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의 단편소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현대문학』, 2025년 1월)는 한 인간의 성숙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작가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가소설(Künstlerroman)입니다. 이 작품에서 인간으로 성숙하는 과정과 한 명의 작가로서 탄생하는 과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네 명의 누나들 사이에서 “내동댕이쳤다 움켜쥐고 움켜쥐었다 내동댕이치는 주먹” 속의 “공깃돌”처럼 성장합니다. 그것은 스스로에 의해 “속눈썹 위에 올려진 성냥개비 같은 인생”으로 규정되는데요. “내면까지 누나들의 세계와 동기화”되었다고 할 만큼 누나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래 수컷들의 불가항력적 적의” 앞에서도 조용히 순종할 뿐인 ‘나’는 현실에 안주하며 수동적으로 성장한 그야말로 ‘도련님’입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런 수동적인 태도는 그대로인데요. 지방 출신인 ‘나’는 S대 영문과 90학번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합니다. 처음 ‘나’는 세속적 출세만을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다른 친구들처럼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나가 “주먹을 흔들며 살벌한 구호를 외치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경직되고 속이 울렁거려하는” 변함없는 ‘도련님’입니다.

  최고학부에 다니는 덕택에 ‘나’에게는 과외가 끊이지 않는데요. 압구정동에 사는 고등학생 강선재의 과외를 하게 되면서, 모든 변화는 시작됩니다. 1990년대 압구정동은 정말 대단했는데요. 그곳에서는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부티 나는 애들”이 “날렵한 스포츠카를 뽐내듯” 몰고 다니는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었던 것입니다. 강신재가 사는 집에 방은 일곱 개나 있으며, 거실은 강당만 합니다. 과외비가 고액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간식으로는 맥도날드 햄버거, 바닐라 밀크셰이크, 직접 구운 애플파이와 생크림 케이크가 나오고는 하네요.

  진정한 교육은 억압에서 해방으로 나아가는 실천일 텐데요. 이러한 실천은 일반적으로 가난한 지방 출신의 대학생 ‘나’가 부잣집 고등학생 ‘강신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상식일 겁니다. 그러나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에서는 반대입니다. “게스 청바지를 입은 진짜 도련님” 강신재는 『프랑스 혁명사』, 『반항하는 인간』, 『구토』,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을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선생님은 지방에서 상경한 S대생 ‘나’가 아니라 고등학생이자 압구정동 “도련님”인 강신재입니다.

  ‘나’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강신재는 “웃겨 죽겠는데 아무도 웃지 못할 때 있잖아요. 그럴 때 나서서 큰 소리로 웃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데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꿈이 직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강신재가 말한 웃음이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웃음은 저항의 시작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강신재가 말한 웃음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억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신재는 가출까지 감행하며, 이후 ‘나’가 다니는 S대학에 찾아왔을 때 그의 가방에는 “촌지를 받지 않는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써 있는 전단 뭉치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강신재는 자신이 좋아하던 불어교사가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에 해당되어 해고당하는 일을 겪고 나름의 ‘투쟁’에 나섰던 것입니다.

  결국 집회가 열리면 도서관에 박혀 있기나 하던 ‘나’는 강신재를 따라 집회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것은 “속눈썹 위에 올려진 성냥개비 같은 인생”이라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가 “속눈썹 위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마음”으로 살 것을 결심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이후 “가출한 과외 학생이 등장하는 소설로 작가”가 된 ‘나’는 아예 강신재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 버립니다. 그 꿈은 “아무도 웃지 못할 때 큰 소리로 웃어주기. 같이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을 때 소리 내어 울어주기.”에 해당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 작가가 꿀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꿈”일 텐데요.

  ‘명사’가 고정된 상식의 세계를, 이에 반해 ‘동사’가 생생한 현실의 세계를 의미한다면, ‘압구정동 도련님’이 ‘지방 출신 도련님’을 의식화시키는 소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동사로서 작가가 꾸는 꿈’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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