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문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의 하나는 돌봄 노동입니다. 돌봄은 재생산 노동으로서, 사람들의 삶을 지속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활동 전체를 가리키는데요. 여기에는 육아는 물론이고, 요리, 청소, 세탁 같이 매일 하는 일과와 환자,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돌봄 노동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무상 혹은 저임금으로 저평가되곤 합니다. 돌봄이 젠더적으로 여성의 의무처럼 여겨진다는 점에서 그 문제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여성에게 다른 사람의 안녕을 책임지게 하고 여성이 재정적, 물질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여성을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영속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경란의 「K-아재의 가자미근」(『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강, 2025)은 특이하게도 중년의 남성을 돌봄 노동의 주체로 등장시킨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소설에 돌봄 노동을 다룬 소설들은 돌봄 노동의 주체인 여성들의 고통과 억울함에 주목해왔는데요. 「K-아재의 가자미근」에서는 명퇴(명예퇴직)를 한 백이 장모인 준자씨를 돌봅니다. 병원에서도 준자씨의 간병을 맡았던 백은, 퇴원 후에도 준자씨의 집에 머물며 “언제까지?”라는 질문을 수시로 반복하는 기약 없는 돌봄 노동을 수행합니다. 이 작품은 오래된 식재료로 어수선한 냉장고 속 풍경이나 무좀으로 변색된 준자씨의 발톱에 대한 세밀한 묘사 등을 통해 백이 수행하는 돌봄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돌봄의 고단함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제도·가족·젠더가 교차하는 양상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특히 돌봄의 책임이 사회에서 가족으로, 다시 가족에서 한 개인에게 전가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돌봄이 공적인 영역을 통해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준자씨의 요양등급 판정을 받는 장면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요양등급 판정은 돌봄 노동의 제도적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백은 쇼를 하다시피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결코 원하는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요양등급 조사원 앞에서 “선생님, 저희 어머님 좀 돌봐주세요”라며 울먹이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웃픈(웃기지만 슬픈) 대목입니다.

  요양등급 판정 실패 이후, 돌봄의 책임은 사회에서 가족으로, 다시 가족에서 한 개인에게 전가됩니다. 아내인 미영, 처형인 은영, 처남인 정영은 모두 당당하게 돌봄을 거부하며, 그 책임을 백에게 떠넘기는데요. 그러한 부조리가 당연시되는 이유는 단 하나. 다른 가족 구성원은 현직에서 돈을 벌지만, 백은 은퇴하여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은영이나 정영은 그 알량한 봉투만 있으면, 언제든지 “백서방만 믿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가족들이 백에게 건네는 “봉투”는 제도의 부재를 가족 내부의 거래로 메우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거래’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적인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백은 준자씨를 돌보는 집을 가리켜 “감옥이라 말하기엔 죄스러웠고 집이라기엔 너무 갇힌 느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돌봄을 힘들어하는데요. 그러한 노동에 비한다면, 가족들이 가끔씩 건네는 봉투는 너무나 미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오히려 당당해하고, 백은 움츠러듭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도 돌봄 노동이 온전하게 대우받지 못하기에 가능한 장면이겠죠.

  특히 「K-아재의 가자미근」에서는 문학적 상징을 통해서, 보상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의 슬픈 숙명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백은 우연히 냉장고에서 검은 봉투에 담겨진 지폐 다발을 발견하는데요. 그것은 마치 백이 그동안 수행해 온 돌봄 노동에 대한 대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지폐 다발은 돈세탁(돈다발이 세탁기에 들어가 세탁된 일) 등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백의 손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 암시됩니다. 백이 돈다발을 끝내 챙기지 못한 이유로는 장모를 향한 백의 애정, 일테면 “놀라움과 낯섦, 연민과 슬픔 같은 것들”도 한몫을 하는데요. 이것은 돌봄 노동이 지니는 ‘감정 노동’으로서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는 시종일관 유머가 은근히 넘쳐나는데요. 일반적으로 유머는 불일치를 인식하거나, 혹은 정서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신적으로 이완이 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각각 부조화 이론, 우월성 이론, 방출 이론으로 설명되곤 하는데요. 「K-아재의 가자미근」에서 발생하는 유머는 주로 부조화(불일치)에서 발생합니다. 이때의 부조화는 근본적으로 돌봄 노동을 중년의 남성인 백이 수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K-아재의 가자미근」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은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돌봄 노동이 여성의 영역으로 젠더화된 것을 증명하는 아이러니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