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의 「바다를 보는 법」(『현대문학』, 2023년 5월)은 ‘어른을 위한 동화’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만연한 사회여서일까요? 정용준이 전달하는 이 따뜻한 서정성과 교훈성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소설이 야무지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용준은 약소자들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드러내며 작가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최근에는 우리 일상의 타자들을 향한 섬세한 윤리적 감성을 드러내는데 나름의 일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거리에 헤드기어를 쓰고 나타난 한두운을 보여준 「선릉 산책」 ( 『문학과사회』, 2015년 겨울호)과 아내가 떠나가는 슬픔을 겪은 호른 연주자와 남편이 자살하는 아픔을 겪은 교정 교열 전문가의 만남을 그린 「미스터 심플」(『현대문학』, 2021년 1월호)을 들 수 있겠죠.

  「바다를 보는 법」은 사회적 약소자인 청년이 6개월 여명의 암선고를 받고서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나가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극작과를 졸업한 한성은 생존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했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사실과 진실이 아닌 진실을 써야” 하는 일이자, “거짓말보다 더 질 나쁜 거짓”을 쓰는 것이기도 했는데요. 결국 한성은 자신의 전공인 글쓰기를 포기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얻습 니다. 그러나 우연히 뇌종양을 발견하고 여명 6개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한성에게 는 “삶을 조용히 마무리”하겠다는 결심만이 남습니다. 한성은 어릴 때 이혼한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려고 할 정도입니다.

  그랬던 한성이 삶의 끝자락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연극을 만들고 자신도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한성은 오래된 물건을 사고 파는 지역 커뮤니티에 접속한 뒤 ‘창작희곡은 준비되어 있으니 연극동호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모집 공고 글을 남깁니다. 다음 날 아침 지수 맘(평범한 주부), 영빈(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위해 삼수 중인 입시생), 진 노인(동주민센터의 50대 직장인)이 연락을 해오고, 한성은 세 사람에게 자신이 쓴 「바위들」이라는 대본을 건네줍니다.

  그들은 한성에게 극단이름과 연습 장소와 공연 장소를 묻지만, 아무런 계획이 없던 한성은 고개 숙여 사과할 뿐이네요. 그런데 이때부터 동화같은 일들이 펼쳐집니다. 진 노인이 연습할 장소를, 영빈이 연극에 필요한 소품을, 지수 맘이 의상을 준비하겠다고 척척 대답하는 것입니다. 극단 ‘바위들’은 센터 다목적실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연습을 하고, 각자 ‘울퉁’과 ‘불퉁’, ‘쓸쓸’과 ‘캄캄’ 등의 이름을 가진 바위 배역을 나눠 맡네요. 연습 과정에서 진 노인과 영빈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 번의 술자리만으로도 그 갈등은 바로 해결됩니다. 영빈은 “교수들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이 꼬이고 목소리가 갈라져서 괴상한 소리를 내는 징크스”에 대해, 지수 맘은 바닥에 이른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진 노인은 “어둡고 딱딱하고 쓸쓸한” 죽음에의 상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러한 일을 거치며 단원들은 “누군가 자신을 받아주고 긍정적으로 반응해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좋게 변하게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그 밤 귀가하던 한성도, 그간 모른 척했던 자신의 마음이 입을 열어 “살고 싶 다. 죽고 싶지 않다.”고 간절하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극단 ‘바위들’은 구청에서 주관하는 야시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문제는 아무런 대사도 없이 무대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고요’의 배역을 정하는 것인데요. 재미있게도 그 배역은 “세상에서 가장 차분하고 조용한 아이”인 15개월의 지수가 맡게 됩니다. 비가 내려 야시장은 파장이 되고 단원들은 상인들만을 대상으로 공연을 시작하는데요. 이번 공연의 기본적인 내용은 본래 바다에 있었던 바위들이 사막에 살게 되면서, 다시 바 다를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울퉁’과 ‘캄캄’은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나자고 주장하고, ‘불퉁’과 ‘쓸쓸’은 현실을 직시하고 사막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다를 너무나 그리워하지만 단 1센티미터도 움직일 수 없는 바위란, 사실 죽음을 앞둔 한성의 처지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바위의 모습은 극단 ‘바위들’ 의 배우들은 물론이고 이 연극을 보는 시장 상인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바다를 보는 법」에서는 한번도 이 연극의 결론이 미리 제시된 바 없었는데요.

  무대에서 ‘바위들’이 ‘떠날 것’인지 ‘머물 것’인지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순간에 그야 말로 동화적인 기적이 일어납니다. 고민하던 ‘바위들’은 무대 한쪽 구석에 바위 분장을 하고 앉아 열쇠고리를 갖고 놀던 고요에게 “말 좀 해보세요.”라고 묻습니다. 그 순간 ‘고요’는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성인(成人 이자 聖人)처럼, 무대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하는군요. 그 순간 ‘울퉁’은 즉흥적으로 “저 바위를 보세요. 저렇게 잘 걸어가잖아요. 우리도 일어납시다.”라고 말하고, 다른 바위들도 즉흥적으로 모두 일어나 “박수 소리가 들리는 해변을 향해 환대하는 바다 생물들을 향해” 걸으며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바위의 모습은, 당연히 작품의 마지막에 저녁에 있을 연습을 위해 구청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한성의 담담한 모습에 겹쳐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바다를 바라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어린 시절 동화를 읽듯이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해맑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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