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점 깨고 글로벌 분리막 시장에 도전하다 – ㈜TCMS 신태용 대표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시스템)의 급성장으로 2차전지 산업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 산업으로 떠올랐다. 배터리의 안정성과 성능을 결정짓는 네 가지 핵심 소재 ―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그리고 분리막. 이 중 분리막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본과 중국 기업의 독점 구도에 놓여 있었다. 바로 이 틈새를 파고든 스타트업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장비의 핵심 부품인 ‘연신 클립’을 국산화하며 성장 중인 ㈜TCMS, 그 선봉에 선 신태용 대표를 만나 그의 창업 여정을 들었다.
섬유에서 2차전지로, 위기의 산업 속 기회를 찾다
신 대표의 출발은 의외로 섬유 산업이었다. 섬유회사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그는 “국내 섬유 산업은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섬유를 제조하는 기술과 분리막을 제조하는 기술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관점 전환이 창업의 단초가 됐다.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클립. 분리막 장비 공정에서 연신을 담당하는 작은 부품이지만, 하나라도 없으면 전체 라인이 멈추는 절대적 존재다. 당시 100% 일본 수입에 의존하던 품목이었다. 2020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건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국내 대기업 등 기업들이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신 대표가 이끄는 TCMS는 국산화 개발에 나섰다. 불과 세 명의 팀이었지만 절박함이 기술을 이끌었다. 국내 대기업 라인에서 직접 PoC(개념 검증)를 거치며 성능을 입증했고, 국산화에 성공했다.
돈보다 사람, 윤리경영이 우선
창업 초기 자금은 오직 퇴직금 2천만 원. 절반은 법인 자본금으로 넣고, 절반으로 회사를 꾸려 갔다. 그러나 5개월 만에 바닥났다. 다행히 정부 과제를 수주하고 청년 창업 대출을 활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엑셀러레이터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다.
신 대표는 솔직했다. “초기에는 돈 때문에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40명의 직원, 그 가족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제 욕심보다 직원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제 우선순위입니다.”
그의 철학은 명확하다. 윤리경영, 그리고 함께 가는 문화.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를, 회사보다 임직원을 우선하는 태도가 곧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비츠로셀 장승국 대표를 꼽았다. 화재로 전소된 회사를 2년 만에 재건하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며 신뢰를 지켜낸 사례를 소개하며 “저도 그런 리더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본 제품과의 차별화, 맞춤형 설계로 승부
일본 제품은 한 번 만든 설계를 잘 바꾸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술 트렌드 변화에는 민첩하지 못하다. TCMS는 가격 경쟁력, 빠른 납기, 맞춤형 설계(커스터마이징)로 차별화를 꾀했다. 고객사의 장비 조건에 따라 자력(磁力)을 활용한 클립 설계 등 새로운 옵션을 제시해 맞춤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었다.
이 전략은 통했다. 현재 매출의 90%는 중국에서 발생한다. 중국 역시 클립을 만들 수 있지만, “하루에 한 번만 공정이 멈춰도 손실이 10억 원에 달한다”는 리스크 때문에, 검증된 국산 부품을 쉽게 대체하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과의 검증 경험은 곧 신뢰의 보증수표였다.
스타트업에 체계는 필수
창업 5년 만에 TCMS는 직원 40명, 누적 투자 207억 원, 매출 1,200억 원을 바라보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여전히 긴장한다.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나 내년에는 매출 120억 원 이상을 달성해 BEP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가 성장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영지원부 설치였다. “10명 규모를 넘어서면서 체계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노무, 인사, 회계, 내부 결재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경영지원부에는 6명이 근무 중이다.
IPO, 그리고 차세대 분리막으로
TCMS는 이미 시리즈 B까지 투자 유치를 마쳤고, 2027~2028년 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창업 3년 차부터 외부 감사를 받으며 IPO 기준에 맞춘 경영 관리를 해왔습니다. 초기부터 상장 경험이 있는 인재들을 영입했기 때문에 IPO 준비는 체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IPO 직전 목표는 매출 1,200억 원, 시장점유율 5%, 직원 90명 규모다. 기업가치는 2천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특히 차세대 내열 분리막 개발이 성패를 가를 열쇠다. “장비 사업으로만 IPO를 하면 2천억 언더일 수 있지만, 분리막 사업이 더해지면 기업가치가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실패는 빠른 보완의 기회다
창업 이후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묻자 그는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 후 보완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중국 고객사에 납품한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표를 포함한 전 직원이 며칠 밤낮을 새워 무상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돈을 좇기보다 고객 신뢰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합니다.”
창업은 준비된 도전이어야 한다
후배 창업가들에게 전하는 조언은 단호했다. “창업은 힘들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습니다. 다만 아무 준비 없는 창업이 아니라, 시장 조사와 고객 니즈를 철저히 확인한 준비된 창업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원 제도가 많아 도전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맺는 말
신태용 대표의 창업기는 스타트업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고객 문제 해결, 준비된 도전’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드라마틱하다. 퇴직금 2천만 원으로 시작해 일본 독점 품목을 국산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30대 창업가. 그는 “돈보다 사람”을 강조하며 윤리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결국 사람, 신뢰, 그리고 준비된 도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