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을 아시는지요. 시간은 항상 속절없이 흐르기에, 그 속에 담긴 자그마한 인생은 터무니없을 만큼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느 신이 시간을 관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자꾸만 야속하게 도망가서 붙잡고 싶은 것들을 놓치게 만들고는 합니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리기’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막이 내린 기나긴 연극으로 상상해보면 어떠신지요. 배우가 밟은 무대는 그 열띤 움직임에 긁혀 마모됩니다. 배우들은 상황에 따라 대사를 달리하기도, 기침하기도, 넘어지기도 합니다. 모두 예기치 못했으며 다시는 의도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한 번 뿐인 순간들입니다. 연극이 끝나면 마음을 간질이는 여운이 남아 나를 물들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면, 나를 자극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 얼룩덜룩해져 그 물들었던 형태는 찾아볼 수도 없게 됩니다. 내가 가졌던 모든 것에 대한 약간의 여운만 간직한 채,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 모두 한데 어우러 져 나를 완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모든 관계는 여행인 것입니다. 김영하 작가의『여행의 이유』에서는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며,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을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슬픔으로부터 바짝 긴장시키는 헤어짐이, 특별히 나 자신을 바꾼 관계의 꼬리라면, 그 관계는 끝내 주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립고 아쉽기만 한 이별이 아니라, 정체성을 조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믿어봐도 좋을 듯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더는 볼 수 없는 이별은 너무나도 큰 고통을 동반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상상해 봅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한 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더없이 기 분 좋았던 2025년 8월 8일.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서만 꽃길을 걸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우리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이별을 연습합니다. 할머니가 나 오는 연극은 막을 내렸기에 그 여운을 조금만 더 음미하고, 이제는 할머니가 없는 무대 위에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떠난 여행은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 다웠기에, 사사로운 감정이 망치지 못하도록 얼른 마쳐야겠습니다. 그러니 할머니는 부디, 가볍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새로운 무대에서 멋진 여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헤어짐을 아시는지요.

  이별 앞에서 그 어떤 노력도 무색해질 만큼 슬픈 이들에게, 주제넘을지 모르겠지만 전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상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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