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정은은 사회적 어둠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작가입니다. 특히 사소한 기미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문체는 독자와 평론가의 주목을 받아왔는데요. 출세작인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에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소외를 표현하기 위해 형상화한 ‘그림자’는 한국문학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성취입니다. 이번에 이야기해보려는 「문제 없는, 하루」(『창작과비평』, 2025년 봄호)는 ‘악’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더욱 깊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이끕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매인 영인과 인범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요. 영인은 회사에서 주어진 ‘자신의 업무’를 매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지쳐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반면 동생인 인범은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타인의 사정’에 깊이 공감하며, 그로 인해 편안한 일상을 누리지 못합니다. 작품은 초반부터 이들의 삶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독자에게 어느 삶의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영인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동생 인범의 SNS 계정을 들여다보곤 하는데요. 거기에는 사회적 악에 맞서 싸우는 인범의 게시물이 가득합니다. 인범은 그런 게시물에 ‘집단 학살, 식민지주의, genocide, colonialism’ 등의 태그를 붙이며, 국제적 폭력과 착취에 대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인범은 영인에게 “사람을 죽이는 기업”의 앱을 사용하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며 단호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인범은 세상의 수많은 ‘악’에 분노하며, 이를 외면하지 않는 의로운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인범의 ‘악’에 대한 감수성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던 걸까요? 인범은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지만, 사람들은 인범을 향해 “그 진부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왜 여태 하느냐는 얼굴”을 하고는 하네요. 결국 인범은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며, 정신적 고립과 고통을 겪습니다.
영인 역시 인범의 날카로운 감수성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영인은 인범의 SNS 계정에서 “‘점령과 학살로 뒤덮인 땅에서 자란 딸기, 복숭아, 자몽’이라는 문구 아래 ‘여전히 상큼하냐’고 묻는” 온라인 전단지를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그 전단지에는 한국에서 유통되는 음료 사진들이 실려 있으며, 그중에는 영인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제조·판매하는 어린이 음료와 복숭아맛 음료도 포함되어 있네요. 이를 본 영인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너도 내 삶을 몰라. 내가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견디며 살아가는지 너도 몰라.” 혹은 “그 일들은 너를 죽일 수 없어. 타인의 삶에 일어난 일이니까. 네 삶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니까.”라는 메시지를 작성하지만, 끝내 전송하지 못하고 지웁니다.
이처럼 영인이 일상을 영위하느라 ‘악’에 대해 무감각해진 상태라면, 인범은 ‘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게 된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인범의 정의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영인이지만, 결국 자신의 무감각이 단지 회피에 불과하며, 자신 역시 ‘악’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영인과 인범은 일출을 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합니다. 영인은 차 안에서 자신이 요즘 “평범하게 존재하는 악”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며,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은 아니야. 난 요즘 어딜 봐도 그런 생각을 해. 안전한 데가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작품 전반에 걸쳐 강조된 ‘세계의 연결성’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인이 근무하는 회사는 한국과 중국에서 원단과 부자재를 조달해 베트남 공장에서 의류를 생산한 뒤, 이를 다국적 유통 기업에 납품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중국, 베트남은 거의 하나의 유기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아마도 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악과 자신의 일상이 무관하다고 믿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아가 황정은은 ‘악’의 문제를 존재론적 차원으로까지 밀어붙입니다. 인범은 바닷가에 놀러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새끼 낙지를 칠게가 가득 담긴 양동이에 던져 넣었고, 낙지는 그 안에서 조각나며 죽어갔습니다. 인범은 그 장면을 회상하며, “낙지가 조각나는 동안 손 놓고 보기만 한 우리한테 무슨 악의나 적의가 있었겠어? 우린 그냥 다 같이 멍청했고, 그뿐이었어.”라고 말합니다. 작품은 이처럼 ‘악’이 특정한 의도나 적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무감각과 무지, 침묵과 무관심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인범의 회상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악’에 가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비유입니다.
작품은 터널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노인을 목격한 영인이 연쇄적인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 경적을 길게 울리는 장면으로 끝나는데요. 이 장면은 모두가 연결된 채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어쩌면 황정은의 『문제 없는, 하루』는 끝을 향해 질주하는 터널 속의 인류를 향해 울리는, 황정은 특유의 경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