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새장 속의 새는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고 느낄까요? 아마 도 그 새는 커다란 새장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해 보려는 최민우의 「구아나」(『Axt』, 2024년 9월·10월호)는 도윤과 해영이라는 젊은 비혼 커플이 새장에 부딪치는 순간과 그 이후의 반응을 담담하지만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최민우는 상황이나 인물의 생생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보여 주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요. 불법 유통판매업 현장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가 일품인 등단작 「[반:]」 (2012)의 감동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할 정도입니다. 그런 최민우가 오랜만에 발표한 「구아나」는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 동거라는 일상의 감각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해영과 도윤은 연식이 오래되었다는 단점이 역세권이라는 장점과 등가교환이 되는 빌라에서 몇년 째 함께 사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입니다. 해영이 아침에 의류 회사로 출근하고 나면, 도윤은 혼자 남은 집에서 개인이나 기업의 홈페이지를 제작하는데요. 도윤과 해영은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화덕피자집이나 텐동집에서 식사를 즐기며 ‘둘만’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가끔 도윤의 어머니가 둘의 사이를 뻔히 알면서도, “언제까지 혼자 살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둘만’의 새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랬던 것인데 해영의 오빠인 해준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둘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면서, ‘둘만’의 새장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처음 도윤은 해영 오빠의 방문이 “이미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혼자 살 거냐고 묻는 것” 과 마찬가지라며, “집 정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달리 도윤과 해영은 집안의 전등을 교체하고 도배를 새로 할 정도로 바짝 긴장하는데요. 이러한 부담감은 해준이라는 인물의 중량감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돈에는 시공을 무시하고 염치를 무화하는 힘”이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자동차 딜러로 시작하여 10여 년 만에 번듯한 자기 사업체를 일궈낸 해준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아무래도 해영과 도윤은 ‘잘 나가는’ 해준에게 자신들의 비혼 동거를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해준이 방문하기로 한 날이 되자 도윤과 해영은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고, 식탁 위에는 실리콘 매트를 준비하며,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르는 먼지와 쓰레기를 “수색”하기까지 하는데요. 고급 양주인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들고 나타난 해준은 자신이 찾아온 진짜 “본론”을 털어놓습니다. 그 ‘본론’이란 자신과 아내 그리고 딸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 부모님과 도윤과 해영이 포함된 ‘가족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입니다. 도윤에게 ‘가족 사진’을 찍겠냐는 해준의 물음은, 공식적으로 ‘가족’이 될 것 이냐를 도윤에게 압박하는 우회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죠.

  해준이 떠난 후에, 도윤과 해영은 “가족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야기하다가” 처음으로 크게 싸웁니다. 도윤은 “안 찍어, 안 찍는다고, 내가 왜 니네 가족이야.”라고 말하다가도 잠시 뒤에는 “그래 찍자, 찍어, 뭐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으라는 것도 아니고 사진만 찍자는데 그게 뭐 대수냐.”라고 말을 바꾸기도 하는데요. 다음 날 도윤은 자신이 그토록 화가 난 이유가 “지금 두 사람이 속해 있는 영역을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달리 말하자면 “사진을 구실로 가족과 혼인 사이의 경계로 슬쩍 밀고 들어온 것이 불쾌”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도윤과 해영은 ‘가족 사진’을 찍기 전에 “오빠를 위해서”가 아 니라 “우리를 위해” 집수리를 먼저 하기로 합니다. 이것은 해영이 “뭐가 문제일까 며칠 동안 생각을 해” 본 후에, “오빠에게 보여주려고 도배를 하고 전등을 바꿔 단 거.”가 문제였음을 깨달은 결과입니다. 도윤과 해영은 자신들이 사회의 일반적 인상식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산다고 믿었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잘 나가는’ 오빠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힘든 도배를 하고 난생 처음 전등까지 바꿔 단 거겠죠. 해영과 도윤은 오빠의 인정만 바라다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에게 내면화 된 새장을 비로소 깨달은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에 이번에 해영과 도윤이 집수리를 하는 것은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사는 집이 비록 전셋집이지만 “어쨌든 앞으로 2년은 우리 집이야”라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인 동시에, 자신들의 현재 관계를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에 의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비혼 동거를 백안시하는 사회적 시선은 무서운 힘을 가진 “전설의 괴수 구아나”이기도 하지만, 스스 로 그것을 인정하고 소중히 하는 자에게는 “도룡뇽과 비슷하게 생긴 귀여운 녹색 생명체”에 불과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도윤과 해영이 ‘가족 사진’을 찍을 것인지의 여부는 끝내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위한 “집수리가 다 끝난 다음”에야 이루어질 일이기에, 해영과 도윤에게 어떠한 후회도 남기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