩔 수가 없어. 나를 두려운 사람처럼 바라보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문은 목울대에서부터 막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엄마를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는 나의 존재에 괜스레 괴로움을 느낄까 봐서.
우리의 후반전은 늘 코를 고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울 때, 커다란 울림이 집안을 채울 때에야 시작됐다. 나는 그제야 까치발을 들고 안방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 방의 벽면과 거실의 소파는 얇은 가벽을 두고 나누어져 있어서, 남자의 소리가 들리면 어차피 잠들 수도 없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더는 둘이 눕지 않는 퀸사이즈 침대에 시체처럼 반듯이 누워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고개만 돌렸다. 나는 엄마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엄마가 무언가 말한 것 같기는 한데, 유난히 창백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닫은 것만은 확실한데,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거실에서 들리는 남자의 잠꼬대가 배경음처럼 깔리고, 엄마는 입을 뻐끔댔다. 나는 그런 새벽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화가 나서 발을 구르고 싶고, 손에 집히는 모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 멀겋고 공허한 눈빛을 피하고 싶었다. 무서웠지. 나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침대에 기대며 조용히 물었다. 엄마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움직임 없이 다시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엄마의 손가락이 흔들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질문은 금세 흐려졌다. 어쩐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엄마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감각됐다.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도 괴로워야만 하는지. 나는 차마 이유를 알 수 없어 엄마의 냄새만 나는 이불에 한참 동안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나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엄마는 느닷없이 어항을 들고 집에 왔다. 정신없이 이사를 끝마치고, 이사 온 집을 정리하자마자. 작고 네모난 어항 속에는 조잡한 장식품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산소 투과용 돌이 가장 아래, 누가 봐도 플라스틱 가짜 이파리,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당황스러운 스폰지밥 조각상. 엄마는 그것들을 모두 거실 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불만을 터뜨렸다. 좁아 빠진 집구석에 갑자기 웬 어항이야. 그런데도 다만, 엄마는 조심스럽게 어항에 물을 받고, 어떠한 약품들을 뿌리고 물고기를 풀어줄 뿐이었다.
그날 사 온 구피들은 채 금세 떼죽음을 맞이했다.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집은 누전이 되어버렸다. 새벽 두 시, 난데없이 정전되었다. 삼십 분이 지나고, 서서히 집안에 더운 공기가 침범할 즈음에도 전기는 다시 들어올 생각이 없었고, 그때서야 이건 누전이라는 걸 알았다. 전기 회사에 전화했지만 때는 새벽이었기에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사건은 발생했다. 차가워야 하는 것들이 뜨거워진 것이다. 당황해서 냉장고를 막 여닫는 순간에 냉기가 빠르게 빠져나가 버렸고, 냉동실은 가장 먼저 녹기 시작했다. 혼수로 가져와 사람 나이로 스물이 막 넘었던 냉장고의 노화가 누전의 주된 이유였다. 엄마와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그 새벽을 견뎠다. 냉동실의 성에가 녹아 바닥으로 물이 줄줄 흘렀다. 어둠에서 겨우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한 채로 엄마는 물을 닦았다. 아무리 닦아도 냉장고에는 얼음이 가득했고, 그랬기 때문에 일은 끝이 없었다.
전력 회사에서 사람이 다녀간 이후 엄마는 냉장고의 코드를 뺐다. 냉장고와 냉동실에 있던 거의 모든 것들은 임시방편으로 마찬가지로 오래된 김치냉장고에 들어갔다. 나는 겨우 찬 물을 찾기 위해서 김치냉장고를 뒤적거리며 매번 신경질을 냈다. 그러니까 진작에 바꾸지, 한여름에 이게 뭐야.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어항을 청소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흐린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어항에서 돌아다니던 구피들을 조심스레 다른 통에 옮겼다. 그리곤 조잡한 장식품을 모두 빼내고, 물을 버렸다. 집에는 충분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은 화장실이 아닌 부엌에서 이루어졌다.
