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팬' 관계에 대한 고찰
- 플라톤의 '에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를 중심으로
1. 서론
한국의 K-POP, 즉 아이돌 문화는 한국을 이끌 정도로 대중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며 TV,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아이돌을 볼 수 있다. 마치 아이돌이 늘 옆에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아이돌 문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팬의 존재 때문이다. 즉 아이돌 문화 안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은 팬덤 문화가 아이돌 문화를 흥행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산업적인 면에서 팬덤은 아이돌 산업의 중요한 소비자로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기에 이를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단순 공급자-소비자로 보기에는 그 이상의 유대 관계가 보인다. 팬은 아이돌에게 물질적인 소비뿐만 아니라 손 편지 등의 정신적인 교감 또한 하고 있으며 아이돌 또한 팬을 대상을 단순히 자신들의 굿즈를 팔 뿐만 아니라 라이브 방송, 커뮤니티 어플을 통하여 그 이상의 소통을 팬들과 하고 있다. 즉 아이돌 문화에서 '아이돌-팬' 관계는 핵심이며 이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면 하나의 중요한 대중문화로서의 아이돌 문화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또한 아이돌 문화의 건강하지 않은 부정적인 측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돌-팬' 관계를 우선 사랑으로 보고자 한다. 실제로 이들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앞서도 언급하였든 이 둘의 관계는 공급자-수요자 이상의 정서적 교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팬' 관계를 사랑으로 포괄한 다음 이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사랑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그러한 논의의 가장 기초가 되는 에로스와 필리아로 이를 판단해보고자 한다. 즉 '아이돌-팬' 관계에서 보여지는 사랑이 에로스적인 사랑인지 아니면 필리아적인 사랑인지를 말이다. 이 관계의 에로스적인 면을 고찰할 때는 플라톤이 『항연』에서 말한 '에로스'로 보고자 하며, 필리아적인 면을 고찰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필리아'로 보고자 한다. 이렇게 '아이돌-팬' 관계의 에로스적인, 필리아적인 면을 살펴본 뒤 아이돌 문화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이돌-팬' 관계의 어떠한 면을 지향해야 하고, 지양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 '에로스'적인 '아이돌-팬' 관계
'아이돌-팬' 관계의 에로스적인 면을 고찰하기 위하여 플라톤의 '에로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보통 에로스적 사랑이라고 하면 본능적인 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한다. 에로스적인 사랑의 핵심은 '본능'이다. 이러한 에로스를 플라톤은 『항연』을 통해 재정의한다. 이 작품에서 당대 여러 인물이 비극 작가 아가톤이 초대한 연회에 참석하여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사랑을 상징하는 에로스를 찬미한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는 작품의 등장인물로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사랑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연설하며 에로스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 짓는다. 이러한 『항연』의 구조는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면을 모두 다루기보다는 '아이돌-팬' 관계와 관련지을 수 있는 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파이드로스의 경우 사랑하는 자(lover)와 사랑받는 자(be loved)의 역할을 엄밀히 구분한다. 사랑받는 자는 아름다움을 잘 발휘해야 하고,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가 발휘하는 아름다움을 잘 수용해야 한다. '아이돌-팬'의 관계는 이러한 '사랑받는 자-사랑하는 자'의 관계에 해당하는 듯 보인다. 아이돌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휘하여 뽐내며 팬은 그러한 아이돌을 사랑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파이드로스의 말이 '아이돌-팬'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
"사랑하는 자가 소년 애인을 소중히 여길 때보다는 사랑받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길 때(신들이) 더욱 놀라워하고 마음에 들어 하며 잘해 준다네. 사랑하는 자가 소년 애인보다 더 신적이거든.”
