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창조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ChatGPT로 대표되는 LLM 모델이 과제를, 리포트를, 자소서를, 각종 서류 및 이미지·음악·동영상을 창조(?)하고 있다. ChatGPT가 얼마나 유용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학생들은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25년 현재 대학 생활을 하면서 ChatGPT를 사용하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에게는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지금부터라도 적극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ChatGPT는 웬만한 교사보다 낫고 불평 한번 없이 같은 질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다 른 방식으로 설명해 준다. 미래의 일이라고생각했던 아이언맨의 자비스, 프라이데이와 같은 개인형 비서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구글의 아성이 openAI에게 위협받고 있다. 오죽하면 구글이 우리는 서치(검색)회사가 아닌 에이전트(개인비서) 회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을까?
이런 혁신적인 기술이 일상화가 된 지금 그리고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에게 어떤 것이 중요할까?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두 가지 질문으로 중요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실력에 대한 것이다. 여러분은 ChatGPT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사람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바둑 세계 최강자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여러분이 ChatGPT보다 높은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될 자신이 있습니까? 벌써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빌 게이츠는 앞으로 10년 이내 의사, 교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사범대와 의대가 없다) 또한 지브리 프사 열풍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생성 기능은 아마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집으로 돌려보 낼 것이다. 그밖에 많은 단순노동들도 모두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실력을 키 워야 할 것인가? 무엇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 될 것인가?
위 질문은 본고의 두 번째 질문과 닿아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존재의 목적에 대한 것이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ChatGPT가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니 걔가 대부분의 일을 하게 될 것 이다. 그럼,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인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ChatGPT보다 능력이 떨어지는데 왜 인간은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일까?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기에 모든 동식물을 지배하며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면 인간보다 나은 존재가 나타났을 때 우리도 역시 그것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는 이제 ChatGPT 앞에서 인간 존재의 이유와 가치에 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첫 줄에 쓴 요한복음은 rephrase해서 미래 사회를 과장되게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 이 그를 통해 창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때 인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왜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 게 살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