엄마는 싱크대에 서서 어항을 닦았다. 벽면마다 낀 물때를 비벼서 닦고, 그 안의 부속품들을 정성 들여 닦았다. 모든 물품을 시간을 들여 닦아 어항을 청소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엄마가 깨끗해진 어항을 뿌듯한 표정으로 들고 물을 채울 때 모든 게 끝난 듯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고장 난 냉장고에서 약품 두 통을 꺼내왔다. 이건 원래 팔 때도 실온에 보관되어 있었으니까 괜찮겠지? 엄마가 내게 물었다. 나는 글쎄, 라고 대답했지만, 엄마는 약품을 부었다.
그리고 물고기는 이틀에 걸쳐 모두 죽었다. 엄마는 그 후 의기소침해졌다. 마지막 남은 구피를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 죽는데 왜 계속 키우는 거야. 징그러워. 진짜. 나는 중얼거렸다. 엄마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하얗고 얇은 엄마의 피부 위로 파란 핏줄이 불거졌다. 이것도 생명 경시랑 다를 게 없지. 죽을 거 뻔히 알면서 데려오는 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얘기했다.
평소에도 누렇게 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더 노랗게 보였다. 엄마는 힘없이 뜬 눈을 깜빡거렸다. 오늘따라 엄마의 눈은 유난히 물고기 같았다. 동그란 눈이 물기 없이 비쩍 말라 있었다. 엄마의 눈가가 일시간에 붉어졌다. 눈가가 붉어지고, 누런 눈이 붉게 물들고 천천히 물기가 고였다. 목욕탕의 벽면에서 물이 줄줄 새는 것처럼, 엄마의 눈에선 그렇게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지도 않았다. 잘 묶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단발머리를 애써 묶으려고 했다.
아직 내다 버리지 않은 종량제봉투 위로 두 개의 빈 병이 보였다. 나는 그 병을 집어 엄마의 앞에 내려놓았다. 엄마가 물을 갈아서 다 죽은 건데. 약은 이미 상해버렸는데 엄마가 그냥 이 약을 어항에 넣어서. 사실 엄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소리를 치는데도 엄마는 멍하게 멈춰 있었다. 눈물은 어느새 그쳤다. 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이마를 짚으며 좁고 좁은 집을 돌아다녔다. 거실과 부엌이 붙어 있는 작은 집.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갑갑한 작은 집.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쫓겨나듯 밀려와 버린 이곳. 나는 이 모든 게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
학교의 원형극장은 축제 때를 제외하고는 늘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주로 육과 함께 그곳에 앉아 있었다. 계단식 형태로 층층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의 원형극장은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위로는 불투명한 창이 나 있었다. 창에는 언제고 현수막이 덮여 있어서 지하는 한층 더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습실이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빼고서는 지하에는 사람 자체가 잘 오지 않았다. 육과 단둘이 계단에 나란히 앉아 비어 있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땅을 파고 켜켜이 묻어둔 비밀이 씨앗이 새싹을 틔우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학교는 어수선했다. 그 소란을 핑계 삼아 육과 나는 십팔 년의 짧은 삶 속에 있던 일들을 파헤쳤다. 대개는 말하는 쪽은 나였고, 육은 대답을 해주거나 맞장구를 쳐줬다. 순식간에 찾아와버린 삶의 굴곡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때 옆에 있어 준 것은 육이었다.
나는 육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가 좋았다. 육의 향수 냄새는 그저 드럭 스토어에 입점해 있는 값싼 브랜드의 섬유 탈취제일 뿐이었는데도, 그 애의 살냄새와 섞이면 특별하게 느껴졌다. 조심성이 유난히 없고, 삶을 살아가는데 미숙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육이 온몸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는 것도 도무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밴드를 잔뜩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동해서 후시딘을 사다 줄 정도였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동정인가. 어김없이 약국에서 육에게 사다 줄 것이 없는지 둘러보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내게 동정이란 굉장히 어려운 감각이었다. 내가 아는 육은 전학 후의 학교생활에 난처함을 느끼는 열여덟의 학생이었다. 이 년만 참으면 성인이 되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해 묘하게 억눌려 있다는 점이 우리의 공통 불만 사항이었다.
