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광의 시대, 유럽여행이 대중화된 지금 로마를 여행하는 건 아직도 특별하다. 고대 문명의 유적이 도심 곳곳 발끝에 널려 있는 도시, 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그래 서 지금도 우리에게 전달된 2000년 전 유적을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기념비”라 할 만하다.

  그런 로마에서도 판테온은 여러 유적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반쯤 무너진 콜로세움과 달리 판테온은 장구한 세월을 이겨내고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지어 진 판테온, “판(pan)”은 모두를 뜻하는 접두어이고 “테온(theon)”은 신성 혹은 초월을 뜻하는 단어이니 다수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당시로선 꽤 중요하고 숭고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건설 연도가 기원후 126년에서 128년으로 알려져 무려 1900년 가까이 비바람에 맞서 견고하게 지탱해온 셈이다. 철근조차 없이 고대 콘크리트로만 지은 이 건축물은 어떻게 이처럼 오랜 세월 지탱할 수 있었을까?

  CASH(calcium aluminate silicate hydrates)로 불리는 고대 콘크리트, 그 남겨진 퍼즐을 현대 과학계는 맞 춰보려 하지만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은 앞으로도 한참이 걸릴 것 같다. 요즘은 고대 콘크리트의 “자가 치유 능력”이 화제인데 고대 시멘트인 화산재로 섞인 석회 덩어리(lime clast)나 화산재 일종인 포졸라나(pozzolana)의 작용, 더 나아가 저온으로 흙과 함께 혼합한 케올리나이트(kaolinite)가 고대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을 메워 세월이 갈수록 더 단단해진다고 관찰한 연구들이 나와 있다. 포틀랜드 시멘트로 대표된 현대 콘크리트와 다른 특징들을 지 해의 고대 문명에서 발견한 이들 연구가 흥미롭다.

  “인공지능”의 첨단 문명 속에 살지만, 현대 건설 방식과 집 짓기는 유독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한다. 특히 건설의 주재료가 돼 버린 현대 콘크리트의 소모품 같은 성격, 고작해 야 한세대를 넘기지 못하는 “30년 살이” 내구성은 판테온의 콘크리트와 비교하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세대마다 다시 건설되는 콘크리트 환경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기후적 해 악이 당연하다고 모두 생각하는 것 일까? 온전한 삶의 환경보다 돈으로 치환될 공간 만들기에 전도된 사회… 뜨겁다 못해 익어버린 여름, 폭우와 함께 더 뜨거워질 미래, 튀겨질 것 같은 복사열의 아스팔트와 거대한 아파트 축열 벽이 소유의 욕망과 자본화된 시대 정신을 대변한다.

  근대화의 거대한 급류가 쓰나미처럼 동아시아 건축 문화와 세계관을 휩쓴 지금, 산과 물, 바람과 생명, 에너지와 자연, 그리고 이들 질서의 접점이었던 집 짓기의 혜안을 되돌릴 길은 없을까? 에어컨만이 생명줄 이 된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건물 안은 이미 피난처가 된 지 오래다. 불과 반세기 만에 겨울보다 여름이 에너지를 더 소모하는 시절이 됐다. 열역학의 제1 법칙이 암시하듯 내가 느낀 지금의 시원함은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의 숨막힘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에어컨의 실외기가 나 몰라라 이미 체온을 넘어선 도시에 그 열기를 연방 뿜는다. 결국, 더 뜨거워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내부는 건축의 두꺼운 외피에 의해서만 보호받을 처지에 놓였다. 통풍보단 단열이 강조되는 시대, 콘크리트 도시가 정의한 실내는 우주 캡슐처럼 완벽히 밀폐된 혼자만의 버블이다. 한치의 외부 온 도 투과를 용납해선 안 된다!

  판테온 콘크리트로 대표된 지중해 사람들의 건축 세계관과 건설문화, 그들의 생활세계가 빚은 재료가 장구한 거리와 1900년의 세월을 넘어 한반도에 정착해 있다. 안타깝다! 70년 전 이 이질적인 재료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재개발 재건축으로 막대한 콘크리트를 폐기해 왔고 그 자리에 더 거대하게 부은 콘크리트로 결국 잠 못 드는 열대야 도시를 만들었다. 다른 기후대에서 수 천 년 지속한 재료를 수입해 역설적 으로 여름마다 잔인하게 대기를 끓게 만든 2025년, 한국의 건축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콘크리트를 넘어선 새로운 집 짓기 사고가 필요하다. 이 생각은 “기념비” 같은 과거 유럽 중심 건축관에서 탈피한 태도의 전환이고 자연과 지구적 균형에 대한 시각의 확대이기도 하다. 이 못다 한 얘기를 다음 학기 “건축 아닌 건축”을 통해 전해 볼까 한다. 모두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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