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예술 사이 ‘자금의 다리’

  첫 투자 알림은 새벽이었다. “전혀 모르는 고객이 100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조영린 에버트레저 대표는 푸시 한 줄을 ‘출발선’으로 기억한다. 추상적 구호보다 투자 버튼이 눌리는 순간을 더 믿는 사람. 목표는 단순했다. 돈은 도는데 파이낸싱은 막힌 예술·콘텐츠 시장에 금융 인프라를 깔아주는 것.

  그 배경은 의외로 촘촘하다. 중국계 상업은행에서 자금 운용 딜러로 출발해 미국 금융권 FX를 거쳤고, 로스쿨과 변호사를 지나 P2P 금융(8퍼센트)에서 중저신용자 모델링과 기관 자금 유치를 다뤘다. 집에서는 방송국에 다닌 아버지 덕에 예술가 친구들이 많았다. “재능은 넘치는데, ‘프리랜서’라 금융 문턱을 못 넘는다”는 모순을 목격 후, 그는 결심한다. “예술과 금융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자.”

  ‘예투’와 ‘에버링크’: 후원이 아닌 투자로

  해법은 두 축이다. 첫째, 아티스트·콘텐츠에 직접 투자하고 향후 수익을 배당처럼 나누는 ‘예투(Art Fintech)’. 둘째,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연결해 수익 창출을 돕는 ‘에버링크’다. 두 서비스의 바닥에는 AI 가치평가(미술·영화·공연의 데이터 기반 추정)와 블록체인 정품 인증이 깔린다. 불투명과 카르텔로 대표되던 시장에서 ‘신뢰’를 수치로 제시하려는 시도다.

  조 대표가 들이대는 숫자는 더 차갑다. “예술대 졸업생 연 6만 명. 이 가운데 20%만 활동, 연소득 2천만 원 이상은 1% 미만.” 후원이 아닌 투자 언어로 예술을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해외의 마스터웍스가 초고가 미술로 좁게 파고든다면, 에버트레저는 미술·뮤지컬·영화 등 콘텐츠 전반으로 외연을 넓힌다.

  창업의 장면들: 2천만 원, 그리고 집요함

  그의 창업은 거창하지 않았다. 2천만 원으로 법인을 세우고, 작은 엔젤을 묶어 첫 MVP를 밀어 올렸다. PR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는 그는 “초기에는 보도자료·기자 팔로업이 곧 채용 브랜딩”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변호사 출신 창업자의 신뢰·투명 메시지가 초반 인재 유입에 힘을 보탰다.

  초기 검증은 더 원시적이었다. 아티스트를 한 명씩 만나 네트워크를 늘리고, 투자자는 지인→인스타 커뮤니티 타게팅→블로그·유튜브 인플루언서로 확장했다. 고객 피드백이 들어오면 승인 알림 지연·열람 UX 같은 사소한 불편도 밤새 고쳤다. “스타트업의 무기는 속도”라는 말이 구호에 그치지 않던 시간이었다.

  규제라는 현실: 다각화와 글로벌 우회

  국내 STO(토큰 증권) 법제화가 지연되자, 그는 ‘한 축에 기대지 않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 에버링크 조기 론칭: 투자중개 외의 매출 포인트 확보

  • AI 가치평가 SaaS/API: 기관·플 랫폼에 ‘붙는’ B2B 수익원

  • 정품인증 인프라: 컬렉터·갤러 리 리스크(진위·분쟁) 완화

  동시에 영국(법인 설립), 일본(설립 임박), 미국(법인 준비)으로 거점화를 진행 중이다. 국내 규제 해소가 느리면, 현지 규제 아래에서 표준을 만든 뒤 연결하는 방식이다.

  사람과 숫자: 문화·리더십·지표

  조직 문화는 ‘존칭(~님)’과 강도 높은 피드백의 공존. OKR과 6~8주 타운홀로 얼라인을 맞춘다. 숫자는 더 냉정하다. 임직원 10명, 목표는 내년 BEP(매출 20억 안팎) 돌파. 타운홀에서 그가 자주 반복하는 문장도 숫자의 언어다. “투자는 대출과 같습니다. 결국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프리A 이후 성장엔 매출 드라이브를 전면에 내건다.

  채용의 교훈은 거칠다. “인사가 다다.” 레퍼런스 체크 미흡으로 겪은 뼈아픈 사건 이후, 수습 3개월·강화된 레퍼런스가 룰이 됐다. 반대로 핵심 인재 이탈 제로라는 기록은, 투명한 보상(스톡옵션 중심)과 지표 기반 의사결정의 결과다.

  PMF와 고객: 30대에서 50·60대 WM으로

  핵심 투자자는 30대 중후반 남성으로 시작했지만, 최근 50~60대 자산 관리(Wealth Management) 고객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은행 WM센터 세미나, 지역 금융사 모바일 뱅킹 연계 등 전통 금융 채널과의 결합이 유효했다. 전환 채널은 네이버 블로그 인플루언서·유튜브가 강했고, 캐시 리워드·빠른 회수 구조도 실험 중이다.

  창업자의 좌표: 왜 이 일을 하는가

  그의 핵심 가치는 신뢰·투명성·지속 가능. 그래서 표어도 “예술이 금융이 되는 올바른 공식”이다. 후배 창업가에게 그는 세 가지만 남긴다.

  1. 정말 원하는 것을 먼저 분명히 하라.

  2. 인사가 다다를 잊지 말라.

  3. 일단 창업을 해봐라.

  다음 장면: 표준과 규모의 게임

  에버트레저의 야심은 표준화다. 영국·일본·미국을 잇는 플랫폼–거점 결합 모델로 예술 가치평가·정품 인증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 목표는 3~5년 내 매출 1,000억·글로벌 아티스트 10만 명 연결. 허황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다. 규제—제품—해외 거점이 동시에 회전하기 시작했고, 첫 알림 이후로 ‘투자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박주영 교수, 조영린 대표
왼쪽부터 박주영 교수, 조영린 대표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