어딘가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묘하게 기름처럼 떠 있는 상태를 우리는 단지 허공에 있다, 라고 표현했다. 나도 육과 함께 있지 않을 때면 허공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 있었고,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기도 힘들 때였다. 나는 육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그간 살아온 것이 정말 다른 사람의 삶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처음 육을 보았을 때는 눈부시다고 생각했던 미소가 어느 순간부터 내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육과 공유한 이야기가 속에서 뒤섞여서 어느 것이 나의 경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육과 내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서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순전한 욕심이었다.
*
엄마는 나무젓가락을 든 채로 어항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기껏해야 13인치 노트북 화면 크기나 될 법한 작은 어항의 수면 위로 구피 한 마리가 배를 까뒤집은 채 둥둥 떠다녔다. 나는 저 멀리서 구피의 사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이내 결단한 사람처럼 나무젓가락의 포장을 뜯고, 붙어 있던 두 젓가락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딱, 하는 작고 둔탁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엄마는 손을 내밀기 전 작게 한숨을 뱉었다. 흰 배를 하늘로 뒤집은 구피는 젓가락에 꼬리를 잡혀 허공으로 이끌려 나왔다. 죽은 뒤에야 공중을 머금어본 구피는 저항 없이 머금었던 물을 뱉어냈다. 엄마가 젓가락으로 구피를 집어 변기까지 가져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구피는 바닥에 마지막으로 삶의 흔적을 남겼다. 옅은 색의 나무 마루 위로 구피가 떨어트린 물방울이 번져갔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잔뜩 찡그렸던 눈을 뜨고,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앉았다. 엄마는 젓가락을 무기처럼 꼿꼿이 들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엄마는 젖은 나무젓가락을 부엌의 쓰레기통에 욱여넣었다. 쓰레기통 속 비닐이 마구잡이로 사부작대는 소리를 냈다. 엄마가 퐁퐁으로 손을 닦기 시작했다. 거실까지 상큼하고 달짝지근한 퐁퐁 냄새가 슬그머니 흘러왔다.
얘네는……. 남들 집은 다 새끼를 많이 낳아서 문제라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다들 죽기만 해. 엄마의 말을 들을 때면 간혹 대답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때가 찾아오곤 했다.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내게 말을 거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무수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에 늘 흥미를 느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나를, 동생을 키울 때가 있었고 언젠가는 식물을 키웠고, 아주 잠깐 개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번번하게 실패를 맛보았다. 야심 차게 들여온 부레옥잠은 노랗게 말라버렸고, 그렇게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이나 다육이도 한 계절을 못 견디고 죽어 나갔다. 그에 반해 나는 엄마가 무언가를 키우는 것에 도무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엄마가 오늘 호야에 꽃이 피었다며 기쁘게 말할 때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 신발 끈을 묶으며 대충 대답이나 해줄 뿐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조금은 섭섭해하는 티를 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는 육을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우리가 다시 만난 곳은 다름 아닌 홍대의 어느 클럽에서였다.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커다란 음악 소리 사이에서도 나는 육을 알아봤다. 그때와 변함없는 하얗고 말간 웃음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스테이지 위와 아래에서, 우리의 거리는 딱 그 정도였다. 육을 다시 바라보고 있자니 고등학교 시절 그 애가 지나다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늘상 고개를 두리번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울컥대는 느낌이 났다. 아래에서 육을 올려다보니 사실 그 시절에는 이 애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추억에도 온점이 필요하다는 결심이 들었다.
육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게 될까 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거의 새벽이 끝나가고 있어 클럽에도 사람이 많이 빠진 참이었다. 언제나 난데없는 장소에서 마주치는 육과 나의 관계가 못내 신기했지만, 그뿐이었다. 어떻게 여기서 다 만나는구나. 번듯한 어른이 됐네. 그 짧은 순간에 우리가 마주치면 나누었을 얘기들을 떠올리자 괜스레 귓가가 뜨거워졌다.
