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선거 즈음에
우리는 다 나름의 생김새가 있다. 의식하든 말든, 나는 늘 내 행동을 좌우하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역으로 행동은 내 정체성을 더 선명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같은 일에도 달리 반응하곤 한다. 일을 겪는 생김새가 서로 달라서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늘 ‘숭실’을 읊조리며 이 ‘숭실다움’을 흐뭇해한다.
외부의 도전과 마주할 때, 정체성은 더 절실해진다. 생김새와는 다른 가치,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압박인 탓이다. 이럴 때 외부의 도전에 대응하는 우리의 노력은 내정체성과 사회적 압박 사이를 오가는 교섭이다.
평양 숭실의 폐교는 부당한 외부의 압력에 맞서 숭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크게 보면 맞지만, 실제 투쟁의 현장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학교 설립과 운영 주체인 미국 선교부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보고 폐교를 주장했지만, 당시 조선의 시민, 교수, 학생들은 입장이 달랐다. 사실 폐교 당시 교장이었던 일라 이모우리(Eli Mowry)는 선교사였지만 강경한 폐교 반대론자였다. 폐교는 조선과 조선의 청년을 팽개치는 것이라 여겼다. 설사 일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더라도 교육을 멈출 수는 없다는 신념이었다. 물론 최종 결론은 학교 문을 닫는 것이었다.
일제 치하 조선에서 성공적인 교육을 이끌다 끝내 폐교했던 평양 숭실의 아픈 마지막은 오늘 한국에서 우리 숭실은 어떤 모습일까를 새삼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 우리도 그때의 신사참배만큼이나 답 없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전례 없는 총장 후보의 수가 이런 위기감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모두 숭실 수호를 내세우지만, 그 아래 사적인 명예욕도 있을 것이다. 홍보 유인물이 넘쳐 나는 만큼 해결책도 갖가지다. 수긍이 갈 때도, 의아할 때도 있다. 또 과거 폐교파와 존속파가 달랐듯 절제된 표현 아래 숨은 속내는 더 다를지도 모른다. 내 본 얼굴을 지키며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생각이 있다면, 생존을 위해 성형이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물론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만 정답인 것도 아닐 것이다. 물 론 이는 숭실의 생김새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얽힐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예전에 그랬듯이, 어수선한 지금의 이 혼란도 더 선명하고 맑은 얼굴을 찾아가는 성장통이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