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살로메의 「뜻밖의 카프카」(『뜻밖의 카프카』, 아시아, 2025)는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가정주부 로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입니다. 마흔이 코앞인 로사는 이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홍삼 엑기스, 위장약 카베진”을 “삼종 세트 치유제”로 삼아 일상의 고단함을 버텨 나가는데요. 촉이 좋은 분들은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로사는 일상의 소외와 고독에 힘겨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어쩌면 당연한) 것은, 그러한 소외와 고독을 낳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로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첫 번째 존재는 바로 “원칙에 충실한 소심한”이자 “완벽을 구하는 예민남”인 남편 군소입니다. 군소는 “검은 숲”과 “하얀 언덕”이라는 감정 사이클의 두 주기를 오가는데요. “군소의 트집과 잔소리는 로사의 자유와 존엄을 자근자근 씹어대곤 했으며, 이로 인해 로사의 내면은 ‘불안, 부조리, 허무의 삼합’으로 굳어져 갔습니다.” 로사는 군소를 향해 솟구치는 감정을 “참고 견디고 용서하다가 마침내 동정심마저 버리고 잔인해”진 상태입니다.

  로사를 소외와 고독에 빠뜨리는 두 번째 존재는 절친 미희입니다. 로사와 미희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는데요. 젊은 시절 가출한 미희는 로사의 집에서 오랜 시간을 스스럼없이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뜻밖의 카프카」는 “원룸에 도착해서 로사가 한 일은 미희의 팬티를 치우는 일이었다.”라는 뜻밖의 문장으로 시작될 만큼, 미희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로사에게 가장 먼저 부탁을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미희야말로 로사에게 치명적인 독과도 같은 존재였음이 밝혀집니다.

  로사는 젊은 시절 “환(幻)의 은하수이자 미혹하는 신천지”였던 해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가 이별한 경험이 있는데요. 우연히 현재 해도가 십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인기 유튜버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로사는 해도의 유튜브를 보게 되고, 그곳에서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과 마주하고야 맙니다. 해도는 유튜브에서 자신과 교제했던 여자(로사)가 몇 번이나 뱃속의 아이를 유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충격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고백하는 겁니다. 해도는 그 사실을 다름 아닌 미희로부터 들었는데요. 미희는 몇 번이나 “분신을 없앴다”는 로사의 일기에 적힌 표현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여 로사의 지극한 첫사랑이었던 해도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해도는 “오해와 충격의 동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결국 로사와 해도는 헤어지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가 택한 길은, 오롯한 결단을 통해 관계에 구걸하지 않는 단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뜻밖의 카프카」의 주인공인 로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결기는, 그녀가 대학 시절 독서 모임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읽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려지는데요. 로사는 카프카를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오롯한 단독자로 살다가 간” 인물로 이해해 왔던 것입니다. 로사는 카프카를 체코 사람이면서도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썼으며, 동시에 독일인도 체코인도 유대인도 아닌 오직 “카프카로 살았을 뿐”인 진정한 ‘단독자’로 규정했던 겁니다.

  결국 로사는 “제 안의 카프카를 인정하고 불러”내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로사가 이해한 대로라면, ‘단독자로서의 카프카’를 불러내는 일이기도 한데요. 로사는 남편인 군소와 절친인 미희 단둘이만 노래방에 남도록 합니다. 이유는 절친인 미희가 남편인 군소에게 “네 번, 아니 여섯 번의 분신”에 대해 다시 떠벌리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로사는 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단독자로 홀로서기를 선택한 겁니다.

  로사의 결단은 단독성(Singularity)의 철학적 의미와 맞닿아 있습니다. 단독성이란 일반자의 특수화로서의 개별성과는 구분되는,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로서의 개념인데요. 단독성이란 고유한 것으로서, 유(類)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개(個)인 것입니다. 사실 단독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존재가 고유한 개성을 가진 그야말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이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근거를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그렇기에 단독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만 참된 관계는 시작되고 그로부터 윤리와 정치도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조금은 허탈하게까지 느껴지는 로사의 마지막 결단이 보여주듯이, 존재의 단독성만 철저히 인식하는 것은 허전하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상적인 사회란 존재의 단독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 그 고독한 단자들을 이어주는 공감과 연대의 통로가 열려 있는 모습일 겁니다. 다행히 「뜻밖의 카프카」에는 공감과 연대의 생명길을 위한 가능성이 적지 않게 아로새겨져 있는데요. 그것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닌 해도를 향한 작품의 우호적인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로사가 심리상담사 공부 과정에서 배운 것처럼,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다만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에서부터 보편성을 전제한 단독성의 문학적 실현은 아마도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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