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의 「김춘영」(『창작과비평』, 2025년 여름호)은 김춘영이라는 한 여성을 통해, 개인의 진실이 발화되는 방식에 대하여 탐문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연구자 박정윤은 김춘영을 방문하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때의 ‘사건’이란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발생한 소위 ‘사북사건’을 의미하는데요. 이 ‘사건’은 탄광 노동자들의 대규모 항쟁으로서, 한때 사북읍 시가지가 노동자들에 의해 4일간 점거되기도 했습니다. 노조 지부장의 가족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등 격렬한 상황이 이어졌으며, 이후 계엄사령부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된 비극적 ‘사건’입니다. 박정윤은 면담자가 되어 구술자인 김춘영의 이야기를 채록하고자 합니다. 한 계절에 한두 차례씩 일 년간, 김춘영의 집에서 김춘영과 박정윤의 일대일 면담이 진행되는데요.
정윤이 속한 ‘지역과 여성의 기억’ 아카이브 연구팀은 탄광촌 ‘여성’의 삶을 채록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탄광 사회사도 주민 운동도 노동 생활사만도 아닌 각 여성의 이름 석 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인데요. 특히 그 역사적 ‘사건’에서 “여성 경험의 특수성”을 수집하고 재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테면 “광부들이 계엄사령부로부터 물고문을 받을 때 광부의 아내들은 성고문을 받았다는 증언 같은 것들”이 나와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면담이 거듭될수록, 정윤은 김춘영에게서 예상치 못한 면모를 발견합니다. 이는 정윤이 연구팀의 다른 구성원들과 달리, ‘구술자의 고유한 생애를 사건으로 환원’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정윤은 “김춘영이 말하는 김춘영의 기억을 들음으로써 김춘영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한 개인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면담을 통해 김춘영은 그 사건의 주체도 아니며, “광부의 아내”나 “여성 광부”도 아니었던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탄광촌이 호황이었던 시절, 김춘영은 술집을 하면서 광부들의 피 묻은 돈을 긁어모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 월급봉투를 김춘영과 나눠 가진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며, 그렇기에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김춘영을 저주할 정도입니다. 김춘영은 우리가 역사적 대사건에서 흔히 기대하는 피해자나 가해자도 아닌, 그저 살아남은 존재였던 겁니다.
『김춘영』의 중핵은, 면담에 임하는 김춘영의 태도에 있습니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담담하게 박정윤을 대할 뿐입니다. 침묵에 가까운 그녀의 절제된 태도는 역사적 대사건을 증언하는 일반적인 태도와도 구분되는데요. 그렇다고 그녀가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김춘영이 화운령에서도 좀 더 올라간 해발 천 미터의 외딴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이러한 자발적 고립은 매우 철저한 것으로서, 대민 지원을 나왔다가 조난 위기에 처한 군인들을 도와주면서도, 김춘영은 애써 “군인들과 전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정도입니다. 김춘영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증명하려는 어떠한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단절과 침묵이야말로 말보다 더한 정서적 파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메시지의 전달이야말로 최은미의 「김춘영」이 지닌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침묵은 언어의 가장 깊은 형태”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김춘영은 침묵을 통해 자신이 겪은 상처와 소외를 더욱 깊은 차원에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춘영은 과거의 ‘사건’에 대해 구구절절히 발화하지 않지만, ‘사건’의 현장에서 은둔의 삶을 살면서 그녀가 결코 ‘사건’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사건 속에 살고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캐스린 말루(Kathleen Malu)는 “트라우마가 서사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작동하며, 독자에게 감정적 충격을 유도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소설 「김춘영」이야말로 이러한 주장에 그대로 부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은미는 「김춘영」에서, 침묵을 통해 역사적 대사건이 발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럽게 그동안 이루어진 역사적 대사건의 재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당사자조차 침묵으로만 증언할 수 있는 것이 역사적 대사건이라면, 제삼자가 과연 그 사건을 이해하고 발화한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냐는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김춘영」은 김춘영의 집을 나온 박정윤이 도룡이 연못터에 있는 텐트 속의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정윤이 텐트 속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타인의 침묵을 이해하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우리의 시도가 과연 가능한지를 묻는 듯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침묵이라는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