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량진 수산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불평의 소리는 주로 바가지를 쓸 위험이 클 수 있다는 경고인데 듣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한복판에서 신선한 회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중교통의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찾 아가던 노량진 수산시장이 아니던가! 현대화된 건물이 지역의 풍경을 이렇게 변화시켰다는 게 한편 씁쓸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학교에서 20분 남짓 501번, 506번, 750번 등 노량진 수산시 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여럿 존재한다. 과거 거친 콘크리트 대공간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량진 수산시장은 가히 작은 수족관의 향연이라 할 만 했다. 1호선 노량진역에 내려서 계단을 돌아 올라가 만나던 예상치 못한 철길 위의 육교, 구름다리 건너듯 복잡하게 얽힌 이 기다란 육교를 한참 걷다 보면 어느새 지붕 위 주차장에 다다른다. 불현듯 튀어나온 옥탑, 네모난 상자는 시장의 입구가 되고 안 쪽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아하! 탄성이 절로 나는 감동의 스펙터클이 눈앞에 와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둑 판 불빛 속으로 도저히 한마디에 담을 수 없는 생명력의 공간! 지하철, 계단, 육교, 철길, 옥상 주차장, 옥탑을 엮은 이런 멋진 입장이 또 어디 있을 수 있을까!
  예전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한때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현대 건축이론의 최전선이 된 우연적 사건의 중첩과 엇갈리는 프로그램의 충돌이 생생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이곳은 “건축가”가 연출한 의도적 공간이 아니라 소상인의 생업과 일상의 리듬에 기대 자연스럽게 창조된 지극히 서울다운 도시 공간이다. 넓게 펼쳐진 격자 기둥 사이로 열 지어선 아쿠아리움들, 근대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나름의 적응을 하였던, 콘크리트 바닥 바닷물 짠 내음과 거친 질감의 공간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어쩌다 우리 시대 전문화된 건축가들은 근대화의 세월이 축적한 이 기막힌 연결과 우연, 덧댄 건물의 예측 불가 즐거움, 그리고 기다린 여정 후에 마주한 장관, 이 모두를 외면했을까?
  깨끗하지만 평범과 지루함으로 귀결된 새 노량진 수산시장을 바라 볼 때마다 디지털 렌더링으로 획일화, 규격화돼가는 건축의 미래상을 마주한 것 같아 착잡함을 지울 수 없다. 방문 때마다 매번 새로움을 발견했던 그 공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빛과 소리의 울림, 예상을 뒤엎는 상황들, 슬프게도 우리 시대 건축가는 이를 삭제해야 할 과거의 유산으로 간주한다. 청결, 효율의 중성적 공간과 관념, 미학화된 합리성이 떠받친 새 노량진 시장은 에스컬레이터의 편리함과 위생의 투명함, 그리고 먹거리의 깨끗함을 한껏 심화한 “근대”적 공간의 승리를 선언한다.
  그리고 이 승리의 공간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널려 있다. 마치 유럽의 18세기와 19세기 위생을 최고가치 삼아 유혈 낭자한 도축의 과정을 우리 시야에서 완전히 제거했듯이 말이다. 시장 한복판 등장하기 시작한 시계탑과 함께 가축의 “살점”들이 가판대 위 가지런하고 먹음직한 “음 식”으로 변환된 근대의 승리!
  이런 유럽식 근대가 옛 노량진 시장에서는 보란 듯이 소멸해 있다. 깨끗한 접시 위 신선함으로 포장되고 과정이 삭제된 음식이 아니라, 수조 안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이고 그 살 점을 떠서 건너편 식당으로 올린 후 손님에게 마지막으로 대접하는 매운탕까지의 순환, 그야말로 오래된 공격성과 사냥 의식(Ritual, 儀式)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나라하게 경험 하는 곳이다. 그래서 생선회의 단순한 섭취가 아닌 나의 지속을 위해 먹잇감에 대한 존중과 야만을 동시에 느끼는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펄쩍 뛰는 수중 생명을 나의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식의식(食儀式)의 공간이자 수렵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불편함을 담았던 그 부르탈 리스트 건축은 이제 없다. 대신 밝은 색채와 윤기 가득한 타일, LED 전등으로 하얗게 밝힌 새 건물이 우리 식생활의 원초적 욕망을 제거한다. 인간 중심의 먹이사슬에 숨겨진 비애를 드러내는데 이 위생적이고 알록달록한 공간은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
  청결과 합리화에 의해 떠받친 위생 담론의 사슬을 벗어나 “날것 그대로의 삶”을 담았던 옛 노량진 수산시장이 시간이 갈수록 더 그리워진다.

지난 2011년 노량진시장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간 모습이.
지난 2011년 노량진시장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간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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