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사와 북경천주당』신익철 저
『연행사와 북경천주당』신익철 저

  16세기 말에서 17세기로 넘어오면서 조선은 가장 혹독한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낯선 경험을 한다. 17세기 중반 중국의 지배세력이 한족(漢族)에서 만주족(滿洲族)으로 교체되면서 겪게 된 낯섦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이 때문에 더 이상 중국은 없다는 의식이 생긴다. 이제 조선 지식인의 의식 속에 상상 속의 중국과 현실의 중국이 자리 잡았다. 또한 이 시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서양과의 만남이라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섦에 노출이 되기 시작한다. 이런 낯섦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연행록이다. 청조가 안정되면서 조선 지식인들은 사절단으로 가는 연행 길에서 현실의 중국을 접하고, 북경 천주당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양을 만난다. 이것은 조선 후기 사상사나 천주교 전래와 많은 접점이 있다. 낯섦과 익숙함의 접변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그 당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접변의 매개자는 대부분 북경을 방문한 연행사들이었다. 이들은 대략 40~60일가량 북경에 체류하면서 공식적인 일 뿐만 아니라 명소고적을 둘러보거나, 중국학자들과 교류하며, 유리창을 방문하여 서적을 보거나 새로운 물품을 구입하고 그 경험을 글로 담아낸다. 특히 연행사들은 서양에 대한 호기심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북경 천주당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 속에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낯설고 이질적인 문명을 접하면서 경험한 충격, 경이, 그리고 문화적 갈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연행사들이 남긴 북경 천주당 방문기는 연행록의 전범(典範)으로 불리는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홍대용의 『담헌연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뿐만 아니라 천주당을 가장 많이 방문한 이기지의 『일암연기』, 마테오 리치 묘소를 방문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서호수의 『열하기유』, 조선의 3대 연행록을 비판적 계승한 김경선의 『연원직지』 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조선 지식인들이 ‘북경 천주당과 선교사’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본 서양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향후 교내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전시된 『연행도』와 『연행록』을 눈으로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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