이를 사랑하는 자를 팬으로, 사랑받는 자를 아이돌로, 신을 사람으로 치환한다면 현시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조언으로 보인다. "팬이 아이돌을 소중히 여길 때보다는 아이돌이 팬을 소중히 여길 때 (사람들이) 더욱 놀라워하고 마음에 들어 하며 잘해 준다네." 이러한 모습은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그 아이돌이 팬한테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소중히 여겨주었다는 미담을 들으면 그 아이돌을 칭찬해주며 좋게 바라본다. 이는 '아이돌-팬' 관계가 '사랑받는 자-사랑하는 자'의 관계이며 아이돌은 '사랑받는 자', 팬은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에뤽시마코스의 조화,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쪽과의 재회로서의 에로스의 경우엔 '아이돌-팬' 관계에 완전히 해당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는 해당하는 듯 하다. 이들은 인간이 혼자의 삶으로 온전한 좋음 또는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해, 같은 상태에 처한 다른 인간과 화합함으로써 바라는 만족을 에로스를 통해 얻는다고 말하는데 이를 '아이돌-팬'의 관계에 적용해볼 수 있다. 아이돌은 자신의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팬이 없으면 결국 의미가 없다. 이는 아이돌의 어원이 '우상'임을 분석해본다면 더욱 확실해진다. 우상은 숭배의 대상이라는 뜻으로, 다시 말해 누군가가 숭배하기에 우상인 것이다. 즉 숭배하는 이들이 없다면 우상은 우상일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돌 또한 마찬가지인데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이 없다면 아이돌은 아이돌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아이돌은 팬과의 화합을 통하여 비로소 온전해진다. 팬은 아이돌을 숭배하면서, 아이돌은 팬에게 숭배받으면서 완전해진다.
이후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에로스에 대해 논의를 하고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며 지금까지 나온 논의를 정리하게 되면서 『항연』이 끝나는 듯하지만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뒤집게 된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항해 육체적 욕망을 동반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지금까지 논의되어왔던 고귀한 에로스와는 반대되는 에로스로 보이며 현실적인 에로스로도 보인다. 성적 쾌락과 동반하는 에로스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적 쾌락이 좌절된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은 일부 팬의 모습에 해당하는 듯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후에 풀어보고자 한다.
3. '필리아'적인 '아이돌-팬' 관계
'아이돌-팬' 관계의 필리아적인 면을 고찰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필리아적 사랑은 친구 간의 우애나 우정, 혹은 벗사랑을 의미한다. 이러한 필리아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아의 목적에 따라 3가지로 구분한다. 유익을 이유로 사랑하는 것, 즐거움을 이유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탁월성을 이유로 사랑하는 것으로 나눈다. 유익을 위한 필리아의 경우, 말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을 가져다주기에 사랑하는 것으로 '아이돌-팬'의 관계에서 아이돌이 팬과의 관계를 맺는 이유로 볼 수 있어 보이는데 아이돌은 팬과의 관계를 통해 수익이라는 자본적 유익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 팬이 아이돌과 관계를 맺는 이유는 유익보다는 즐거움으로 보이는데, 팬이 아이돌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즐거움, 쾌락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아이돌을 보며 즐거움, 쾌락을 느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즐거움을 위한 필리아의 경우 에로스적이라고도 말하는데 에로스적인 사랑은 대부분 감정에 따른 것이며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돌-팬' 관계는 유익 또는 즐거움을 위한 필리아로 보이는 데 이 관계가 탁월성에 기반한 필리아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탁월성에 기반한 필리아의 조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에 기반한 필리아는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사랑이며 이들은 서로가 잘되기를 똑같이 바라는데,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그렇게 바라며, 또 그들은 그 자체로서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필리아는 드물며 시간과 사귐을 필요로 한다. 즉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아이돌-팬'의 관계는 탁월성에 기반한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에 기반한 필리아를 완전한 필리아로 그 이외의 것들을 불완전한 필리아로 보는데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아이돌-팬'의 관계는 불완전한 필리아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아이돌-팬'의 관계가 동등하다고 보았을 때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이들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고 우월성에 기초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팬'의 관계가 우월성에 기초한 필리아라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월성에 기초한 친애의 경우 각자의 탁월성과 해야 할 기능이 서로 다르며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유 역시 다르다고 말한다. 