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금) SK텔레콤의 가입자 관리 서버에서 고객들의 모바일 폰 유심 정보가 유출돼 전국적으로 큰 혼란과 공포가 퍼지고 있다. ‘SKT 알뜰폰 유저라 나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던 필자도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유심 교체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해킹 사태뿐 아니라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는 뉴스들 중 상당수는 IT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과 맞물린 ‘신뢰’의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 봇과 암호화폐의 급부상과 같은 이슈들도 그러한 예일 것이다.
인간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초 일반 지능의 도래를 열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들이 공존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전통적 화폐 기반 금융 시스템 에 대한 불신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등장 한 새로운 대안 화폐 플랫폼이라고 평가받는 것 같다. 이렇듯 세상에서는 공학을 통해 인간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신뢰’ 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자원이 투입되 고 있으며 아직까지 완벽한 ‘공학적’ 해결책 은 나온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파악 혹은 제안하고 가능한 최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공학자의 DNA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위대한 선배 공학자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무엇이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학’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일까? 이에 대해 필자의 머릿 속에는 이천 년 전 중동 지방에서 살았던 한 유명하지만 이름없는 선배 엔지 니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의 두가지 질 문을 생각하게 됐다.
(1) 공학자로서 내가 사회에서 기대하는 신뢰는 어떤 수준의 것인가?
(2) 공학자로서 나에게 맡겨진 신뢰의 책 임은 무엇인가?
세상의 창조주이시지만 동시에 이름 없는 엔지니어이셨던 (목수) 예수님은 유명한 산상수훈의 후반부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신뢰의 공학이란 신뢰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정량적으로 개선하고 구현하는 공학이기 이전에 그것을 고민하는 엔지니어 스스로가 신뢰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인식하고 자신이 보유하고 신뢰하고 있는 기술을 성실하게 사회에 전하는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글을 준비하면면서 공학자로서 위에 제안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개인적인 답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기대하는 ‘기술’에 대한 신뢰의 수준을 생각하니 일차적으로는 거저 누리고 있는 온갖 기술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기여도가 0이기 때문에 원하는 신뢰의 수준이라는 것 에는 짧은 고민을 통해 답을 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를 통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얻은 것 같다. 내게 맡겨진 책임은 기술을 통해 누리는 이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사회에 나의 공학적 지식을 전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을 적용하며 얻게 된 이 깨달음이, 나의 선배 엔지니어이자 구주이신 예수님의 뜻이길 바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