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우리는 관상 보듯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서 그 사람의 여 러 다른 모습을 판단하거나 추론하 곤 한다. 집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 할까? 우리가 배우는 “건축”의 전통 에서는 건물의 △앞면 △측면 △배면 등을 입면(elevation)이라 부르고 특히 집의 얼굴이 되는 면을 프랑스어를 빌려 파사드(façade)로 칭한다. 여기서 많은 한국의 건축학 프로그램은 예술적 비례와 균형 잡힌 구성으로 완성된 입면을 당연시하고 이를 위한 도면 그리기를 필수 과정으로 삼는다.
이런 입면 그리기의 전통은 과거 유럽 건축교육에서 17세기에 이르러 점차 강화됐고 이후 고전 건축을 기본으로 한 프랑스의 보자르 학교 (L’École des Beaux-Arts)에서는 수채화로 그린 놀랍도록 정교한 파사드를 연습하곤 했다. 필자는 이 학교에서 생산한 도면 전시회를 가본 적이 있는데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파사드 그림들은 전시회의 많은 드로잉들 중에서도 당연 압권이었다. 꼼꼼히 칠한 색채와 선의 세밀함에서 느껴지는 당대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에 느꼈던 경외감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 있다. 유럽을 여행하며 느껴지는 파사드로 둘러싸인 가로의 이국적 경험은 이런 노력과 훈련이 빗어낸 결과였을 것이리라. 잠깐만, 상도로를 꽉 메우고 있는 그 많은 건물 에서 이런 파사드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무리 봐도 학교 앞 상도로에는 유럽 도심에서 발견한 그 균일하고 절제된 파사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상도로를 일정한 높이로 꽉 채운 많은 상업 건물은 미적 균형과 완결체의 입면을 거부하고 모두 각양 각색의 간판으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이들 건물의 구축 이념 중 하나인 투명한 유리창은 때론 온통 간판과 글자로 덮여 있다. 물론 우리의 건축 법과 조례에도 옥외광고물등의관리 와옥외광고산업진흥에관한법률 등 유럽이나 북미처럼 다양한 규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간판주와 사업주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거리의 행인들에게 간판이 확실하게 어필 되지 않으면 건물 내부에 위치한 소상인은 생존이 어렵다. 간판은 생계가 걸린 문제다!
이런 파사드를 이해하는 시작으로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 1972>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로버트 벤츄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과 스티븐 이즈놀(Robert Venturi, Denise Scott Brown, Steven Izenour)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근대 건축을 비평하는 글들 가운데 가장 파급력 있고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로 꼽힌다. 과연 이들은 도박의 천국 라스베가스의 “건축”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라스베가스의 교훈>에서는 자본주의 가로(Main Strip)의 상업 건축과 아래로부터의 도시 상황을 “오리 (Duck)”와 “치장된 헛간(Decorated Shed)”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대립 시킨다. 신과 종교 중심의 시대에서 인문 중심의 시대를 지나 이제 마주한 상업과 소비 중심의 시대에 변화된 “건축”의 위치를 이 책은 묻는다. “오리(Duck)”로 상징되는 건축은 당시 형태와 공간 중심의 담론으로 굳어진 근대 건축의 공허한 표현주의 미학을 대표한다. 반대로 “치장된 헛간(Decorated Shed)”은 흔히 보는 박스 형태의 일상 공간에 기호와 이미지로 장식한 파사드를 덧댄 “우리시대 건축”이다. 비-건축으로 천시되던 라스베가스의 상업 가로에서 상징, 다양성 그리고 일상의 욕망을 담은 장식된 파사드는 70년대 사회적 연계 없이 전개되던 건축 이론의 순혈주의와 엘리트화한 근대 건축의 예술적 시도를 일거에 전복시킨다.
저자들은 일상의 사람들이 만든 “그 (상업)거리는 거의 괜찮지 않아?(Is not Main Street almost all right?)”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은 책이 나온 후 반세기도 넘은 지금 상도로의 상업 건물에서 저자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형형색색 “우리 시대 건축”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이보다 더 내부와 외부의 연결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배경으로서 “건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도시 환경이 있을까? 반면 대학 교육에서 일어나는 파사드에 대한 탐구는 때론 이런 현실과 멀어져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완결성을 향했던 오래된 보자르 교육과 닮아 있다. 그래서 건축가가 모르는 사이 전혀 건축을 전공한 적이 없거나 비율과 균형 등 수입된 입면 미학에 관심 없는 일상의 소상인들은 그 파사드가 아닌 다른 얼굴, 총천연색 광고로 오늘도 상도로를 재탄생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