즉 이를 '아이돌-팬'의 관계에 대입해본다면 팬은 아까도 언급하였듯 아이돌을 즐거움 때문에 사랑하며 아이돌은 팬을 유익 때문에 사랑한다고 볼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때 우월성은 한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져 있다 보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아이돌마다 우월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돌이 소속되어있는 기획사가 우월한가 아닌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즉 우월한 기획사에 소속되어있는 아이돌의 경우엔 우월성이 아이돌에게 기울어져 있으며 우월하지 않은 기획사에 소속되어있는 아이돌의 경우엔 우월성이 팬에게 기울어져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여기서 중요한건 '아이돌-팬'의 관계는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등성에 기초하지 않은 필리아를 갖고 있기에 '아이돌-팬'의 관계에선 교환의 원칙이 중요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구절은 마치 '아이돌-팬'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데 에로스적인 친애의 경우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때때로 이렇게 불평한다. 자신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데도 [그것에] 호응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사랑할 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에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자주 이렇게 불평한다. 이전에 모든 것을 약속한 사람이 실제로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노라고.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즐거움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유익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이런 일[불평]들은 자신들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된 것들을 갖지 못할 때 생겨난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성립하는 친애는,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해체된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 것은 상대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이었는데, 그 소유물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런 종류의 친애들 역시 지속적이지 않다.
팬은 아이돌을 사랑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고 아이돌 또한 팬을 사랑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 팬의 경우, 아이돌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과 여러 굿즈들뿐만 아니라 무대에서의 퍼포먼스, 일상적 모습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팬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팬은 그 아이돌에게 실망하게 되며, 이러한 실망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탈덕'하게 된다. 물론 어떤 팬은 그 아이돌 자체를 사랑한다며 자신의 사랑에 호응하는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호응하는 사랑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닌 호응하는 사랑의 극치가 낮은 것뿐이다. 아이돌은 직업 특성상 사랑을 아예 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절에서처럼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을 구하는 사람에게 불평을 갖는 것, 즉 아이돌이 팬에게 불평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아이돌-팬'의 관계에 드러나면 또 하나의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풀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아이돌-팬'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은 필리아의 관계이며, 팬의 경우 즐거움을 목적으로 사랑하며, 아이돌의 경우 유익을 목적으로 사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면을 갖는 필리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불완전한 형태의 필리아다.
4. '에로스' 및 '필리아'적 관점에서 본 '아이돌-팬' 관계의 문제점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본다면 '아이돌-팬' 관계는 '에로스'적인 것으로 보이면서도 '필리아'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아이돌-팬'의 관계는 에로스적인 필리아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즉 '아이돌-팬'의 관계는 단순히 에로스적이기만 한다거나 필리아적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에로스적이면서 필리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이 관계가 복합적인 면을 갖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 시절에 있던 관계가 아닌 21세기 들어서 새롭게 드러난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돌-팬'의 관계의 특수성은 현대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이 관계를 플라톤의 '에로스'적인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었으며 이로 한인 여러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돌-팬' 관계를 '에로스'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필리아'적인 관점에서 비판해보고자 한다.
