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10년 미국에서 들어와 본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수학 과 학생들이 얼마나 수학 전공에 대하여 자신감과 확신이 없는가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수학 전공이라면 “Wow! Thumbs up!”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을 보는 듯하는데, 우리 수학과 학생들은 본인이 수학과인 것이 좀 부끄러운 듯..
미국 노동통계국은 “Mathematicians and Statisticians”의 2023-33년 고용 증가율을 11%로 예상했고, Resume Genius 2025년 ‘고연봉-저스트레스 직업 Top 10’은 수학자를 5위에 등재해 Work-Life 밸런스 우수 직군으로 발표했으며, 이는 미국에서 수학이 얼 마나 괜찮은 전공인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제 반가운 소식은 인공지능 시대에 드디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수학의 부활’이라 일컬어도 되겠습니다! 딥러닝 모델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미분, 최적화, 대수적 구조는 모두 수학의 언어 안에서 서술되고 증명됩니다. 자율주행 차량의 경로 계획, 금융시장의 위험 관리, 신약 개발을 위한 단백질 접힘 예측까지, 현대의 난제들은 수학 없이는 풀 수가 없습니다.
사실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기초학문들 이 다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서울대 국문학과 나민애 교수님과,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님의 대중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인공지능 사회에서 살아 남을 인간은 이해력과 포용력, 다양성을 가진, 인간을 잘 이해하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는 패턴없이 그림을 그리므로 아직 피카소풍의 그림을 잘 그리는 AI는 없는 것처럼 (패턴이 있는 모든 것들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하지요), 창의적이며, A+B를 넣으면 A’B’으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C라는 답을 낼 수 있는 인간! 철학, 고전문학, 논리 등 인간 이해를 잘 해서, 넓게 보고 깊게 보고 C라 는 통찰의 답을 낼 수 있는 그런 인간 말이지요.
문학이나 역사학과 더불어 수학 역시 인간 정신이 창조한 순수한 사유의 산물이며, 언어나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 언어입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0 은 0이고 더하기는 +이고, 세상에 이처럼 편한 언어가 있나요? AI 연구자들도 함수를 고차원에서 어떻게 매끄럽게 근사할 것인가, 대규모 행렬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해할 것인가...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알고리즘 뒤에는 엄청난 논리의 수학적 기초가 숨어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논리를 몰라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뉴턴이 미적분으로 자연법칙을 통합했듯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데이터를 소비하는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원리를 추출하는 수학적 능력에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