우리는 아주 뜨뜻미지근한 관계로 멀어졌다. 열여덟의 여름이 지나니 삶의 전환기가 눈앞에 닥쳐 있었다. 종지부도 찍지 못한 채로 하염없이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졸업이 닥쳐 있었고, 그 이후로는 서로의 소식도 알지 못한 채 아주 먼 세계에 다다른 참이었다. 그래서인지 육을 떠올리면 언제나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자주 육에 대해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열여덟을 회상하면 여름과 육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클럽을 나서자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곧 첫차 시간이었다. 아직 해가 다 떠오르지 않아 세상에는 찬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아노락의 지퍼를 턱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지퍼를 잠그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밤 동안 클럽에서 배인 담배 냄새가 풍겼다. 아주 지독한 냄새였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인파가 가진 훈기가 돌았다. 교통카드를 찍고 플랫폼으로 내려가자 새벽을 이 거리에서 보낸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출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지하철은 문을 연 채 정차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몇 시간 만에 앉으니 피로가 밀려왔다. 무거웠던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려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해 거리를 빙 둘러 걸어왔다. 아무리 걸어 봐도, 한 번 물든 냄새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나는 옷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어쩌면, 아무리 세탁해도 이 냄새가 지지 않는다면 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출근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입었던 옷을 벗어서 베란다의 한편에 뭉쳐놓았다. 내게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도 맡지 못할 정도로 엄마는 바빠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아 엄마에게 긴 새벽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리고 육에 대한 얘기도.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의 내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육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엄마에게 그 애에 대해 얘기하자,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 애를 생각하면 항상 쓸쓸해졌다. 떠올리기만 해도 어느 계절이 회상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게 육은 그런 존재였다.
그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어?
엄마는 귀이개로 구피에게 밥을 주며 물었다.
그냥, 그냥. 나는 그냥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육을 보면 유독 아빠 생각이 났다. 육과 있으면 마냥 좋은 것 같았는데도,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 홀로 행복해진 것 같아서. 왜 불행과 행복이 나란히 오는지 이해가 안 되던 때였다. 불행과 양면이 그려진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어디로 갈 때마다 동전 뒤집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이쪽, 육을 만나면 저쪽으로 널뛰기하는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오늘 그 친구를 만났거든요. 잘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육에 대한 미련이 모두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한 시절을 모두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어 갑자기 나른해졌다. 그동안 어깨 위에 올려두었던 짐이 한순간에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사람이길 원했던 마음도, 그런 욕심에 매번 서운함을 느끼고 괜스레 더 멀어지려고 노력했던 마음도 이제는 전부 과거가 되어 있었다.
거실에는 해가 스며들어왔다. 거실은 탁 트인 구조로, 한 면이 전부 창이어서 해가 잘 들었다. 거실 왼쪽 구석에는 일본에서 사 온 고양이 모형이 까딱거리고 있었다. 햇볕을 받으면 움직이는 고양이 모형은 일정한 속도로 손을 움직였다. 나는 모형이 움직이는 속도대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창 아래로 넓게 트인 놀이터는 우리 집처럼 비어 있었다. 아직 새벽이니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집안에는 물방울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나는 여과기가 설치된 엄마의 어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는 구피가 열 마리도 넘게 헤엄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구피가 줄줄이 새끼를 낳은 덕분이었다. 눈곱보다도 작은 크기의 구피가 생명체라고 꾸물거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마음이 간질댔다. 엄마 출근하면 라디오 좀 켜줘. 엄마가 내게 말했다. 엄마는 집안이 적막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가 매 순간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던 것처럼.
나는 곧장 일어서서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 때문에 몇 번 정도 치직, 대는 소리를 내던 라디오는 곧 방송을 송출했다. 유난히 차분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아침의 집안을 채워갔다. 노래 한 곡 듣고 가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잔잔한 팝송이 흘렀다. 조용한 노랫소리에 모든 소음이 묻혀갔다. 여과기의 방울 소리도, 구피가 이따금 수면에서 뻐금거리는 소리도, 나의 숨소리도, 엄마의 콧노래도.
