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중 미디어에서 “학교는 감옥이다”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입시 지옥으로 변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짚음과 동시에 이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 실체, 학교 공간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영향인지 이후 지어진 많은 학교 공간은 외견상 최소한 색다르고 흥미로운 공간들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록달록한 실내와 아기자기한 외부로 통하는 공간, 하지만 여전히 수능과 대입을 위한 욕망이 지배하는 학교, 정말 새로워졌을까?
학교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근대화가 수입한 흥미로운 효율이 내재해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 효율은, 최소 노력에 의한 최대의 전파, 가능한 소수 선생에 의한 다수 학생의 훈육이라는 경제성을 담았다. 입시 지식의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긍정하게 만드는 고정된 욕망에 맞춰진 교실, 교탁과 책상의 배치에 담긴 관계의 서사를 읽어본다. 시각에 의해 지배되는 이 관계 안에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지식의 서사는 “앎으로써 생산되는 순종하는 신체”로 변화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라고 간주된 하나의 욕망으로 수렴된 신체를 훈육하는 공간, 학교만이 이런 근대 효율의 논리를 가지고 있을까? 유럽이 일본을 통해 전달한 이 공통분모를 이해하기 위해선 18세기 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말한 제러미 벤덤의 공리주의와 근대적 공간의 탄생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특히 벤덤의 일망 감시(Panopticism)는 지금까지 긍정되던 앎과 권력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
미셸 푸코는 일망 감옥(Panopticon)의 해석에서 근대의 탄생이 가져온 합리와 효율의 신화를 들여다본다. 일망 감옥 중앙의 감시탑은 지하 통로를 통한 어둠 속 간수의 공간이며 원형으로 쌓인 많은 감방은 감시탑을 중심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 수많은 감방 안 일탈의 행위는 감시탑에서 항시 감시되고 일탈 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신체적 처벌이 동반된다. 하지만 감방 안 죄수는 간수의 존재를 전혀 알 길이 없다. 보이지 않는 권력과 항상 감시에 노출된 신체, 이 시선의 관계에서는 어둠 속 간수의 존재가 점차 내면화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한 감시가 시작된 것이다. 개인의 욕망과 행위를 조절하는 근대적 신체, 자신을 감시하는 자발적 복종과 사회적 규범에 기댄 반성하는 자아, 그리고 이 모두를 담은 공간의 경제성이 이룩된다.
은밀한 훈육과 자발적 자기 통제를 전제한 근대적 통치(Governmentality) 공간은 주거, 병원, 도서관, 병영, 박물관, 학교, 오피스 등 우리의 일상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근대적 기관(Institution)에 퍼져 있다. 그리고 이 기관들이 가진 “규율의 공간”은 공리와 계몽의 19세기 유럽 자유주의(Liberalism)를 배경으로 한다.
자유! 유럽의 역사가 낳은 자유주의 속 근대 기관에 맞춰 조율된 행위는 누가 시킨 게 아니다. 19세기 새로운 “자유”를 얻은 개인에게 스며든 미분화된 행위 코드는 물처럼 마셔지는 사회적 “규범”과 “양심”의 이름으로 자연화되었다. 교양의 미술관, 서로의 눈을 의식하며 그림 앞 지적 표정과 온화함으로 은밀히 조절된 정숙한 나를 보라!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일탈의 욕망은 이곳에서 완벽히 제거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타인의 시선에 철저히 순응한 나의 신체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19세기와 20세기 개인적 “자유”와 결합한 감시와 통제의 시선은 이제 물리적 공간을 넘어 21세기 도시와 국가, 디지털 네트워크의 가상 공간 전체로 확대되었다. 빅데이터와 AI, 생체 정보를 포함해 모든 걸 알게 될 미래는 질 들뢰즈가 주장한 통제 사회(The Society of Control)를 가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완벽히 자동, 조율된 사회는 단순히 CCTV로 양분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훌쩍 넘어 개인적 욕망의 완벽한 점유와 통제에 닿아 있다. “스펙”으로 상정된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질책과 자발적 각성은 실현 불가능한 욕망으로 내몰린 “피로 사회”의 서막을 알린다.
공기처럼 어디에나 퍼져 있는 감시와 자기 통제, 지속적으로 조절된 행동에 놓인 자유란 어떤 것일까? 화려한 색상과 형태로 빚은 공간의 특별함 속에 감춰진 자발적 감옥들, 스스로 혹사시키는 그 “자유”를 넘어선 자유를 상상하는 건축이 등장하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