우선 '에로스'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아이돌-팬' 관계가 문제시되었던 지점은 바로 '알키비아데스'로 보았던 성적 쾌락적인 관점에서 이다. '에로스'의 기반은 결국 성적 쾌락이다. 물론 이를 파우사니아스는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구분하여 범속의 에로스는 연인으로 하여금 영혼의 교감보다 성행위와 같은 육체의 즐거움을 앞세우는 어리석음에 이르게 하며 반면에 천상의 에로스는 건장하면서도 지성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소중히 하는 현명함을 따르게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성적 쾌락적인 에로스 또한 에로스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물론 에로스의 '성적 쾌락'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쾌락'의 추구는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시 이는 '성범죄'로 이어진다. 실제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강력 성범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무나 스토킹, 주거 침입 등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범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알키비아데스'에서 보았듯 좌절된 에로스는 증오로 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오는 사랑의 상대에게 해를 입힌다. 마치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돌을 대상으로 증오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과몰입하여 진정으로 서로가 사랑한다고 믿어 대상을 집착하여 스토킹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다 이를 제지받자 사랑은 증오로 바뀌어 대상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다. '아이돌-팬' 관계에 내재해 있는 에로스의 부작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필리아'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는 '아이돌-팬' 관계의 문제는 무엇인가?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나오는 부조리함이다. 앞서 보았듯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등하지 않음에 기반한 필리아의 경우 그래도 서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이러한 관계를 끊을 수 있지만 '아이돌-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아이돌은 팬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 이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만들어버린다. 팬은 끊임없이 아이돌에게 돈을 쥐여주고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이를 응해주지 않으면 비난하며 증오한다. 실제로 이는 아이돌 문화 또는 산업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팬의 입장에서는 돈을 주기만 하면 법적인 한에서 무엇이든 아이돌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모든 팬이 그런 것은 아니며 기획사의 힘이 강한 경우엔 해당하지 않지만, 우월성이 팬에게 기울어져 있는 경우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이돌-팬' 관계가 비동등한 필리아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에로스에 기반한 비동등적인 필리아인 '아이돌-팬' 관계는 이렇듯 여러 문제를 낳는다. 그렇기에 아이돌 산업 자체를 근본적으로 성적 대상화 산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급하게 일반화하기에는 '아이돌-팬'의 긍정적인 면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아이돌-팬'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닌 사랑 자체의 문제로도 보인다. 에로스와 필리아 모두를 포함하는 사랑 그 자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면 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만을 생각하지만 앞서 살펴볼 수 있듯 더럽고 추잡한 사랑 또한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알키비아데스'의 사랑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좋은 사랑을 지향하고 나쁜 사랑을 지양해야 한다. 지금까지 '아이돌-팬' 관계에서 보여졌던 나쁜 사랑들, 즉 지양해야 할 사랑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아이돌-팬' 관계에 있어서 지향해야 할 사랑은 무엇인가?
5. '아이돌-팬' 관계는 어떤 사랑을 지향해야 하는가
'아이돌'의 특성상 아이돌에 대한 사랑은 에로스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본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범속의 에로스'를 지양하고 '천상의 에로스'를 지향해야 한다. 이에 대해 파우사니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고 올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올바르지 않게 행해지면 추한 것이 된다는 말이네. 사랑하는 일도 바로 이러하며 그래서 에로스 일반이 아름답거나 찬미받을 만한 게 아니라 아름답게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에로스만 그러하네.
즉 단지 아이돌을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이 '천상의 에로스', 즉 올바른 사랑이며 이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했던 에로스, 반쪽과 재회를 하고자 했던 에로스 또한 지향해야 할 사랑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함께 어울리기를 원하는 상호 간의 동의를 전제하므로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와의 합일을 이끌어 내려는 일은 아름다운 사랑의 조건에 맞지 않는데 이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 바로 앞서 살펴보았던 팬의 일방적 사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며 대신 상대와의 합일을 이끌어 내는 사랑이 바로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사랑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에로스는 과도한 필리아로도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도함을 지양하고 중용적 사랑, 필리아를 지향해야 한다. 에로스의 사랑의 감정은 좋은 것일 수 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성적인 열망 때문에, 혹은 쾌락이 아닌 고통을 가져다주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너무 지나친다면,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과도한 필리아의 모습이 종종 팬에게 보인다. '사생팬'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과도한 필리아를 가진 이들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과도한 필리아는 아이돌에게도 그리고 팬 본인에게도 고통을 가져다주며 문제를 초래한다. 특히 이러한 사랑은 자기 파괴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아이돌에게 과몰입한 팬은 자신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며 아이돌 관련 상품들을 무리하게 구매하고 공연을 쫒아다닌다. 그리고 이들은 아이돌과 자신이 실제로 만나 연애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이돌에 대한 사랑은 과도해서는 안 된다. 즉 아이돌을 적당히, 중용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이기적인 자기애를 말하는 것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타적인 자기애를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애란 훌륭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갖는 관계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어떤 좋은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하듯이 친구를 대하기 때문에, 친구는 다름 아닌 또 다른 자아라고 설명한다. 