소설 부문 심사평
올해 숭실문화상 소설 부문에는 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여러 학과와 학년의 학생들이 참여 했다. 그만큼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 방식이 도드라진 동시에 다소 투박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청년들의 일상과 불안한 미래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재, 주제의 작품들이 투고되었지만 특히 성장담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여럿 있었다. 어느 한 시절과의 결별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는 서사 흐름이 많았다. 내용은 각기 달라도 오늘날 젊은 학생들의 치열한 고민과 희망의 산물임이 분명했다. 심사에 있어서는 우선, 단지 이야기가 아닌 ‘소설’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한 작품들에 주목했다. 또한, 주제가 잘 형상화되고 전달되는지 살펴보았다. 응모된 작품의 간략한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高興」은 부드럽고 쓸쓸한 온기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삽화들 사이의 비약이 있고, 중요한 제목(高興)의 의미도 소설 속에 녹아 해명되어야 할 것 같다. 「멸망 뒤 세계에서, 너와」는 지구 멸망 이후 생존자의 절망과 새로운 관계의 시작에 대한 소설이다. 차분하고 성실한 문장은 좋지만 소설 글쓰기에 필요한 요소들이 다소 미비한 점이 아쉬웠다. 「인연의 정원」은 몰락한 동아리방이 재탄생하고 완전히 문을 닫기까지의 좌충우돌이 그려져 있다. 제목에 부합하는 서사의 의미는 잘 전달되었지만 조금 더 문장이 정리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시간 죽이기」 최근 세태에 대한 묘사력이 두드러지는 소설인데, 대화가 다소 남용되는 것이 장단점 모두로 작용하고 있다. 주제 전달 방법에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낮 스토커」, 「우리 집에는 구피가 산다」 가 최종 논의된 작품이다.
가작인 박세준 학생의 「한낮 스토커」는 제목 그대로, 한낮 스토커를 자처하던 인물이 등장한다. 스토킹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확인하는 정체성이 강조된 소설이다. 가독성이 높고 사건을 유기적으로 엮어가는 힘이 좋았다. 하지만 처음의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며 결말이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스토킹, 프라이버시 침해 등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민감해진 사안을 지금 서사화할 때 더 고민해야 할 점도 있어 보였다. 다야마 가타이 소설「소녀병」이나 키에슬로프스키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과 같은 악취미(호기심, 관음)의 이야기가, 오늘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미학적, 윤리적 이유도 생각나게 했다.
당선작인 강연주 학생의 「우리 집에는 구피가 산다」는 가정 폭력의 생존자, 목격자의 이야기다. 동시에 폭력이 말살할 수 없는 어떤 끈질긴 삶의 의지, 사랑 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해와 피해 같은 다소 선명한 도식으로 수렴되기 쉬운 제재이지만, 애증의 관계들을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 그대로 묘사하고 있고, 독자를 바쁘게 채근하지 않으며 스며들게 한다. 서술자는 1인칭 ‘나’이지만 바깥으로 다양하게,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향해 뻗어나가는 서사와 감정의 흐름도 좋았다. 좁은 방의 ‘구피’라는 상징물이 다소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 상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서사적 설득력이 갖추어져 있다. 서사의 호흡을 조절하는 능숙함도 이 소설의 장점이었다. 특히 소설의 독자도 함께 숨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단락은 단지 기법적 능숙함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시선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수상자와 응모자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많은 학생들이 아름답고 날카로운 언어로 세상과 타자를 이해하는 문학에 헌신하고 관심을 두는 것은 문학적 동지로서 기쁜 일이다. 숭실문화상을 위해 애써주시는 숭대시보와 학교에도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년에도 보다 다양한 사회문제와 내면 풍경에 집중하는 참신한 소설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미정 교수(문예창작전공)
김태용 교수(문예창작전공)
소설 부문 수상소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자. 소설이 잘 쓰이지 않을 때면 저 자신을 다독이면서 이 말을 참 많이도 되뇐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무수한 일들도 겪었습니다.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고, 슬픈 마음에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폭설로 덮여버린 밤에서야 그 모든 날을 가만히 돌아보니 결국, 나쁜 순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졸업을 직전에 두고 기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문예창작전공에서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교수님들과 좋은 문학적 영향력을 주고받은 학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설을 쓰겠습니다.
강연주(문예창작‧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