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자음과모음』, 2025년 봄호)는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덤 속에 파묻어 둔 진실과의 필연적인 조우를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김지연은 젊은 세대의 잔잔한 일상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일가를 이룬 작가인데요. 점차 작품 세계가 사회적 배경과 존재의 비의를 향해 넓어지며 동시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무덤을 보살피다」는 존재에 감춰진 진실의 심연과 그것이 거느린 역사적 어둠에까지 작가적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문제작입니다.
이 작품에서 오랫동안 감춰진 진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무덤 속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 관련한 진실이며, 두 번째는 길을 잃고 헤매던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내(강민석)와 관련한 진실입니다. 이 두 가지 진실은 결국 화수 자신의 진실에까지 이어집니다.
화수는 고종사촌인 수동의 제안으로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묘를 찾아가는데요. “이제 와서는 잘 믿기지 않지만”, 한때 화수는 할아버지를 사랑했었습니다. 여름방학에 화수가 자신의 집에 오면, 할아버지는 화수를 자전거에 태워 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손녀가 전교 일등을 한다며 자랑”을 하던 주책맞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시간이 흘러 화수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하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 가여운 여자를 꼭 뽑으라”고 부탁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가여운 여자’의 아버지가 집권했던 시절,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할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로 마약에도 손댄 적이 있으며, 그 일로 참전용사이지만 국립묘지에도 묻히지 못합니다. 이런 할아버지의 진실을 마주하며, 화수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점점 희미해져 갔던 겁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여전히 할아버지가 자발적으로 국립묘지 대신 “할머니가 있는 선산에, 가족들 가까이에 있고 싶어”했다고 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할아버지의 진실을 “포장”하는 데 급급할 뿐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할아버지의 진실은 여전히 무덤 속에 감춰져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무덤과 조우하기 전에, 화수에게는 먼저 조우해야만 하는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화수는 한참을 헤매다가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는 한 남성을 만나는데요. 의문투성이인 이 남성은 놀랍게도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지워진 존재였던 막내삼촌 민석입니다. 민석은 한때 집안의 자랑이었지만, 이후 범죄 이력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가족에게서 배제된 인물입니다. 그런 민석은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에도 몰래 다녀갈 정도로, 가족과 교류도 없이 소외된 삶을 살아갑니다. 민석은 가족들로부터 산속의 작은 땅 하나를 얻어, 그곳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간신히 생존을 이어갈 뿐이네요.
할아버지와 막내 삼촌의 감춰 둔 진실과 마주한 화수는 이제 자신의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도 베트남 정글을 헤매는 듯, 화수에게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했는데요. 할아버지의 재촉에 못 이긴 화수는, 할아버지를 꼭 껴안고 힘을 점점 세게 주었던 겁니다. 당연히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일 리가 아니었으며, 화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 순간 화수는 자신의 행동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어떤 분풀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풀이’란 자신이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가여운 여자’에게 투표했다가 친구들로부터 당한 비판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일이 있고, 며칠 후에 숨을 거두고 마는군요.
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는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본원적 폭력과 소외에 대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억, 잊혀진 삼촌과의 만남을 통해 화수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의 균열을 경험하며,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겁니다.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한 공동체인 가족 역시도 수많은 진실(기억)을 매장한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군요. 화수는 “세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수록 기존에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무너짐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인정”하는데요. 이러한 무너짐과 인정을 화수는 자신이 물려받은 세계가 “패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가슴 아픈 ‘패배’를 일컬어 ‘성장’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며,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란 혹은 인간이란 숙명처럼 슬픔을 안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