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에서 조용한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대학 수준의 학문적 글쓰기 과제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단순한 대학 교육여건 변화로 인한 행정적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인문학 교육 자체에 대한 존재적 위협을 나타낸다. 이 문제는 학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비판적 사고 능력과 지적 담론 역량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쇠퇴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상호 연관돼 있다.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 본부는 상응하는 적절한 지원 계획 없이 수강 학생 수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서구 대학과 달리, 국내 교수는 수업 진행, 특히 채점을 도울 조교를 배정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십 혹은 수백 개의 과제물에 대해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는 불가능한 과제에 직면해 많은 교수가 마지못해 글쓰기 과제를 포기한다. 학생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동조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며 학점을 최대화하려는 학생들은 아날로그식 글쓰기에 익숙하지 못 해 큰 부담을 느껴 글쓰기 중심 수업을 점점 더 기피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 간 상호작용과 다양한 활동을 강조하는 학습으로 교육 추세가 변화함에 따라 글쓰기는 수업의 핵심에서 쉽게 밀려났다. 그런 활동이 나름 의미가 크지만, 학술적 글쓰기가 요구하는 독특한 지적 도전을 그것들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문학 교육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보여준다. 글 쓰기는 단순한 평가 방법이 아니라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을 증진하는 주된 메커니즘이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생각을 구조화하고 자료에 기반한 증거를 평가하며 반론을 고려하고 복잡한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토론이나 그룹 활동이 아무리 가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집중적인 지적 훈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글쓰기 과제를 포기하는 대가는 크다. 본격적인 문장 분석 연습이 없다면, 학생들은 논증을 구성하고 평가하는 능력, 다양한 출처를 종합하는 능력, 복잡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과 같은, 인문학 교육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킬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러한 기술은 반복적인 작업이 자동화돼 대체되고 비판적 사고가 더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고용주들이 점점 더 가치를 두는 바로 그 기술이다. 더욱이, 글쓰기의 쇠퇴는 인문학과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만약 인문학 수업이 단순한 콘텐츠 전달 시스템이 돼 실시간 대면 상호작용만으로 온라인 강의와 구별된다면, 대학 예산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에 그들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인문학 교육의 독특한 가치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분석적이고 표현적인 능력의 개발에 있다.
글쓰기 교육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 교육에서 글쓰기가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교육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지적 재앙을 의미한다. 인공 지능과 자동화된 콘텐츠 생성의 시대에,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학의 행정적 편의 때문에 인문학 교육에서 글쓰기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의미 있게 소통할 도구를 갖추지 못한 졸업생을 배출하게 될 위험이 있다.
다니엘서에서 벨사살왕 앞에 나타나 벽에 경고의 글을 썼던 손이 우리의 벽에도 경고문을 남겨놓았다. 우리는 인문학 교육에서 실질적인 글쓰기 교육을 보존할 방법을 찾거나 대학에서 인문학적 탐구의 점진적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선택과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