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중심으로 한 지식 산업의 변화와 이에 대응하려는 교육, 문화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달 28일(금) 개강교수 회의를 비롯해 교내에서도 이 흐름에 대응하려는 준비가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Artificial)과 지능(Intelligence)을 합친 조어(造語)가 성장하며 펼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새롭게 도래할 미래 사회의 모습이 어떨까 기대된다.

  20세기 전반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내용과 의미가 우리의 현실의 쓰임새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상정해 보면 AI와 “인공지능” 관계같이,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19세기 말 동아시아에 들어온 “건축(建築)”은 한 세기 넘게 과연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정의하고 의미를 만들어 왔는지 궁금하다. 영어의 Architecture란 말은 그리스 어원인 arkhitekton 에서 파생된 말이다. 최고를 뜻하는 arkhi와 기술을 뜻하는 tekton에서 조합된 말이니 최고의 기술(자)을 표현했다는 것에 이견이 많지 않다. 실제로 Computer Science를 비롯한 첨단 분야에서 이 말을 다양하 게 쓰고 있기도 해서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돼 최근 각광받는 AI를 일컬어 architecture 그리고 이를 만드는 사람들을 architect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가끔은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지중해권의 고대 사회에서 신전이나 스타디움같이 대규모 구축사업을 벌이는 일이 당시 가장 난해한 기술과 사회적 자본이 필요한 첨단의 일이었을 테니 이를 일컫는 말로 Architecture가 자연스럽게 유럽인의 언어생활에 정착했으리라 상상해본다. 이런 외래어 Architecture가 어떻게 “세우고”, “쌓는다”는 한자어 “건축”으로 번역됐을까? 19세기 말 일본에서 이토 쥬타를 필두로 이 말의 선택과 사회적 전파를 다룬 여러 서사를 여기서 다룰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이 말과 함께 수입된 “유럽인의 집 짓기”가 과거 동아시아에서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새로운 사건이었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세우고”, “쌓는다”에서 보듯이 “건축”이란 말은 벽돌이나 돌 그리 고 콘크리트 재료의 점진적인 적층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방식은 오랜 기간 목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사이를 흙과 짚같은 재료로 채워 넣기한 동아시아의 목조 가구식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다.

  수입된 말인 “건축”은 이렇게 오랜 기간 유럽의 기후와 역사에 적응하며 채택된 석재와 이 구축의 특징을 문화적 해석과 함께 동아시아에 전파했다. 역사 발전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심미적 객체로서 집 그리고 그 시간의 분절 속에 존재하는 시대 정신, 추상화된 이상의 실현과 같은 미학과 기하학적 형태의 진본을 대상화한 공간처럼 가히 혁명적인 시공간의 개념이 이 단어에 함축돼 한국의 대학에 “지식”의 모습으로 전파돼 왔다.

  이처럼 과거 두 문화권 간의 집 짓기 차이를 내재한 “건축”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말로 대표되는 집에 대한 사고와 새로운 재료의 선택이 동아시아 기후에 매우 불리하다는 점을 깨달은 최근이다. 필자는 바로 3주 전 서울이 온종일 영하를 기록하는 혹한에 지중해의 한 도시에 있었다. 졸업생과 함께한 전시 때문이었지만 낮에는 더워 반팔을 입고 다니면서 한국의 겨울을 피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나 싶었다. 일교차가 심하고 연교차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태양 볕이 따가운 지중해 해변을 걸으며 “건축”하면 자 동반사적으로 연상되는 △파르테논 △판테온 △유니테 다비타쉬옹들은 지중해 기후가 생산한 자연스런 결과물로 느껴졌다. 문제는 이런 유럽의 건축관을 한 세기 넘게 온몸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가다.

  죽음과 탄생의 순환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유기재료, 목재를 이용한 집의 이해는 미학의 대상보다는 삶을 보조하는 차선이자 배경이며 형태보다는 관계와 삶을 위한 도구고 사물에 대한 영구적인 보존보다는 때맞춘 관리와 자연의 매개를 전제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21세기가 절실히 요구하는 이런 “건축”밖의 생태적 사고가 우리 문화에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AI 혁명의 디지털 문명뿐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기후위기 시대에서 “진보”라는 직선적 시간 속 기념비적(monumentality)인 그 “건축”보다는 잊혀진 지혜를 품은 상생의 언어로 “건축”이 폭넓게 사용되길 바라본다.

지난달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졸업생, 재학생과 함께한 전시: “그 건축없이  건축하기 (Building Without That Architecture)"
지난달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졸업생, 재학생과 함께한 전시: “그 건축없이 건축하기 (Building Without That Architecture)"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