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는 물리적인 세상은 6,400킬로미터 반경의 지구 표면이며, 섭씨 ±50도의 온도 영역이다. 이 환경에서도 우리는 미터, 센티미터 등의 단위를 사용하며 충분히 다양한 현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재미있고 신기한 일들은 옴스트롱(0.1나노미터) 단위의 작은 세상에서 일어나니 이제는 익숙하게 듣고 있는 양자 현상이다. 온도 측면에서도 영하 273도, 즉 절대온도 0K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양자 현상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충격적인 현상으로 다가온다.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헬륨의 초유동성 이야기다.
우리가 풍선에 넣는 가벼운 기체로 잘 알려진 헬륨은 원자번호 2번, 주기율표의 제일 오른쪽에 위치한다. 헬륨 원자는 혼자 있어도 안정한 물질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물질은 온도가 내려가면서 플라즈마, 기체, 액체를 거쳐 고체가 되지만, 오직 헬륨은 대기압에서는 고체가 되지 않는다. 고체란 구성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인데, 절대온도 0K에서도 존재하는 헬륨의 큰 양자 진동 때문에 원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특별한 액체 헬륨은 1938년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 초유체 현상의 발견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앨런(John F. Allen)과 미제너(Misener)는 절대온도 2.17K 이하로 식힌 헬륨에서 점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 온도를 ‘람다 포인트’라고 부른다. 점성이 없는 유체는 여러 가지 신기한 현상을 보인다. ‘영원한 흐름’, 도넛 형태의 용기에 초유체를 담아서 한 번 돌려놓으면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돌아간다. ‘벽 타기(creeping)’ 또는 ‘적심(wetting)’ 현상, 그릇에 초유체를 담아 놓으면 용기 벽을 타고 올라가 밖으로 모두 흘러넘친다. 모세관 현상의 극한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 결과 모든 접촉면을 헬륨 원자 하나의 두께로 적시기 때문에, 보통 액체 상태의 헬륨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원자 단위의 좁은 틈도 2.17K 아래로 온도가 낮아지면 통과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마법을 보는 듯한 이런 실험 장면들은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보통의 양자 현상은 원자 단위의 미시 세계로 내려가야 관찰할 수 있지만, 초전도 현상과 더불어 초유체 현상은 거시적인 양자 현상으로 우리의 눈으로 직접 그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액체 헬륨에서의 이러한 초유체 현상은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라는 이론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실은, 헬륨에는 두 가지 동위원소가 있다.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로 이루어진 헬륨-4와 중성자가 하나 부족한 헬륨-3.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초유체 이야기는 헬륨-4에 대한 것이다. 헬륨-3에서도 초유체 현상이 보이는데, 그 기작이 헬륨-4의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다. 스핀과 궤도 운동이 얽혀 초유체 안에서도 다양한 위상이 생기고, 그 안에는 초기 우주, 블랙홀과 같은 모든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이 연결되어 있어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