또한 좋음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사람의 특징이며, 좋은 사람은 좋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의 자기애는 이타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친구에게도 확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에 대한 친애의 감정은 자신에 대한 친애의 감정의 확장이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애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자아의 연장으로, 즉 ‘하나의 영혼(mia phychē)'으로 보고 친구를 일종의 자기반성의 길로 생각했다. 즉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사랑이 타인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사랑해야 타인을 잘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이돌-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팬은 아이돌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사랑해야 진정으로 아이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생적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이기적 사랑이다. 그렇기에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아이돌에게 과몰입하여 과도한 사랑을 하지 않으며 중용적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팬은 아이돌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6. 결론
지금까지 '아이돌-팬' 관계의 '에로스' 및 '필리아'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다. 이 관계를 '에로스'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파이드로스가 말했던 사랑하는 자(lover)와 사랑받는 자(be loved)의 관계로 볼 수 있으며, 에뤽시마코스의 조화,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쪽과의 재회로서의 에로스의 경우엔 '아이돌-팬'의 관계에 완전히 해당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는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인간이 혼자의 삶으로 온전한 좋음 또는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해, 같은 상태에 처한 다른 인간과 화합함으로써 바라는 만족을 에로스를 통해 얻는다고 말하는 부분이 '아이돌-팬' 관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필리아'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아이돌-팬' 관계가 유익 및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며, 둘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필리아로 보았다.
이렇게 '에로스' 및 '필리아'적 관점에서 '아이돌-팬' 관계를 보았을 때 여러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에로스'의 경우, 그것의 기반이 결국 본능이기에 아이돌을 대상으로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며, '필리아'의 경우 '아이돌-팬' 관계가 비동등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범속적인 에로스를 지양해야 하며, 중용적인 필리아를 지향해야 하며 아이돌을 사랑하기에 앞서 팬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즉 자기애를 우선으로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아이돌-팬' 관계에 대해 플라톤의 '에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를 중심으로 고찰해보았다. 아이돌 문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서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아이돌 문화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팬은 아이돌을 잘 사랑해야 하며 아이돌 또한 팬의 사랑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팬을 소중히 여겨줘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사랑은 공동의 행복을 위한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플라톤, 강철웅 옮김, 『항연』, 아카넷, 2020.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강상진, 이창우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길(도서출판), 2011.
김현희, 「에로스와 필리아」, 민족미학, 14(2), 251-285, 2015.
이상헌, 「플라톤 『향연』(Symposion) 편의 에로스(erōs)에 대한 고찰과 ‘사랑과 성 윤리’ 수업 적용 연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21.
장미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로스와 친애」, 철학연구, 104, 27-64, 2014.
강신규,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 한국언론학보, 66(5), 5-56, 2022.
이당논문상 부문 심사평
이 논문은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보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 이론을 중심으로 현대에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필자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한 에로스 찬가를 분석하여,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 적용하여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아리스토테렐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8, 9권을 분석하여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잘 해석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까지 사랑에 관한 모든 이론의 근본이 되는 고대 그리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랑 이론을 가지고 현대의 사랑의 관계를 재해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나아가 현대적 의미의 아이돌과 팬의 사랑 관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도 같이 설명되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바디우의 <사랑예찬>, 로젠와인의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사랑이 될 것>,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등.
장미성 교수(철학과)
이당논문상 수상소감
우선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초부터 알려주셨던 장미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논문을 원활히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자기주장만 외치는 글이 아니라, 본인의 말로 표현한 사유를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박준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순히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사유 속에서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많은 논문이지만, 아이돌 문화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기에 당선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돌 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여 건강한 아이돌 문화가 되기 위해서, 이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아이돌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